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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의료 환경에서 바쁜 의사들을 옥죄는 의무가 있다. 환자 스스로 의료 행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일명 ‘설명의 의무’다.
의사의 설명 의무는 환자 안전과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최근 의료 판례를 보면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설명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
의료 과실이 없고 환자 본인에게 수술의 내용과 필요성을 비롯해 위험성, 후유증, 부작용 등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손해배상 책임을 가까스로 면할 수 있다.
환자의 수술 선택권을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의사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수술 중 환자 동의 받지 않고 추가 수술 500만원 배상”
C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의사 황모씨는 환자 동의를 받지 않고 추가 수술을 시행했다는 이유로 소송에 휘말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민사부(판사 정은영)는 수술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추가 수술에 대한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환자 배모씨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거주자인 환자 배씨는 극심한 삼차신경통 치료하기 위해 C대병원에 내원했다. 신경과 의료진은 개두술 및 미세혈관감압술이 필요하다고 판단, 수술동의서를 받은 뒤 신경외과로 전과했다.
신경외과 의사 황씨는 삼차신경 도입부에 작은 정맥이 유착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절제한 뒤 그 사이에 테프론을 삽입하는 미세혈관감압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해당 수술만으로는 통증이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삼차신경 측하부의 4분의 1 정도를 절제하는 신경근부분절제술을 추가적으로 시행했다.
환자는 “삼차신경통과는 무관한 다른 신경을 제거해 극심한 통증과 안면마비 등 장애를 입었고 신경근부분절제술의 시행 가능성과, 수술내용, 후유증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황씨가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바라봤다.
재판부는 “신경근부분절제술을 시행할 수도 있다는 것과 수술 과정에서 감각 저하 등의 합병증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며 “미세혈관감압술 시행 전 신경근부분절제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 예견됐으므로 설명의무를 게을리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수술 동의서에 없는 지방이식술 위법”
중국에서 귀화한 환자 한모씨에게 코 지방이식술을 시행하다 왼쪽 눈을 실명케 한 A성형외과 원장 김모씨도 설명의무에 발목이 잡혔다.
C대병원 황 교수 사건을 담당한 해당 재판부는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합병증이었다”는 김 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낳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환자가 청구한 1억6904만원 중 9922만원을 배상금으로 책정했다.
환자 한씨는 김원장으로부터 2차 코 지방이식술을 받은 직후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김 원장은 곧바로 안구 마사지를 하면서 한씨를 데리고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CT 및 MRI 검사 결과 별 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김 원장은 보다 정확한 진단 및 치료를 위해 세브란스병원 안과 전문의 김모 교수에게 연락해 또 다시 전원 조치했다.
이 병원에서 급성 신경손상 치료를 받고 4일 후 퇴원한 한씨 김 원장으로부터 총 8차례에 걸쳐 지방을 녹이는 혈관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왼쪽 눈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실명했다. 법원은 김 원장이 부작용 예방 조치를 소홀히 하고 설명의무 위반 과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동맥 천공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최소한의 압력으로 천천히 지방을 주입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술 승낙서에는 미용수술에 관한 부작용만 담겼을 뿐 지방이식술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며 “시술 부작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보기 어려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설명해야 할 대상은 보호자가 아니라 환자”
H대학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김 모 교수는 보호자에게만 수술의 위험성을 설명했다가 소송에서 졌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부장판사 이창형)는 설명의무 위반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김 교수에게 2000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했다.
망인 A씨는 김교수로부터 연축성 사경증 진단을 받은 후 미세혈관 감압수술을 받았다가 사망했다. A씨의 사망과 수술 상 과실의 인과관계는 1심과 마찬가지로 2심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K교수가 A씨 아버지에게만 수술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김 교수는 뇌 MRI 검사 결과 특별한 병변이 발견되지 않아 미세혈관 감압술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후 아버지에게 해당 수술의 방법 및 경과와 위험성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
뇌 척수액 유출과 이로 인한 뇌막염, 뇌실염 등의 치명적 감염 가능성까지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는 31세의 성인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의사 설명을 듣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아버지로부터 다시 내용을 충실히 전해 듣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볼 증거가 없는 이상 환자에 대한 설명 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설명의무 위반과 악 결과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에 관한 입증이 없더라도 A씨는 설명 결여로 선택의 기회를 잃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수술 차이점과 부작용 설명 안하면 환자 선택권 침해”
우리나라 최고 국립대학교병원도 수술법 차이점과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아 610만원의 위자료를 물어주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원정숙)은 환자 B모씨가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건강검진결과 좌측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는 내분비과를 외래 방문했다. 초음파 유도 하에 미세침흡인세포검사 결과, 좌측 갑상선에 0.9*0.64*1.05cm 크기의 저에코성 불확실 결절과, 우측 갑상선에 0.35*0.26*0.4cm의 양성으로 예상되는 결절이 발견됐다.
3개월 후 2차 미세침흡인세포검사를 다시 한 결과 좌측 결절은 앞선 1차 세포흡인검사와 마찬가지로 불확정 비정형 결절로 진단됐다.
갑상선센터외과 의료진은 환자에게 비정형 결절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진단적 반엽갑상선절제술이 필요하고 암으로 확진될 경우 나머지 갑상선을 제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료진은 갑상선암 수술 동의서와 마취동의서를 받고, 수술명을 ‘갑상선 엽절제술, 필요한 경우 갑상선 전절제술’로 기재했다.
수술 당일 의료진은 좌측 갑상선을 먼저 절제하고, 동결절편조직 검사 후 여포성 과다형성이라는 진단을 확인하고 우측 갑상선도 마저 절제했다.
퇴원 후 갑상선 조직을 검사한 결과 좌측 결절은 양성종양인 여포선종이고 우측은 별다른 소견 발견되지 않았다. 환자는 현재 약으로 갑상선호르몬을 조절해 갑상선 기능을 정상범위로 유지하고 있다.
법원은 “치료법 선택 상 과실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수술 부작용이나 합병증, 위험 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다른 선택권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는 환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수술 동의서는 받았으나 갑상선 엽절제술을 받은 경우 약 15~50% 정도 환자가 갑상선 호르몬 보충이 필요하지만 갑상선 전절제술의 경우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등 각 수술의 차이점을 비교, 설명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엽절제술 역시 50~85%는 호르몬 보충이 필요하지 않다는 반대해석이 있는 바 의료진은 해당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환자는 평생 갑상선호르몬을 복용하게 됐으므로 선택권 침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한다”고 판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