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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는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평가에는 늘 객체와 주체가 존재한다. 평가를 받아야 하는 객체 입장에서는 평가를 행하는 주체의 존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언제부턴가 의료계에도 질(質)을 중시하는 풍조가 자리잡으면서 각종 평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의료서비스 제공자인 의료기관은 객체, 보험자인 정부는 주체였다. 의료기관평가인증도 마찬가지다. ‘자율인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지만 결국 ‘의무인증’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의료기관들의 반감은 당연지사다. 때문에 인증원장 자리는 ‘욕받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이러한 상황을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국내 의료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명분을 위해 기꺼이 욕받이를 자청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석승한 원장이 오는 31일을 끝으로 임기를 마친다. 예정대로라면 1년 전 퇴임식을 가져야 했지만 어지러운 시국 탓에 엉거주춤한 상태로 1년이란 연장선을 그어야 했다.
퇴임식을 앞두고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난 석승한 원장은 “이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을 수 있게 됐다”며 그동안의 심적 고충을 토했다.
그도 그럴게 석승한 원장의 임기는 원래 지난해 8월까지였다. 후임자 인선이 늦춰지면서 부득이 원장직을 이어가야 했고, 한 두달로 끝날 줄 알았던 연장근무는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1년으로 늘어났다.
후임자 인선 지연과 새 정부와의 불편한 동거 등 각종 구설수를 피해 지난 1년 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있어도 있지않는 그런 존재였다.
사실 석승한 원장의 고충은 임기 내내 이어졌다. 취임 초반에는 직원 인건비 지급도 벅찰 정도로 열악한 재정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뿐만 아니라 2주기 인증평가 기준에 대한 의료계의 강한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고,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건으로 팔자에 없던 압수수색과 검찰 조사까지 감내해야 했다.
특히 ‘51세 젊은 기관장’이라는 명찰은 그가 인증원을 이끄는 동안 늘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러한 상황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의료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굳은 의지 때문이었다. 의료기관평가인증 효과에 대한 확신 없이는 버티기 힘든 시간들이었다.
최근 후임자가 결정된 후에야 그는 봉인하고 있던 말문을 열었다. 맺힘이 많았던 만큼 인터뷰는 2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마무리 됐다.
- 소회가 남다를 듯 하다
취임 과정부터 드라마틱했다. 전임 김건상 원장을 어렵사리 모셔 왔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중도에 그만 두셨다. 당시에는 조직이 갖춰져 있지 않아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나를 지목하셨다. 그 때 나이가 쉰 하나였다. 고난의 길임을 알고 있었지만 막 출범한 인증원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작동한 것 같다.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사건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보람된 성과도 적잖다. 조직도 이제 제법 위용을 갖췄다.
- 실제 임기 중 조직이 많이 커졌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다른 확장성 있는 분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적절한 시기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다. 이제 ‘환자안전’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인증원이 중심에 서야 하고 그동안 그 기반을 닦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열심히 뛰었기에 후회는 없다.
- 후임자 인사를 두고 설왕설래했다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공공기관 인사는 정권의 의사결정이고 방향이다. 우리는 그 테두리 안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당시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현직 기관장이 후임자 인사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다. 공직사회 분위기도 상당히 많이 변했음을 체감한다.
- 취임 당시와 비교해 JCI 열풍이 사그라들었다. 국내 평가인증 영향으로 보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평가기준 자체로는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조사방식이나 평가항목, 수가 연계 등 상당부분 발전했다. 이는 국내 의료기관들도 평가인증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많이 하게된 것으로 생각한다.
- 의무인증이라는 불만이 많다. 특히 수련병원들의 반감이 크다
수련병원의 인증 필수는 2009년부터 논의됐던 사안이다. 수련병원에는 젊은 의료인들이 많다. 이들이 처음부터 환자안전 등 제대로된 인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병원들 나름 고충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수련병원 인증 의무화는 도입이 마땅하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 '인증 후 도루묵’이라는 지적이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온전히 리더십의 문제다. 인증을 받기 위해 어렵게 잡아놓은 체계를 평가가 끝났다고 흐트러뜨리는 것은 리더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적잖은 비용을 들여 인증을 받았는데 그런식으로 회귀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 조사위원들의 갑질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인하지도 않겠다. 조사위원이 750명이다.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개인의 자질 문제까지 관리할 수 없다. 결국 갑질하는 조사위원을 가려내고, 더 좋은 자질을 갖춘 위원을 배치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나마 처음보다는 많은 개선됐다.
- 조사위원 자격 요건을 강화할 필요 있지 않나
조사위원은 현직과 퇴직 직원 등 크게 2개 부류다. 전체적으로 보면 간호사가 많다. 하지만 퇴직 직원들은 나이가 많다. 이들은 임상현장을 떠난지 오래인 만큼 현장감각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갑질 논란이 불거지는 경우도 있다.
- 인증원의 발전뱡향은
이미 요양병원, 정신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에 대한 의무 인증이 시행 중이고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평가도 인증원에서 담당한다. 조만간 산후조리원 평가사업도 맡게 된다. 이처럼 업무는 계속 늘고 있지만 인력은 그대로다. 어려움이 많다. 인력 확보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여전히 아쉽다.
- 의료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서운하다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이 많았다. 나 역시 의료인이기 때문에 의료계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평가인증은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평가는 불편하지만 궁극적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