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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진단서와 의사 소신
[ 2016년 10월 17일 10시 20분 ]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그는 기자에게 짧은 한 마디를 건넸다.
 

눈으로 본 사실을 있는 대로 전달했을 뿐인데 그것은 사회 전체를 뒤흔든 특종이 됐다. 1987년 1월 15일 세간에 알려지게 된 故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얘기다.
 

삶과 죽음이 있는 곳에 의사도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던 박종철 군이 숨을 거둔 날에도 의사가 있었다. 당시 중앙대학교병원에 근무했던 오연상 내과의가 그의 사망진단을 내렸다.
 

오연상 의사는 수사관의 감시를 피해 그와 접촉한 기자에게 본 그대로 증언했다. “환자의 폐에서 수포 소리가 났다.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다.” 여론은 박종철군 죽음과 물고문의 연관성을 알아챘다.
 

경찰 감시망에 놓인 의사는 또 있었다. 고려대학교 법의학과 황적준 교수는 당시 부검의로서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처리하라는 회유를 받았으나 자신이 밝혀낸 부검 결과에 따라 ‘경부압박치사’라고 결론졌다.

황 교수에 따르면 그의 소신은 “정의감보다는 법의학 전공자의 직업적 소명”에 근거한 것이었다.
 

故 백남기씨 죽음을 두고 우리 사회가 커다란 논란에 휩싸였다. 진단서 작성에 대한 외압을 비롯해 유족들의 연명치료 거부 등 사망진단서를 둘러싼 의혹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의혹이 의혹을 낳는 상황만 거듭되고 있다. 뚜렷하게 밝혀진 사실관계가 없는 만큼 뭐라 단정 짓기는 이르다.
 

하지만 명백한 사안은 분명 존재한다. 고인이 어떻게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 의학적 소견을 밝히는 일이다. 이것은 어렵지 않다. 의사로서 직업적 소명을 다하면 된다. 의뭉스런 것들이 해소되고 가려진 맥락이 드러나는 핵(核)이다.
 

그런데 모두가 동의할 만한 사망진단서를 받아보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계속되는 논란에 서울대병원은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기자회견까지 가졌다. 그럼에도 여론은 쉽게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반적인 사망진단서 지침과 다르게 작성됐으나 사인 판단은 주치의 재량에 속한다”는 모호한 결론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의 외침은 묵직한 울림이 되고 있다.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저희는 이토록 명백한 오류가 단순한 실수인지, 그렇다면 왜 이를 시정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국가고시에는 직접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 된다는 문제가 출제된다. 의대생들은 선배들로부터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고인의 직접사인은 '심폐정지'로 기록됐다. 배운 사실과 다른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의사협회는 "진단서 작성지침에 따르면 사망의 종류는 직접 사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인은 물대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선행 사인이 분명 존재하지만 기록된 사인은 '병사'였다.

이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한 부검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의학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병사'든 '외인사'든 보다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백선하 교수와 다른 입장을 취했던 이윤성 교수도 국감에서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부검 역시 사인 논란의 한 축을 이루고 있어 진행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부검을 주장하는 쪽은 경찰과 검찰, 거부하는 쪽은 유가족이다 보니 시행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지난 14일 있었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는 서울대병원 서창석 원장 및 고인의 주치의였던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다수의 의료계 인사들이 백 교수의 사망진단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경일 전 서울시립동부병원장은 "의사로서 부끄럽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백 교수는 "사망진단서 작성에 외압은 없었다"며 소신대로 작성한 진단서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의학적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사건을 철저히 직업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여론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다른 의사들도 나름의 소신을 지킨 그에게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왜일까. 백 교수 의견을 단순히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기엔 쉽게 가시지 않는 의문들이 존재하는 것 때문일까. 의사로서 소명을 다한다면 '명백한 오류'라고 불리고 있는 것 또한 해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해진기자 hjhan@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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