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정밀의료 산업화보다는 이 과정에서 유발될 수 있는 문제들을 조정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신현호 해울 변호사 )
지난 4일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한국의료법학회, 미래의료인문사회과학회가 공동주최한 제1차 ‘국민 참여 보건연구자원 개발사업’ 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은 복지부 주도 하에 진행되는 한국형 정밀의료 사업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들의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모아진다.
우선, 국내에서 시행하는 정밀의료 사업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기존 사업과의 연계성이 부족한 점도 문제로 꼽혔다.
김옥주 서울의대 교수는 “국립보건연구원이 발표한 국가 정밀의료사업계획을 보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정밀의료의 윤리적·법적·사회적 함의 연구(ELSI) 전에 한국형 정밀의료 모습이 어떤 것인지 구체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보면 기존 연구 활동을 배경으로 사업을 발전시킨다. 서울대병원에선 정밀의료센터를 개소하고 임상현장에서 정밀의료 구현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며 "기존에 운영해오던 바이오뱅크 사업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추진하던 인프라 구축 작업과 별개로 새롭게 진행하는 것인지, 기존 사업과 연계가 된다면 어떻게 결합시켜 운영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호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오늘 포럼에서 정밀의료 추진 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쟁점을 이야기해달라고 요청받았는데, 발제 내용을 한참 봐도 정밀의료라는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면서 “구체적인 모습이 수면 위로 드러나야 법률적 쟁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선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복지부가 정밀의료를 지나치게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연구환경 조성과 생태계 구축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현호 해울 변호사는 “그동안 가졌던 의문은 복지부가 왜 의료산업화를 조급하게 안달하며 추진하느냐는 것”이라며 “보건과 복지를 관장하는 복지부는 자원을 고르게 분배하는 일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지 산업통상자원부처럼 돈을 버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아선 안 된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신 변호사는 “정밀의료산업 육성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상당히 많다”며 “환자 정보 수집 및 이용 시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암관리법, 의료법 등 7개 법률이 충돌한다. 이런 문제를 조정하고, 민간업체들이 정밀의료에 뛰어들 수 있게 연구 환경만 조성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구영모 울산의대 교수도 “복지부 역할은 정밀의료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잠재적 갈등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 의견을 조율하고, 조정을 위한 절차적 틀을 만드는 일”이라며 “빠르게 추진하는 것보다는 제반 사항을 검토해가며 안전하게 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측은 패널들의 지적을 적극 수용해 향후 사업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질본 관계자는 “사실 저희는 국민의 입장에서 ‘나라면 이 사업에 참여할까’라는 측면에서 사업을 진행했다”며 “그러다보니 환자 정보 이용 시 7개의 법률이 충돌한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지는 기술 환경 변화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이어 그는 “기존에 진행하던 바이오뱅크 사업 등을 연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패널들에게 지적 받은 사항들을 잘 반영해 정밀의료 사업 추진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