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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의료가 화두다. OCED 보고서는 한국의료계의 가장 큰 문제를 병원집중화와 일차의료 위기라고 정의했다. 메르스 사태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지만 중요한 요인으로 의사환자관계에 바탕을 둔 일차의료의 부재를 꼽는다.
그럼 일차의료 (primary care)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최초 접촉, 포괄성, 조정기능, 관계의 지속성을 4가지 핵심 속성을 지닌 전문분야로 정의한다.
어렵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환자가 아플 때 처음 찾아가서 긴밀한 동반관계를 바탕으로 건강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해주고 지속적으로 관리책임을 지는 역할을 의미한다.
감기 같은 사소한 건강문제부터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관리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동네의원 같은 일차의료 영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건강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가족 같은 입장에서 조정하고 안내해줄 수 있는 의료라고 할 수 있다.
조정하고 안내하는 기능을 의료체계에서는 일차의료의사가(General Practitioner) 전문과 자문을(consult to specialty) 위해 의뢰(refer)한다고 부른다.
전통적으로 의료낭비를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경우 의뢰하지 말라고 일차의료에게는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부여하는 국가도 많다. 조정하고 안내하는 기능을 환자입장에서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네비게이터(navigator) 역할이다.
운전할 때 네비게이터가 있으면 길을 모르더라도 목적지를 쉽고 빠르게 찾아 갈 수 있다.의료라는 전문분야는 환자가 잘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길 찾아가는 운전과 비슷하여 네비게이터 역할이 중요하다.
흔히 동네의원을 일차의료기관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동네의원이 모두 일차의료(primary care)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모든 전문과목(specialty)이 제한 없이 동네의원을 개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네의원 안과는 눈에 대해서는 전문이지만 통합적인 내비게이터 역할인 일차의료에 대해 전문이라 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의 수련을 받지 않은 의사(속칭 일반의라고 부르며, 외국의 일차의료와 다르다. 외국에서는 개원도 할 수 없다)도 동네의원을 개원할 수 있는데, 의대교육만 받은 의사가 적절한 네비게이터 역할을 할 수 없다.
의료현장에서 네비게이터 역할의 중요성은 과거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의료의 특징 중 하나인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의료 공급자가 소비자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져 공급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만들 위험성이 존재하고, 반대로 환자는 의학적인 최선의 선택보다 일방적으로 제공된 정보를 토대로 비합리적인 선택 가능성도 있다.
정보 비대칭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환자는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러한 결정권한을 의료전문직에게 위임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신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환자가 내편이라고 확신하는 네비게이터 의사를 두기 어려운 현실이다.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하는 자동차의 네비게이션과 달리 환자의 네비게이터는 불확실한 환자 정보를 토대로 전문적인 판단을 해야 할뿐만 아니라 환자의 불안한 마음도 달래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충분한 진찰시간과 긴 상담시간은 필수조건이고, 환자를 지속적으로 살펴주는 일차의료가 중요하다. 정진주 등이 조사한 의료이용자 질적면접조사에서도 단골의사에게 정보를 판단하기 힘든 상황에서 조정자의 역할, 정신적인 문제를 포함한 다방면의 지지자를 원한다고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의사의 진료시간에는 보상되지 않는 수가 체계로 검사는 많지만 3분 진료로 표현되는 짧은 진료시간이 현실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열나는 환자가 하루에만 3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전전하는 현실이다.
즉, 지속적인 의사환자관계가 부재한 상황이다. 진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친인척인 의사나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의사에게 전화 걸어 의견을 묻는 현상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럼 혈연으로 내비게이터를 찾지 않으려면 누구에게 그 역할을 맡길 것인가? 의료는 문화이기에 일차의료가 발달한 다른 나라처럼 반드시 주치의 등록을 하고 문지기가 정해주는 대로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변화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발적으로 단골의사를 정하고 네비게이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로 유도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려면 의사의 상담시간에 충분히 보상하고 단골의사를 정하면 환자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 방향이 중요하다.
뜨내기에게는 대충해도 단골에게는 정성을 다하기 마련이므로, 만성질환자에서만이라도 단골의사를 정하는 것이다. 2014년부터 4개 지역에서 시행되는 '지역사회일차의료시범사업'은 이러한 취지를 살린 최초의 보건복지부 사업이다.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을 해결하고, 단골의사를 대학병원이 아닌 동네의원 일차의료전문의에게 맡기려면 동네에 신뢰받은 일차의료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
일차의료도 분야는 다른지만 전문분야다.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환자의 질병이 매우 복잡해질 뿐만 아니라(complex), 여러 질병으로 고생하는 복합질환(multiple comorbidity)에 대한 의료수요도 급격히 늘고 있다.
더군다나 의료 기기의 발전과 의료형태의 다양화로 일차의료영역에서의 복잡성도 증가하고 있다. 즉 현대사회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의료현장에서 쉽고 빠르게 원하는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차의료에서 네비게이터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최근 국제적으로 일차의료 전문의 수련기간이 확대되는 동향이 있다. 영국에서도 2014년부터 일차의료 전문의 수련기간을 3년에서 4년으로 변경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신뢰받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일차의료인력 양성도 필수적인 과제이므로 교육에 초점이 맞춘 대학병원에서 지역사회와 연계된 가정의학과 수련이 불가피하다.
또한 문지기 역할을 강제할 수 없는 현실에서 무분별한 대학병원 쏠림을 해결하려면 오히려 대학병원의 기관내 네비게이터 역할 강화도 필요하므로 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 이를 부여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여겨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