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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을 박차고 나와 창업하는 의사들이 적잖다. 디지털헬스케어와 의료기기 분야 창업이 특히 활발하다. 제약과 비교해 아이디어만 있으면 작은 규모의 자본으로도 창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의사들의 기술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의사들의 미 충족 수요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의사가 간파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의사 CEO는 미래 보건의료산업의 주역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전체 창업률 정체 불구 의사 창업 증가
국내 헬스케어 분야 창업률은 정체 상태다. 창업률은 실제 활동기업 대비 창업기업 비율을 의미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제약과 의료기기분야 헬스케어 창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창업률은 지난 2008년 7.4%에서 2009년 9.1%로 상승했다.
2010년에는 9.2%로 최고치를 찍은 이후 꾸준히 하락해 7%대에 머물러 있다.
제약 분야 창업률이 의료기기에 비해 크게 감소하고 있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의료기기는 2006년 이후 급증한데 반해 제약은 2009년 11.2%에서 7.3%로 줄었다.
창업활동은 침체됐지만 의사 창업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인 마크로젠 서정선 대표 성공 이후 적잖은 의사들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의사 창업은 임상 현장의 실질적인 수요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유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병원이 보건의료산업 혁신의 주축이 돼 미래 의료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도 궤를 같이한다.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에서는 ‘1세대 창업가’로 꼽히는 헬스브리즈(舊 헬스웨이브) 정희두 대표가 유명하다.
정 대표는 서울대학교병원 외과 전공의 출신이다. 수술법, 부작용 등 복잡한 의료정보를 환자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쉽게 이해하게끔 돕는 설명처방서비스 ‘하이차트’를 개발했다.
전공의 시절 여러 환자에게 동일한 수술법을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느라 진땀을 뺐던 경험이 씨앗이 됐다.
병원에 필요한 핵심 서비스라는 확신을 얻은 후 병원을 그만두고 전업 사업가가 된 케이스다.
아이디어 기반 의료·ICT 융합 솔루션 속속 등장
열나요는 체온에 따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체온을 입력하면 증상의 원인과 어떤 해열제를 얼마나 복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줘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MBC 의학전문기자로도 활동했다. 현재 한국의료재단 IFC 검진센터 부원장직도 맡고 있다.
최형식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개발한 ‘헤셀’(HeSeL)은 최근 답보 상태인 병원 간 진료정보 교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환자가 진료기록을 모바일 기기에 저장해뒀다가 의료기관에 직접 유통하는 POR(Person Owned Repository)이 개념이다.
그는 연세의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팍스’(PACS) 국산화 성공을 이끈 인물이다. 인피니트헬스케어 전신인 메디페이스와, 메디칼스탠다드도 그가 창업했다.
의료기기 CEO 중에도 의사 출신이 있다. 휴대용 무선초음파 ‘소논(SONON)’을 개발한 힐세리온 류정원 대표다. 그는 가천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소논은 수천만원에 이르는 기존 초음파 진단기와 비교할 때 가격은 3분의 1에 불과하고 의사용 가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워 휴대가 간편하다.
와이파이를 이용한 무선통신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초음파 영상까지 전송할 수 있다. 이에 산부인과는 물론 교통사고 등 각종 응급진료 현장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전 세계 30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국내 200대, 외국에 300대 정도 보급됐다.
내시경수술기구 개발 기업 파인메딕스도 대표적인 의사 창업 기업이다. 전성우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위암센터장 겸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표다.
파인메딕스는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경북대학교병원 등 전국 30여개 병원에 내시경시술 기구를 납품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 관리 적합한 합리적 규제 적용 시급
창업은 활발하지만 아직 성공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의료기기는 기술 진입장벽이 높거니와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의 경우 아직 산업 초기 단계라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영향이다.
의사 창업가들이 현장에서 느낀 창업 성공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이들은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혁신 기술을 융합한 제품 및 서비스 특성에 맞게 기존의 규제가 아닌 새로운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진단 및 치료와 관련한 의료 행위가 아니고 인체에 미치는 위해도가 낮은 제품 및 솔루션의 경우 의료기기법의 엄격한 적용을 삼가야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는 “의료기기의 경우 해외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제 기준에 맞춰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하고, 헬스케어 제품 및 솔루션의 경우는 규제를 완화해야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정창욱 교수팀이 개발한 ‘전립선암 계산기’는 엄격한 규제로 인해 사업화에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
전립선암 계산기는 국내 전립선 조직 검사 및 수술 시행 환자 7000명 정보를 토대로 전립선암 발병률과 병기를 계산해 주는 무료 모바일 앱이다.
정 교수팀은 앱을 무료로 배포했으나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앱 진단 결과가 신뢰할 만한 결과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등록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상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은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의 경우 기존 의료기기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아 창업과 투자가 저조하다”면서 “단순 의료정보 제공 및 건강관리용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서까지 의료와 동일한 규제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지불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보건의료산업 재원은 정부, 환자, 의료기관의 희생으로 마련되는데 새로운 재원이 등장하지 않으면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어 갈등만 유발되고 사업이 커지기 어렵다는 논리다.
정희두 헬스브리즈 대표는 “인터넷 비즈니스가 지금처럼 커 질 수 있었던 것은 광고라는 제4의 재원이 등장했기 때문”이라면서 “모바일 기반 디지털헬스케어산업 역시 광고 기반의 새로운 지불자가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커질 수 있다.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패해도 재도전 가능한 창업생태계 조성 필요
실패를 하더라도 재도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프라가 조성되고 벤처캐피탈(VC) 투자와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이 활발한 미국과 이스라엘에 비해 우리나라는 창업이 저조하고 벤처캐피탈(VC) 투자도 활성화되지 않았다.
산업별 VC 투자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의 바이오·의료 등 헬스케어 분야 투자 비중은 50%, 유럽은 60%대인 반면 최고 우리나라는 10.6%에 불과하다.
헬스케어 산업 특성상 창업부터 성공까지 통상 7~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창업 단계별 필요한 자금 규모도 상당하다. VC투자가 저조하면 창업가가 떠안아야 할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창업 출구(出口)’가 될 수 있는 M&A도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내에서 창업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상장과 M&A다. 상장과 M&A가 8:2의 구조인데, 상장까지 평균 10년이 걸린다.
힐세리온 류정원 대표는 “성공한 창업가가 많이 나오려면 너도 나도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M&A가 활발히 이뤄져야 창업가는 벤처 사업가로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창업하고, 대기업에 팔아 큰 기업으로 육성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출구전략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