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의 시작은 ‘행정’이 아닌 ‘진료’였다. 이타심 가득한 천성 탓에 화려한 대학병원 대신 작은 시골마을의 보건소 관리의사를 택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인 그는 학창시절부터 공중보건과 공공의료에 애착했다. 탄탄한 성공가도를 마다하고 보건소로 향한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 모르겠다.
촌로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던 그에게 보건복지부 특채 입사 기회가 찾아왔고, 그렇게 공직에 입문한지 20년 만에 국내 공중보건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 그는 복지부 입사 후 혈액장기팀장, 보건산업기술과장, 만성질환관리과장, 응급의료과장 등을 두루 역임했지만 유독 감염병과 인연이 깊었다.
2003년 사스(SARS) 유행 당시 국립보건원 전염병관리과장을 맡아 최일선을 지켰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시에는 복지부 대책본부 총괄팀장, 2015년 메르스(MERS) 사태 당시에는 중앙메르스대책본부 현장 반장으로 활약했다.
‘준비된 질병관리본부장’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공직생활이 평탄한 것 만은 아니었다. 특히 사상초유의 메르스 사태에 받은 상처는 아직도 아리다.
중앙메르스대책본부 현장 반장으로 밤낮을 잊고 고군분투했지만 돌아온 건 ‘정직’이라는 징계였다. 훗날 소명을 통해 ‘감봉’으로 수위가 내려갔지만 마음의 상처는 흉터로 남았다.
‘메르스 예방 및 대응실태’ 감사결과를 통해 징계를 받은 공무원 대다수가 의사 출신이었고, 정은경 본부장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공직사회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사보다 공무원으로 살아온 지난 삶에 고마움을 표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역할인 만큼 막중한 책임감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정책과 제도 시행에서 느끼는 보람은 그 고됨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전문기자협의회는 “백번, 천번, 만번을 생각해도 공무원 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말하는 그를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위치한 충북 오송에서 만났다.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병관리본부 역할론에 대한 질타가 많았다
아쉽지만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초반에는 질병관리본부 차원에서 대책본부가 꾸려졌다. 하지만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보건복지부, 국무총리실 등으로 컨트롤타워가 이관됐다. 국내 공중보건 위기 대응력의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실질적 권한이 없었음에도 비난은 질병관리본부의 몫이었다
권한이 주어지면 그에 따른 책임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메르스 사태와 같은 참담한 상황을 다시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감염관리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메르스 이후 제도와 시스템 등 많은 게 변했다.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금은 질병관리본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타 부처 등에서 지원 필요성이 있을 경우 협력하는 형식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신종 감염병은 물론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질병관리본부가 확실한 중심에 서게 된다.
-감염병 관리에서 일차의료기관 역할 강화 필요성은
환자들과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일차의료기관들의 경우 감염병 감시, 발견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메르스와 지카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감염병에 대한 일선 개원가의 인식과 경계심도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유입 가능성이 높은 해외감염병, 결핵, 계절병 유행하는 감염병 등에 대한 정보를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일선 의료진에게 문자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이전에는 이메일 서비스를 했지만 수신율이 높지 않아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전환시켰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없는지
감염병 정보를 의료기관들의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연동하거나 탑재시키는 방안에 대해 검토해 왔고, 현재 기술적으로도 거의 준비가 완료된 상태다. 의료계와 협의를 통해 조만간 실행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예방접종 불신을 조장하는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다. 대책은 없나
안아키 사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방접종이 필요없다는 서적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예방접종 외에 다른 질병에 대한 왜곡된 정보도 상당수다. 우선 이런 사례를 확인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의료IT 기술 활용한 감염병 대처 계획은
10년 전 처방전달시스템과 연동되는 감염병 자동보고시스템 시범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최근 예산을 확보해 일부 의료기관에 해당 모듈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향후 대상기관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