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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서 성공하려면 돈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인술(仁術)도 가능합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됐고, 그 분야의 새로운 의료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의대까지 설립해 반세기 이상 후학 양성에 힘쓴 의사의 일성이다. 이 의사가 의료계의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차경섭 차의과대학교·차병원 명예이사장이 5일 새벽 5시27분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故) 차경섭 이사장은 세브란스 의전 시절 등록금 마련이 힘들 정도로 가난해 4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의사로서 그의 시작은 시골의 작은 병원이었다. 전문의 개념조차 확실치 않던 당시에 남자 의사가 여성을 전문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이름을 떨치기까지 그는 편견을 깨고 미래를 내다보는 걸음을 걸었다. 현 차의과대학과 차병원의 모태가 된 차산부인과는 1960년 전문병원으로 개원, 당시에는 혁신이었다.
그는 1962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고황재단(경희대학교) 이사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의사 교육에 힘썼다.
돈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게 그의 교육 철학이었다.
1997년 설립한 차의과대학(당시 포천중문의과대)은 개교 이래 의학부 전 학년 전원에게 조건 없이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를 지원해왔다. 그의 교육철학 아래 가능한 일이었다.
IMF로 어려웠던 1998년에는 사재 400억원을 재단에 헌납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의과대학을 운영하며 후진양성에 힘쓰고 생식의학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이룩한 점을 평가 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이후 2007년에는 국내 의학계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4회 서재필 의학상을, 2009년엔 자랑스러운 연세인상을 수상했다.
2010년 연세의료원에서는 공로를 인정해 차 명예이사장의 이름을 딴 ‘김명선 차경섭 김인수 암연구상’을 제정되기도 했다.
그는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새 장을 열고 의료발전과 의사교육에 최선을 다한 의료계의 큰 별이었다. 그의 혁신과 교육철학은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의 의료계에 방향을 조언하는 큰 족적이 됐다.
- 차경섭 명예이사장
1938 평안북도 선천 신성중학교졸업(전주 신흥고)
1941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졸업
1955~1960 Missouri St.Louis 의과대학 병리
1962 의학박사 학위 취득(연세대학교)
1960~1963 이화여자대학교 의학대학 산부인과 교수
1960 차산부인과 의원 개원(원장)
1970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2005 무궁화 훈장 수훈
2007 제4회 서재필 의학상 수상
2009 2009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수상
2010 연세의료원 ‘김명선∙차경섭∙김인수 암연구상’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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