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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타오른 지 한 달이 다 돼 가도록 국민들의 외침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가 보다.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5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1월 26일은 ‘기적의 날’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역사적이었다. 전국에서 주최 측 집계로 160만여 명이 모였지만 부상자도 연행자도 전무(全無)했다.
격렬한 구호와 화염병, 생경한 운동가 대신 LED촛불과 친근한 대중가요가 광장을 넉넉하게 품었다.
촛불들 사이로 흰 가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옆, 의료지원단이라는 천막을 설치하고 혹여 생길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바로 젊은 의사들이다.
진료실에서 청진기를 들고 환자 곁을 지키던 전공의들이 이곳으로 자발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다 돼 간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간이로 설치됐기에 바닥은 얼음장 같이 차가웠지만 이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해 보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기동훈 회장을 만났다. 그 날은 전공의협의회 대의원총회가 있던 날이었다. 녹초가 된 몸을 지체할 새도 없이 의사협회가 있는 이촌동에서 그는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왔다.
기동훈 회장은 “시청 앞 광장에서 진행된 제3차 집회부터 의료지원단이 필요하다는 소식을접하고 지금까지 참
여하고 있다”며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면서 혹시 의료지원이 필요하면 도움을 드리고자 다짐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국민 집회 의료지원단에는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피부과 전공의 10여명이 참여했다.
"힘든 메르스 사태때 도망간 젊은의사 한명도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딸과 함께 현 정권 퇴진을 위해 목발을 짚고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50대 여성이 발을 절뚝거리며 의료지원단을 찾았다. 현장에 있던 박단 전국의과대학생연합회장이 빠르게 처치했다.
기 회장은 “거리로 나온 시민 중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했다”며 “개개인보다 의료팀이 이곳에 자리를 지킴으로써 의료인으로서 소신을 다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기 회장은 “적지 않은 인파가 참여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간단한 응급의약품부터 혈당 혈압 체크기, 자동 심장제세동기 등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다가 기 회장은 지난해 메르스 참사를 떠올렸다.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는 분노감과 허탈함이 느껴졌다.
기 회장은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대규모 감염에 휩싸이면서 메르스로 전 국민 공포에 떨던 당시를 생각해보라. 당시 젊은 의사들 중 환자를 포기하고 도망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행여 가족과 이웃들에게 전염될까 병원에서 먹고 자며 동료가 격리되고 쓰러지는 상황이 속출했던 실정이었다.
기 회장은 “오로지 국민건강 수호라는 생각에 희생하고 봉사한 의사들을 뒤로 하고 현 정부가 모두를 실망과
분노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 특히 최순실 사태도 모자라 의료 게이트라는 말까지 나와 허탈할 뿐”이라고 말했다.
"의사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나라 만들겠다고 공언했는데···" 울분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의사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나라,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의 무책임과 직권 남용은 그토록 건강하게 지키고 싶었던 대한민국을 깊이 병들게 했다.
11월 10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발표한 시국선언문에는 ‘진료와 처방의 근거가 환자의 임상적 상태와 의학적 원칙이 아닌 누군가의 허락이 되는 나라를, 의료가 모두를 위한 선의가 아닌 누군가의 편의가 되는 나라를, 그
리고 공권력이 국민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나라를 우리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대목이 있다.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평범한 의사는 사람을
고치고·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기 회장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져 온 나라가 실의에 빠져 있지만 젊은 의사들은 환자 안전과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롯이 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최선의 의료를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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