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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경주 지진 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각종 재난‧재해에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단어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고백이 잇따르면서 질환의 인지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여기에 전화상담원, 판매원, 승무원 등으로 대변되는 감정노동자들의 우울증까지 최근 우리사회에는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 보다 높다. ‘정신병’이라는 씻을 수 없는 주홍글씨를 새겨 넣던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 처럼 현대인의 삶에서 ‘정신건강’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체계적인 관리와 연구, 교육 등은 여전히 요원하다. 바로 이 과제를 풀기 위해 출범한 기관이 바로 국립정신건강센터다. ‘정신건강 증진을 통한 국민행복 실현’이 센터의 태생 배경이자 존립의 이유다. 지난해 2대 수장으로 임명된 이철 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은 그 임무의 중차대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깨가 더 무겁다. 24일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난 그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정신건강 시스템 변화에 주목해도 좋다”고 힘줘 말했다.
“정신건강 표준 선도”
사실 이철 센터장은 정신건강의학과 권위자임과 동시에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수련 등 국내 의학교육에 헌신한 천상 교육자였다.
경기고 출신으로 서울의대를 졸업한 그는 1989년부터 울산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아산병원 교육수련실장 및 교육부원장, 울산대병원장, 울산대 의무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지난 2011년에는 울산대학교 총장에 올라 4년 간 임기를 수행했다. 의사 출신이 울산대 총장을 역임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대한민국 의학교육의 큰 획을 그는 지난해 10월 학교를 떠나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 정신건강 시스템 개혁’이라는 굳은 의지와 함께였다.
마침 정신건강 컨트롤타워로서 양질의 공공진료 서비스 강화, 이를 뒷받침할 연구, 지원을 통해 국민건강에 최적화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이 개편된 시점이었다.
이철 센터장은 “정부가 정신건강을 곧 삶의 문제로 패러다임 전환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진료, 연구, 사업,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고 경영의 효율성 제고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전했다.
이어 “직원들이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일터, 나아가 미래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할 의학도들이 배움을 갈망하는 센터로 만들어 가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다부진 포부를 갖고 센터장에 취임한 직후 난제가 발생했다. 강제입원 절차를 개선하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했다.
오는 5월 30일이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이 법에 대해 의료계는 ‘졸속’이라는 비난과 함께 실행 준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철 센터장은 의료계의 공분에 대해 공감을 표하면서도 ‘환자인권 보호’라는 법 취지를 감안해 안정적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제도 변화에 따른 인력이나 예산 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보다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공공의 영역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민간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수긍했다.
다만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환자인권 보호’를 위해 추진된 만큼 무조건적인 반발 보다 정부와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수용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철 센터장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환자인권이 소홀히 다뤄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라며 “법 시행 전까지 최대한 보완해 정신보건법의 안정적 정착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SSRI 논란, 첫 단추부터 잘못”
진료과 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처방과 관련해서는 워낙 첨예한 사안인 만큼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철 센터장은 사견(私見)을 전제로, 조심스럽게 SSRI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특정 진료과의 편에 서기 보다는 잘못된 의료체계에 대한 지적으로 에둘러 답을 대신했다.
그는 “환자의 편의성을 감안하면 처방권 전면 확대가 맞겠지만 진료의 질을 고려하면 전문가로 제한하는 게 옳다. 때문에 이분법적 판단은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국한시킬지, 다른 진료과 의사들도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할지 어느 편에 서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센터장은 민감한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 보다 SSRI 처방권 논란의 시발이 왜곡된 의료제도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그는 “그동안 의료정책은 명분이나 원칙에 있어 의사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며 “결국 SSRI 처방 논란도 왜곡된 수가체계에서 비롯됐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탓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SSRI 논란이 정신건강의학과와 다른 진료과 간 경제논리로 흘러가는 부분이 가장 우려스럽다”며 “정부, 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 부분에 대한 조율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신건강의학 수련의 요람”
학교를 떠나 왔지만 의학교육의 열정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진료·연구·사업 시스템 구축’이라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역할 외에 교육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일반 대학병원 대비 압도적인 지도전문의 수나 다양한 질환군 등은 국립정신건강센터만이 갖고 있는 독보적인 수련환경이다.
이철 센터장은 “센터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만 32명이다. 단일 진료과목 최다 지도전문의 수다. 전국 어느 대학병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선 대학병원에서는 수익성이 좋지 않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고, 이는 전공의들이 다양한 질환군을 경험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다양한 질환군 경험이 가능하고, 지자체와의 연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임상부터 복지까지 전반적인 시스템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국립정신건강센터에는 수석 졸업자들도 심심찮게 지원한다. 레지던트 정원은 4명으로, 미달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이철 센터장은 “정신건강의학 전공의들에게 최적의 수련을 제공할 수 있는 만큼 머지않아 대학병원들이 센터에 수련을 의뢰하는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