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 설립이 사회적 화두로 재부상한 가운데 허가권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에 관심이 모아진다.
새 정부가 ‘영리병원’으로 대변되는 투자개방형병원을 용인할 경우 의료 공공성을 지향하는 정책 기조에 배치되고, 부인할 경우 이율배반 논란에 휩싸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뤼디그룹은 최근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에 778억원을 들여 녹지국제병원을 준공하고, 제주도에 개설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신청서에는 법인등기부등본 및 정관, 건물 평면도 및 구조설명서, 진료과목과 과목별 시설, 정원, 개요설명서, 의료인력 및 행정인력 운영계획 등이 담겼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자본금 준수, 외국인 지분, 시설, 의료인력 정원 등 요건 충족 여부를 비롯해 보건복지부 사업계획서 승인사항, 구비서류 확인 등을 검토하고 있다.
도는 개설 허가 요건이 맞으면 현장 시설조사와 검증 절차를 거쳐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다만 의료 공공성 훼손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감안, 9월1일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개최해 투자개방형병원 허가에 관한 의견을 수렴했다.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서는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제주지역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따라 도지사의 허가를 받으면 된다.
즉 제주도가 뤼디그룹의 의료기관 개설허가 신청을 수용할 경우 국내 최초의 영리병원이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투자개방형병원 허가의 정치적 역학관계다.
사실 투자개방형병원의 설립 근거는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가 외국인 전용 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하면서 만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 시절이다. 더욱이 당시 이 법을 승인한 최종 결정권자는 다름아닌 故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故 노무현 대통령 역시 투자개방형병원과 무관치 않다.
지난 2005년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외국인과 외국법인에 한해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의결됐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김대중, 노무현 前 대통령의 흔적 앞에서 고단한 천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녹지국제병원의 최종 허가권을 쥐고 있는 제주도지사와의 관계도 흥미롭다. 현 원희룡 제주지사는 2014년 새누리당 소속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인물이다.
이후 소속 정당이던 새누리당의 내분 사태 과정에서 바른정당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정부 입장에서는 야당 소속 지자체장인 셈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녹지국제병원을 허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현재로써는 제주도의 허가 결정에 무게추가 쏠리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사업계획서 승인을 통해 법리 검토를 끝낸 만큼 최종 허가권은 지자체에 있다며 관망의 자세를 취했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이미 2015년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서를 승인한 만큼 더 이상 복지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가 다양한 검증을 통해 허가를 내주면 병원은 개원하게 된다”며 “특별한 하자가 없는 상황에서 반려되면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