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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법에 의해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사진 左]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사진 右]은 태생부터 라이벌 관계였다.
서로 견제하는 앙숙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는 상호 발전을 위한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 기관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는 ‘국민건강권’ 확보가 지속적인 정책과제이기 때문이다.
공통의 큰 목적인 ‘보장성 강화’와 ‘의료의 질 향상’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여러 갈림길이 있지만 결국 방향은 동일한 양 기관의 모습을 세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원주시대를 알리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양 기관은 올해 초 원주 혁신도시로 동시 이전하면서 도보로 1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직선거리가 1k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보니, 몸도 마음도 가까워진 것 같다는 직원들도 있다. 서울과 달리 아직 원주 혁신도시에는 놀거리(?)가 많지 않아 겹치는 회식장소도 많다.
근무가 끝난 시간, 삼삼오오 모여 원주 혁신도시 인근을 배회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건보공단 A차장은 공단 인근 호프집에 팀 인원들과 가볍게 회식을 즐기러 왔다. 그런데 저 멀리 아는 얼굴이 보인다. 심평원에 근무하는 B차장이다. B차장 역시 맥주한잔 하러 왔다가 합석을 하게 된다. 건배사는 ‘소화제’다. ‘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양 기관의 직원들은 오늘도 각자 위치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함께 날려버렸다.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서울에 있을 땐 몰랐던 직원들도 알게 되고, 비슷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에 한편으론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업무적으로 공유와 발전을 위한 자리가 수시로 마련되는 모습도 보인다. 양 기관 빅데이터센터 직원들은 사회적 요구에 맞게 예측 가능한 건강정보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안타깝게도 주기적 공동 미팅은 빅데이터 분야로 한정된 상태이지만, 여러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물망에 오른 내용은 건보공단의 자격관리시스템과 심평원의 의약품안심서비스(DUR) 빅딜 가능성이다.
양 기관은 서로의 강점을 공유해 보다 발전된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정부분 합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동 국제행사 이후 건보제도 수출 주력
극단의 갈등을 보였던 사건이면서도, 공동 협의체를 꾸려 최종적으로 화합의 물꼬를 튼 ‘보편적 건강보장(UHC)을 위한 국제행사’가 이들 기관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당초 국제행사의 성격은 달랐다. 심평원이 지난해 8월 ‘세계 보건의료 구매기관 네트워크’를 주제로 단독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건보공단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실제 건보공단 노조는 심평원이 보험자가 아님에도 보험자의 행동을 하고 있다며 ‘사기배임죄’로 형사 고발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심평원장 퇴진운동을 벌이겠다는 등 첨예한 갈등이 고조됐다.
일련의 과정에 보건복지부가 중재에 나서 공동 개최키로 결정했다. 양 기관은 복지부와 함께 공동협의체를 꾸리기로 했고, 수차례 회의를 통해 국제행사는 잘 마무리됐다.
국내 건강보험제도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전 세계 26개국 주요 관계자들이 참여했고, 이를 계기로 실질적 제도 수출에도 기여하는 등 공동의 성과를 거뒀다.
당시 건보공단 성상철 이사장은 “보편적 건강보장은 개인에 대한 건강보장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뤄나가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은 성공적인 건보제도 경험을 토대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평원 손명세 원장은 “모든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의료비 증가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에 한국의 진료비 관리시스템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건강보장 달성을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 공유를 넘어 지속적인 교류협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양 기관장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선진적 제도로 손꼽히는 국내 건보제도를 개발도상국에 전파하겠다는 동일한 목표를 세우고, 현재 세부계획을 만들어가고 있다. 공동 개최한 국제행사 이후, 변화하는 모습 중 하나다.
우선 건보공단은 ‘글로벌협력사업단’이라는 새로운 팀을 꾸려 해외진출의 물꼬를 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건보제도 운영등에 대한 사항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제행사 당시 참여했던 WHO, 월드뱅크 등과 협력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태국,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보건당국 관계자들은 건보제도 컨설팅을 받고 있으며 일부 시스템이 반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평원 역시 다른 나라들이 국내 건보제도를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활동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국제행사 당시 주축이 됐던 ‘국제협력단’을 중심으로 다각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개방형 직위인 국제협력단장에 류종수 전 UN재단 고문이 임명되는 등 국제사회에 본격적 활로 개척이 예상된다.
내부적으로 험난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외부적으로는 빛나는 결과물이 된 국제행사를 계기로 양 기관의 공동 목표는 더 확실해졌다.
각자의 업무적 권한만 따진다면, 수출의 물꼬를 틀 수 없다는 기본적 사실을 인지했으므로 향후 상호 역량은 공유되는 방향으로 설계될 전망이다.
비급여 관리·감독 업무 놓고 신경전 팽팽
긍정적 행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급여 관리·감독업무를 선점하기 위해 양 기관의 치열한 싸움은 이미 진행 중이다.
그 이유는 비급여 현황을 의료기관으로부터 조사·분석해 공개할 수 있는 ‘비급여공개법(의료법 제45조 2)이 오는 10월 시행되기 때문이다.
현재 복지부가 시행령을 만들면서 어느 기관에게 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할지 고심 중인데,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알력다툼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심평원은 ‘비급여 진료비 공개’, ‘진료비확인제도’ 등 기존 비급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제 심평원 이성원 개발상임이사는 “단순히 가격조사와 공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비급여에서 급여로 보장성 확대, 용어표준화 코딩체계 유지 등 그간의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계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초 심평원은 임시조직인 ‘의료정보 표준화사업단’을 만들어 비급여 정비에 주력하고 있다. 핵심과제는 비급여 항목의 용어표준화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건보공단은 비급여 관리 시스템 구축 및 개별 의료기관 대상 전수조사가 가능하다며 또 다른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건보공단 김필권 기획상임이사는 “지난 2013년부터 23억원을 들여 의료기관 원가(급여+비급여)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공단은 전국 조직망을 통해 원가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기반이 있고, 비급여 현황조사 시에도 투입할 인력이 충분하다”며 심평원 주장을 반박했다.
이처럼 양 기관은 오는 10월 비급여공개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첨예한 갈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늘어나는 ‘비급여 통제’ 권한은 뺏기지 말아야 할 주요 업무로 이미 각인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비급여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건보공단 개청식에 정진엽 장관이 한 발언이 주목된다.
정 장관은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갈등보다 협력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 ‘양질의 보험서비스 제공’이라는 공통과제를 수행하면서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