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작성에 아무런 기여 없이 이름만 올리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저자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책임저자(corresponding author)로 이름을 올리는 지도교수부터 출판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다. 대한의학회 홍성태 간행이사(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는 최근 의학회 'E-뉴스레터' 기고문을 통해 "국내 학계에는 저자됨(authorship) 위반이 만연해 있다"며 "저자 실명제을 하루 빨리 정착시켜여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됨'이란 출판 윤리 중 하나로, 연구 및 논문 작성에 관여한 연구자 중 저자로 명기하는 기준에 합당한 사람을 저자에 참여시키는 것을 말한다. 국제편집인위원회는 ▲연구주제 선정에 상당한 지적 기여나 연구결과 직접 생산 여부 ▲논문 작성 또는 수정 ▲최종 원고 검토 및 투고 동의 ▲전체 연구내용에 대한 공동책임 등 4가지 항목을 저자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기여자(contributor)로 구분해 기록하는 게 세계 표준이지만 학계에선 명예저자(honorary author 또는 gift author) 관행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명예저자는 논문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공저자로 올리는 경우를 일컫는다. 홍성태 이사가 저자 수 실태 파악을 위해 국내 종합의학학술지인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JKMS)'와 'Yonsei Medical Journal(YMJ)' 및 미국의사협회 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JAMA)'와 비교한 결과 저자됨 위반이 여실히 드러났다. 홍 이사는 "JAMA와 국내 학술지 모두 같은 기간 원 저자 수가 점차 증가했는데, 국내 학술지는 단일기관 연구와 다기관 논문에서 차이가 별로 없었다"며 "다기관연구는 대체로 연구에 실제 참여한 저자 위주로 기록하지만 단일기관 연구는 다수의 명예저자가 포함된다는 근거"라고 짚었다. 실제 단일기관 연구 논문만 따로 환산하면 국내 학술지는 평균 저자 수가 6~7명인데, JAMA는 2.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 이사는 “우리나라의 저자수가 공동연구에 의해 많은 게 아니라 연구팀 별로 기본 저자수가 이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국내 단일기관 원저 논문은 대체로 여러 명의 명예저자를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명예저자가 많아지면 연구업적 지표에도 거품을 만들어 여러 연구관련 지표의 정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연구업적 환산 방식에 따라서는 열심히 연구하는 젊은 주저자의 연구업적에 불이익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출판 윤리 의식이 희박해지면 실제 연구를 수행한 주 연구자에게 특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홍 이사는 저자됨 위반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교수나 나이든 전문가는 연구나 논문 쓰는데 뒷전에 있고 참여는 물론 내용도 모른 채 책임저자로 기록되는 우리 의학연구 문화와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자 전체를 대표해 편집인 또는 저자와 필요한 교신을 담당하고, 논문 내용을 책임지는 '책임저자(corresponding author)'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다. 홍 이사는 "대부분의 의학논문에서 제1저자는 대학원생이나 전공의 또는 젊은연구자이고 교신저자는 지도교수나 원로교수가 맡는데, JKMS에 투고된 논문의 책임저자와 교신해 보면 전혀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책임저자까지도 명예저자인 셈"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저자라면 내용에 대해 지적인 기여를 하고 원고를 쓰거나 수정에 참여하고 최종본 원고를 읽고 함께 그 내용을 알고 책임져야 한다"며 "책임저자부터 제 역할을 하면 저자 실명제는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실명제가 정착되면 연구 인프라가 더욱 단단해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