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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불거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현정권의 지향점과 배치되는 예술가들의 살생부가 존재했고, 실제 각종 불이익으로 이어졌다는 소식에 온나라가 들썩였다. 국민들은 블랙리스트 자체는 물론이니와 그 작성 취지와 의도에 공분했다. 특검 수사결과 발표가 임박한 만큼 곧 그 실체와 죄목들이 낱낱이 밝혀질 전망이다. 어마무시한 이번 리스트와는 비견하기 힘들겠지만 의료계에도 숱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 작성자들 입장에서는 ‘정보공유’ 차원이지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당사자들로서는 격분하고도 남음이다.
“이 병원 절대 가지 마세요!”
가장 흔하게 접하는 의료계 블랙리스트는 바로 환자들이 평가하는 병‧의원 명단이다. 환자들은 나름의 경험담을 토대로 의료기관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
부작용 피해 사례 및 분쟁이 잦은 성형외과, 피부과 등이 대표적이다. 환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사례를 공유하고, ‘가지 말아야 할 병원’ 명단을 작성한다.
실제 D포털 안티 성형카페에는 7만 여명이 가입돼 있으며,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 새로 개설된 카페에는 매일 50여 명이 가입하고 있다.
이 공간에는 부작용과 불만 등의 글이 게재된다. 구체적인 사유가 적시된 경우도 있지만 ‘인생 망친 환자 많음’, ‘잘난척 한다’, ‘양심없는 의사’ 등 주관적 표현이 주를 이룬다.
예전에는 의료기관 이름을 직접 게재하기도 했지만 병원 측이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자음만 표기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특정 병원임을 인지할 수 없다면 명예훼손을 주장할 수 없다’며 송사를 피하는 방법까지 기술돼 있다.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의 경우 엄마들의 커뮤니티 공간에서 정보가 주로 교환된다. 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정보교류의 장인 이 곳에서는 의료기관 관련 내용도 적잖다.
‘이 곳에서 잘못 입소문이 나면 끝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아청소년과 및 산부인과 병의원들은 늘 이 커뮤니티를 예의주시 하고 있다.
“이 환자 조심하세요!”
역으로 병원이 환자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진료가 까다로운 환자 등을 ‘진상’으로 일컫고 리스트를 작성해 의료기관끼리 공유한다.
실제 몇 해 전 진상환자 정보와 이를 퇴치한 방법 등을 공유한 치과의사 커뮤니티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상당수 치과의사가 가입한 이 커뮤니티에는 진료에 비협조적인 환자의 신상정보 등을 나열하고 해당 환자들을 ‘진상’ 혹은 ‘BL(Black List)’로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진상조사에 나서면서 해당 커뮤니티는 폐쇄됐다.
병원들이 불가피하게 자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예약을 해 놓고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일명 ‘노쇼(No-Show)’ 고객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실제 병원의 연간 예약부도율은 음식점과 비슷한 18%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예약자 5명 중 1명이 약속을 어기는 셈이다. 이를 토대로 산출되는 병원들의 매출손실도 8100억원에 이른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자행되는 노쇼(no-show)는 환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진료뿐만 아니라 수술예약의 경우 병원의 경제적 손실을 넘어 환자 생명과도 직결된다.
때문에 개원가는 물론 대학병원들도 자체적으로 예약부도가 잦은 환자들의 명단을 작성해 특별관리에 들어간다. 예약시 다른 환자들보다 더 많은 확인전화 등을 통해 부도율을 최소화 하는 방식이다.
한 병원 컨설턴트는 “블랙컨슈머는 별도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물론 철저한 개인정보보호 원칙이 수반돼야 하는 예민한 문제”라고 말했다.
직원↔병원, 불편한 블랙리스트
애석하게도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 블랙리스트도 존재한다. 최근 봉직을 희망하는 의사들 사이에서 병원 규모나 임금수준은 물론 내부상황, 근무여건 등에 관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병원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근무를 시작할 경우 임금 및 직원들과의 관계 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잖은 만큼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행보들이다.
실제 봉직의 중심의 인터넷 카페에는 블랙리스트 병원에 대한 정보가 올라와 있고, 구인광고 등이 게재될 경우 유경험자들이 취업 재고를 권유하기도 한다.
임금체불, 당직비 미지급 등으로 입소문이 난 모 병원의 경우 구인광고가 올라오자 이 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들이 지원자들을 만류하는 바람에 해당 병원은 채용난에 시달려야 했다.
병원들도 직원들의 블랙리스트를 공유한다. 이 경우 당사자는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주홍글씨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개원가의 경우 간호조무사에 대한 정보교류가 활발하다. 갑작스런 퇴직과 병원에 해가 되는 근무태도 등을 공유하며 채용을 피하려는 목적이다.
실제 한 의사 커뮤니티에는 채용하지 말아야 할 간호조무사의 이름, 직책, 지역, 사유 등이 정리된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사유는 △무단퇴사 △무단결근 △능력부족 △상습적인 거짓말 △병원물품 절도 △우울증 등으로 다양했다.
한 개원의는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사전에 횡령, 절도 등의 전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리 알고 거부하는 게 좋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제약사‧보험사, 상상초월 리스트
흔히 ‘갑을관계’로 대변되는 의사와 제약회사 사이에도 블랙리스트는 존재한다. 특이한 점은 이 리스트를 작성하고 보유하는 곳이 ‘제약회사’라는 사실이다.
수 년 전(前) 의사의 신용을 믿지 못해 일부 제약사가 거래 의사의 신용조회를 관행적으로 행한 사례가 알려져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다.
제약사는 거래를 시작하거나 결제가 원만하지 않을 경우 의사나 병원의 신용정보를 조회했다. 해당 의사가 신용불량자이거나 병원 채무관계가 복잡하면 거래를 접기도 했다.
이는 의약품 미결제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한 제약사 나름의 고육책으로, 신용조회 관행을 사라졌지만 영업사원 간 인수인계에는 여전히 병원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
실손보험 시장이 급증하면서 병원명단을 작성하는 보험회사들도 생겨났다. 평균 대비 많은 진료비가 발생되는 의료기관 명단을 파악, 예의주시하기 위함이다.
특히 최근 실손보험을 악용해 비급여 진료비를 청구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만큼 보험회사들은 관련 병의원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이에 대처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환자들의 요구에 의해 진료를 실시했다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병원들은 음양으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실제 자동차보험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비 심사를 대행하고 있는 만큼 보험회사들이 블랙리스트 병원들의 진료 행태를 문제삼아 현지조사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 병원장은 “갑작스런 현지조사가 나와 배경을 알아보니 보험회사가 심평원에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보험회사들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니 기가막히다”고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