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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통치 시대를 마감하고 문민시대를 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기준으로 한국 현대사가 나눠지듯 우리나라 의과대학 역사 역시 그를 기준으로 한다.
국내 의과대학 정책을 논(論) 함에 있어 김 전 대통령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집권 당시 봇물 터진 듯 쏟아진 의과대학 신설 허가는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결정이었다.
지난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각 지역별로 선물을 안겼다.
그 중 하나가 의대 신설이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 동안 전국 각지에 무려 10개 의대가 세워졌다. 1980년대 31개이던 의대는 강원의대, 대구가톨릭의대, 건양의대, 관동의대, 서남의대 신설로 양적 팽창을 이뤘다. 임기 마지막해인 1997년, 가천의대, 성균관의대, 을지의대, 포천중문의대, 제주의대까지 신설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때 만들어진 의대가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안착한 것은 아니다. 일부 의대는 당초 목표한 효과를 내며 성장해나갔지만 나머지 일부 대학은 의학교육에 대한 철학을 확립하지 못한 채 준비부족에 따른 허술한 교육으로 부실의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이 같은 후유증은 의대 역사에서 그의 의대 신설 허용 정책을 도드라지게 한 원인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이 올해 향년 88세로 서거했다. 국민들은 유난히 날이 춥고 함박눈까지 쏟아졌던 지난 11월 26일 영결식을 거행하며 그를 떠나보냈다. 그와 함께 부실의대 논란 역시 영면할 수 있을까.
의평원 그물망 피해간 부실의대
“환자는 없고, 병실은 자물쇠로 잠겨있고, 시설물 곳곳은 거미줄로 둘러싸여 있었고, 응급실과 수술실에는 간호사도 없는 실정으로 50년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실정이었다”
지난 2012년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서남의대 감사보고서의 일부다. 서남의대 교육 현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서남의대는 2013년 1월 부실한 의학 임상실습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을 졸업한 134명에게 의학사 학위 취소 명령이 내려졌고, 일부 재학생들의 학점도 취소됐다.
같은 해 5월 교육부는 서남의대 폐지 방침까지 발표했다. 이에 서남대는 감사처분 취소소송 등을 제기하며 맞섰다.
2014년 6월 법원이 교육부의 취소명령이 위법하다고 판결을 내려 134명의 의사들은 구제 받았지만, 소송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이후 전주예수병원과 명지병원, 부영건설 등이 인수를 위해 각축전을 펼치다 올해 6월에서야 정식으로 명지병원에 인수, 정상화 기로에 진입했다.
이 같은 서남의대는 1995년 설립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이 시행하는 의과대학 인증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2007년 이후에는 인증평가 자체를 거부하고 나섰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아무런 제지 없이 신입생을 받았다.
관동의대는 서남의대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 명지학원과 관동대는 무려 19년 동안 부속병원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다른 병원들과의 위탁수련교육 계약을 통해 편법으로 부속병원 설립 의무를 회피했다.
그러던 중 명지병원과의 계약이 파기됐고, 학생들이 광명성애병원과 프리즘병원을 전전해야했다. 설상가상 교육부가 프리즘병원을 수련병원으로 인가하지 않자 관동의대는 서남의대와 함께 부실의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이 사태는 지난해 6월 관동대가 국제성모병원을 수련병원으로 하는 인천가톨릭학원에 인수되면서 일단락됐다.
부실의대 솎아내기 고삐 조이는 의평원
의평원은 부실의대를 솎아내기 위해 보다 촘촘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 중 하나가 오는 2017년부터 의평원 인증을 받은 의대 졸업자만 의사 국가고시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개정이다.
인증을 거부했던 서남의대의 경우 인증을 받지 않아 학생들이 졸업해도 의사면허를 취득하지 못하고, 지속되면 자연히 고사하게 된다.
그런데 ‘부칙’에서 구멍이 발견됐다. 개정 의료법 부칙 제2조는 ‘의평원이 모든 의대 인증심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적어도 한 번은 공개하고, 그 뒤 해당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부터 법을 적용한다’고 돼 있다.
