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2018년 새학기를 앞두고 있는 의과대학에도 교수들의 정년퇴임 시즌이 도래했지만 예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역력하다.
은사의 헌신과 공을 기리기 위한 후학들의 성대한 행사가 자취를 감춘 대신 강의실 등에서 간단한 다과로 스승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자리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오는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A대학병원 순환기내과 B교수는 제자들과 의과대학 강의실에서 조용한 퇴임식을 갖기로 했다.
퇴임식 준비를 놓고 고민이 많은 제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본인이 먼저 조촐한 퇴임식을 제안했다. 일체의 정년퇴임 선물도 사양했다.
C대학병원 영상의학과 D교수 역시 얼마 전 출판기념회로 정년퇴임식을 갈음했다. 그 마저도 세미나 형식의 간소한 행사로 진행됐다.
이처럼 의과대학 교수들의 정년퇴임식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특급호텔에서 논문집 헌정식 등 화려함으로 점철됐던 모습은 근래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의대교수들의 정년퇴임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타과 교수에게 뒤처지지 않는 게 도리라고 여긴 후학들은 경쟁적으로 소속 교실 은사의 퇴임식을 챙겼다.
연회장소는 호텔이 기본이었고, 수 천만원에 달하는 세계 크루즈 여행권 등 고가 퇴임선물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명의(名醫)로 이름을 날리며 조직 기여도가 높았던 교수들의 경우 소속 교실에서 마련한 퇴임식에 대학교 총장까지 참석했고, 일부 교수들은 정관계 인사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러한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리베이트 쌍벌제를 비롯해 김영란법 등이 시행되면서 의대교수들의 정년퇴임식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정년퇴임을 맞은 서울대학교병원 성형외과 모 교수의 수 백만원 짜리 골프채 선물이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면서 올해는 더더욱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당시 서울대병원 교수 17명은 스승이자 선배인 E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선물로 760만원 상당의 골프채를 선물했고, 김영란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관행이었던 점, 해당 교수가 선물 가액 전부를 반환한 점, 30년 재직 후 정년을 앞두고 받은 점 등을 감안해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지만 이 사건이 울린 경종은 상당했다.
이 사건 이후 전국 의과대학에서는 교수들의 정년퇴임 관련 행사나 선물에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다.
F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번에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에게는 송구하지만 시대가 변한 탓에 제대로된 행사나 선물을 준비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G대학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과거 경쟁적인 퇴임식이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작금의 상황은 오히려 더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고 털어놨다.
스승의 마지막 길을 도저히 초라하게 보내고 싶지 않은 후배나 제자들의 경우 아예 정년퇴임식 시점을 미루기도 한다.
퇴임식 전 간단한 행사를 치르고 스승이 김영란법에 해당하지 않는 자연인 신분 상태에서 제대로된 행사나 선물을 드리기 위함이다.
H대학병원 피부과 교수는 “내부 논의를 진행한 결과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오는 3월 교실 차원에서 정년퇴임식 치르기로 했다”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