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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의료계 역시 항상 갈등에 봉착한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각 직역별로 나누는 형태에서 비롯된 구조는 서로를 동반자가 아닌 경쟁자로, 바운더리(boundary) 침해라는 예민한 상황에 놓여있다. 한 병원 내에서 근무하는 의사들끼리도 진료권 경쟁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자칫 학회간 이권 다툼으로 비춰져 의료 성역에 오명을 남기고 있다.
"지지부진해도 전문성 포기 못해"
진료과간 전문 영역을 놓고 일어난 갈등이 이제는 학회간 마찰로 불거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의사로서 국민건강을 담보로 전문 영역을 포기할 수 없기에 상호간 언성을 높이는 일을 넘어 법정 공방같은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마다할 수 없는 현실이다.
향정계 약물의 처방을 함께 쓰는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과,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안과와 성형외과 등 질환별, 진료영역 별 다툼이 있는 학회라면 한 번은 법의 잣대 위에 올라서야만 했다.
이 가운데 정신건강의학회와 신경과학회의 갈등은 5년째 여전하다. 신경과 의사들은 지난해부터 ‘항우울제 처방에 대한 정부의 60일 급여기준’이 불합리하다는 내용의 탄원을 정부 및 각 지역구 국회의원에 넣기 시작했다.
특히 SSRI의 경우 정신과가 아닌 진료과에서도 현행 60일에서 1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양 학회가 지난 2011년 법정 공방을 벌여가며 다퉜음에도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다.
신경과에서는 파킨슨 병 환자와 같이 SSRI의 투약이 필요한 환자들이 받을 치료 권리가 전문성을 이유로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신건강의학과 입장에서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명백한 전문성이 존재하고, 국내 정신건강 치료를 단순히 약물에 국한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정신치료가 중요해지는 현대사회에서 타진료과 주장은 나무만 보고 숲은 외면하는 단견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과거 안과와 성형학회간 쌍꺼풀 수술의 전문성 여부를 놓고 벌어진 일말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9년 안과의사들은 성형외과에 비해 쌍꺼풀 수술의 전문성이 결여된다는 법원 판결에 항거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쌍꺼풀 수술과 같은 안(眼) 성형에 있어서 성형외과와 안과의 전문성이 격돌한 사례다.
당시 안과의사회와 안성형학회는 법원이 안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은 환자가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데 대해 해당 안과가 성형에 전문성이 없는 만큼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에 대해 항소비용을 지원하며, 판결을 번복하게 했다.
이후 안성형학회는 눈꺼풀성형술 등을 학회 프로그램에 담고, 매년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전문성을 알리고 다양한 수술기법을 공유하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 중이다.
“초음파 진단 수가놓고 내부 아귀다툼···소외된 학회도 존재”
문제는 공통 영역에서 더 치열하다. 환자의 질환을 진단하는 기본적인 부분에서는 진단 수가를 놓고 학회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일쑤다.
초음파의 경우 각 과별 활용도가 높아 환자 방문시 자주 사용되는 진단 방법 중 하나다. 초음파학회가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서로의 영역과 수가를 확보하려는 전쟁은 치열하다. 또 다른 침범인 셈이다.
각 학회는 봄 가을 2번의 학술대회에서 초음파 교육을 의무화하거나 초음파학회와 연계한 인증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영역 확보에 속도를 낸 지 오래다.
과별 진단의 필요성과 관리 등에서 수가 협상 시 영향력을 낼 수 있게끔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포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과열 경쟁에서 일부 학회는 진단수가를 받을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일례로 류마티스학회는 지난 2013년 초음파 검사 급여화 추진 중 상대가치 점수 최하위로 제대로 된 수가를 받지 못하게 됐다. 이후 학회는 올해초 대한의사협회 상대가치연구회 등에 참여하며 변화의 목소리를 촉구했으나 달라진 것이 없는 상태다.
심평원의 수가 상대가치 평가에서는 의사 업무량과 위험도, 직접 비용 등을 측정하지만, 영상의학과, 류마티스내과, 정형외과 등 구성원을 가진 류마티스학회의 경우 회원들은 진단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측정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 진료과는 26개여도 법적 의사는 단 하나?”
이처럼 진료과별 영역 침범의 문제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게 되면서 영역 갈등에 염증을 느끼는 일부 의학회 회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회원들 내 이견은 전문영역 확보에 대한 관심을 줄이는 일까지 초래하는 현실이다.
마취통증의학회의 한 회원은 “수 년 째 학회 심포지엄에서 나오는 현안 문제는 도돌이표나 다름 없다”면서 “관심이 줄어든 데는 학회 내에서도 일반의와 전문의, 개원 여부 등의 문제도 입장차가 갈리는 데다 이렇다 할 답이 없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법적 전문성의 기준을 좀 더 명화하게 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문 진료과는 26개로 구분해 놓고 법령상 개원이나 의사에 대한 구분은 획일화된 만큼 분란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와 유사한 시각으로 환자를 위한 맞춤 치료를 위해 영역 싸움이 아니라 협진과 다학제적인 접근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획일화된 틀보다는 진료 환경 자체를 개선해 상생할 수 있는 큰 그림이 기반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대한우울조울병학회의 한 회원은 “영역에 대한 상호 존중과 인식이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다”면서 “학회간 진료영역 다툼으로 비화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단순한 시소게임으로 중재를 할 것이 아니라 공존이 가능한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