서남의대 등 인증심사를 받지 않은 곳은 ‘모든 의대 인증심사 후’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응시 제한을 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의평원은 구멍을 메우기 위해 부실의대 퇴출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는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과 손을 잡았다. 협의 끝에 박 의원은 모든 의대의 의평원 인증을 의무화하는 ‘고등교육법’을 발의, 올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했다. 비로소 우리나라 모든 의대가 의평원으로부터 질 관리를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의평원은 지난해 5월 교육부로부터 고등교육 프로그램 평가인증 인정기관으로 지정됐다. 의평원에서 실시한 의대 평가인증이 법적 효력을 갖게 된 것이다.
제도 정비 작업을 추진한 안덕선 의평원 원장은 “원래 의료법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부칙에 대한 논란이 있어 고등교육법 개정까지 이르게 됐다”며 “이 두 법과 더불어 의평원이 교육부로부터 인정기관으로 지정됨에 따라 제도적 장치는 어느 정도 마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 평가인증에 대한 기반 작업이 끝난 의평원은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WFME에 의한 의학교육의 국제 표준화에 나섰다. 의평원은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세계의학교육연맹(WFME·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 기준을 도입하기로 했다.
WFME 기준을 도입하지만 우리나라 기본의학교육 상황을 고려해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현 Post-2주기 의평원 기준 간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WFME는 1972년 창립된 이래로 의학교육의 질 향상과 평가기준의 국제표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했으며, 2001년에는 기본의학교육과정의 질 향상을 주제로 의학교육을 위한 국제 표준을 발표했다.
WFME는 6개의 지역별 의학교육협회를 산하 기구로 가지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의사협회(World Medical Association)와 공식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전체적인 구조와 구성은 WFME 기준과 동일하게 개정한다.
WFME 기준 중 우리나라 의학교육에 맞지 않은 것은 사용하지 않고, 일부는 우리나라 현 기준에 맞춰 추가 또는 수정할 방침이다.
의평원은 지난 11월 이 같은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초안을 공개하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 새롭게 바뀐 기준이 적용되는 시기는 2018년이다.
의평원은 WFME에 의한 의학교육의 국제 표준화를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세계화, 국제화 흐름에 따라 고등교육에 대한 평가, 인증 국가 간 연계 필요성이 증대하고, 국내 학위의 국제 인증 및 외국 학위의 국내 인증을 위해 국제적 수준의 대학평가기준 개발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국제적 추세에 부응해 의료와 관련 인력의 국제화를 촉진하고 의료행위의 최소 수준을 보장해 의료인의 국제적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 미국 교육인증위원회(ECFMG·Educational Council for Foreign Medical Graduates)는 2023년부터 WFME 기준으로 인증받은 세계 의대에게만 미국 의사 자격시험 자격을 부여할 계획이다.
즉, WFME 기준으로 인증 받지 않은 의과대학은 미국 의사 자격시험을 볼 수 없다. WFME 기준을 통해 의학교육 과정에 대한 최소한의 질적인 기준을 보장하기 위해 의대와 의학교육과정의 국제적 평가 인증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에 WFME는 주요사업으로 2023년까지 세계 각국의 70여 개의 평가인증 기관에 대한 기관인정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안 원장은 “그간 우리가 써왔던 Post-2주기 기준은 정량적인 부분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WFME 기준은 정성적 평가가 대부분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적 수준의 기준이라고 해서 높기만 한 것은 아니”라며 “최소한의 질적인 기준은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만큼 대부분의 우리나라 의대가 넘을 수 있는 문턱일 것”이라며 불필요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WFME 기준 인증은 WFME가 각국에서 전문성 있는 한 기관은 인정해 그 기관이 실무를 맡아 진행한다. 각 국가별 특성을 존중한 조치다.
즉, 의평원은 WFME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의평원은 이미 지난해 인정 신청을 해놨고, 올해 11월 말 WFME 실무 평가단이 의평원의 계명의대 인증평가 과정을 살펴보며 실사를 펼쳐 2016년 상반기까지 인정 여부를 가린다. 현재 WFME가 인정한 기관이 있는 국가는 미국, 태국 등 4~5개국이다.
김명곤 의평원 간사(고려대 의과대학)는 “안덕선원장은 의평원 원장임과 동시에 WFME 부회장으로 선출돼 지난 4월부터 활동 중”이라며 “국내외적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무리 없이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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