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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외과號 위기 '흔들흔들'
[ 2007년 05월 02일 10시 51분 ]
‘아시아 최고가 되자’는 야무진 꿈을 꾸던 대한민국 외과의 운명은 불과 30여년 만에 급변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나 같아도 외과는…”이라는 수군거림이 일고 있고 ‘의술의 꽃’으로 한때는 군림했으나 비극적 결말을 예견하는 듯한 목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단순히 힘들다, 위기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외과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 생명의 근간인 외과가 이 상태로 간다면 10년 후 심장수술 환자는 국내 외과의사의 손에 수술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데도 허공에만 울려 퍼지고 있다. ‘위기론’을 외치는 목청만 높아질 뿐, 누구 하나 똑 부러지게 당면한 위기의 근원을 진단하거나 탈출을 위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녕 ‘위기의 외과 구하기’라는 화두는 속절없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편집자주]

잘될 일만 남았다고 하더니…

생명 전선의 최전방 응급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 푸른 수술 가운에 ‘메스’ 하나 손에 들고 생명 전선의 최전방에 한 외과의사가 섰다. 당직을 서는 단 한명의 이 외과 전문의에게 응급환자는 계속 밀려든다. 1분 1초가 급하지만 속수무책, 환자들은 그저 기다리면서 속만 태울 뿐이다.

이 외과 전문의는 불과 3년 전에 비해 외과 수술의 강도나 크기가 몰라보게 커졌다고 털어놨다. “설마 외과가 더 나빠지기야 하겠냐면서 이제는 좋아질 일만 남았다던 위로는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10년 전에도, 아니 5년 전에도 범정부 차원의 대책은 말만 무성했지 사실 돌이켜 보면 상황은 더 악화됐다”고 토로했다.

바야흐로 의사 과잉 공급의 시대라고는 하는데 뭔가 잘못 끼워진 단추같다. 의사는 자꾸 자꾸 넘치는데 외과의사는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외과 전문의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50% 가까이 줄었고 수련을 시작하고 몇 개월 혹은 1~2년 사이에 도중하차하는 사례는 다반사다.

가톨릭의과대학 성모병원 전해명 교수는 “대학병원으로 외과를 찾는 사람들은 개복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가 대다수다. 24시간 예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도 외과의사에게 주어진 필수 임무다. 10명이 해야할 일을 3명이 하고 있으니 외과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피력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환자들이 종합병원으로 몰리게 되면서 전공의 인력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은 현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5년간 외과 전공의 정원 확보율 80%에 그치고 있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 같은 얘기만 반복되고 있어 자괴감마저 든다”는 교수들의 자조섞인 목소리에는 깊은 시름이 묻어나고 있다.

외과 의사 수급 ‘비상등’

“일이 가중되다 보면 따로 점심을 챙길 시간도 없어요. 힘드니까 자느라고 못 먹죠.” 외과 전공의 지원율이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외과의사들은 사실 10년 전부터 그 ‘낌새’를 알아차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년 각 병원 전공의 모집에 비상이 걸렸다. ‘외과’를 홍보하기 위한 움직임은 가히 전사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외과를 살리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교수들까지 가세하고 있는 모양새다. 전해명 교수는 “눈 여겨뒀던 의대생이나 인턴을 만나면 기회가 주어지는 한 외과 지원을 권유한다. 외과가 ‘기피 대상 1호’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진한’ 술대접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생명 전선의 최전방을 사수하던 외과는 물론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윤리나 사명의식 보다는 개인의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이제 외과는 매력적이지 못하다. 위험 부담은 많은데 보상은 ‘형편없더라’는 것을 선배들을 보면서 몸소 체험했기 때문일까.

전해명 교수는 이미 십수년전부터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과거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명예를 얻고 전문가로서의 명성을 얻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작용했으나 지금은 개인적인 삶의 질 향상에 무게중심이 옮겨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외과 이명덕 교수가 “얼마나 시간적인 여유를 담보할 수 있고 나의 여가 활동을 보낼 수 있느냐. 그러면서 수입도 좋은 일을 찾고 있는 것이 지금, 젊은 의사들의 현주소이자 가치관인 것 같다”고 언급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도 외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함량 미달에 대한 교수진들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함량 미달인 학생들이 외과를 지원하는 사례가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 우선 부족한 인원을 당장 채워야하는 게 급선무니까 답답해도 별 수 있냐”고 일선 교수들은 착잡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외과’라는 데가 오히려 상당한 수준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데도 상위 5%내 학생들은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거다.

멱살 한번 안 잡히면 외과의사도 아니다?

한양대병원 외과 권성준 교수는 ‘의료사고’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얼마 전 일흔 고개를 넘은 당뇨 환자의 암 수술을 맡게 됐다. 이미 생존율은 5%가 채 안된 상태였다. 환자는 수술 도중 사망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던 죽음과의 사투에서 권성준 교수는 ‘패’한 것이다. 권성준 교수는 환자 보호자들의 난타에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 외과의에 대한 회의감마저 든다고 했다.

그는 “외과 레지던트 가운데 대개는 두 번, 세 번 얻어맞은 경험이 있을 거다. 심지어는 소위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도 때리고 미안하다는 사과도 한 마디 안한다. 그런데도 외과 의사들의 월급명세서를 보고 있노라면 가혹하기 짝이 없다”고 성토했다.

“돈 벌자고 의사를 했다면 진작 그만뒀을테니 월급명세서는 그렇다 쳐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좋은 얘기 못 듣는다는 게 참 서글픈 현실”이라고 울먹이는 모습은 비단 권성준 교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을 감안한다해도 일을 많이 하는 사람한테 더 혜택을 줘야 하는데 30명을 수술하든 환자 1명을 하든, 힘든 수술을 하든, 쉬운 수술을 하건 경제적인 차이가 없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그렇다면 과연 수련의들에게 의사의 사명감만으로 외과에 지원하라고 말할 수 있나.

외과는 병원에서도 애물단지

외과는 병원에서도 사실상 ‘애물단지’다. 각 병원마다 외과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를 보는 이유로 꼽는 것도 바로 의료수가 때문.

복지부 한 관계자는 “건강보험이 재편되면서 진찰료 중심으로 올랐고 수술료나 입원료의 인상률이 낮았다. 결국 수술이나 입원 환자 중심의 외과 계열에 대한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개원의들의 고충은 이보다 훨씬 깊다. 외과는 타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가 많이 필요한데다 투자를 해놓는다 해도 하다못해 맹장염도 개인병원에서는 잘 안하려고 하는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외과로 개업을 하는 게 ‘바보스러운’ 짓이나 다름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를 증명하듯 주택이 밀집해 있는 한 동네 외과는 ‘종합병원’이나 다름없다. 외과로 간판을 걸었지만 외과 자체만 가지고는 죽어있다. 소아과, 내과, 타과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감기환자, 간단한 외상환자, 정형외과, 신경외과 환자도 보고 있다.

서울 성북구 A병원 원장은 “병원의 재정을 고려하면 한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수술을 위해 인원을 갖추고 장비를 갖출 수 없다. 대학에 있을 때는 주로 큰 수술을 했지만 개원을 하다 보면 인력난, 수가상 그런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A병원 그 어디에서도 외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셈이다.

지난 3년 사이, 대한병원협회에서는 외과라는 이름을 단 병원의 개원신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은 ‘더 설명하고 말 것도 없는’ 확실한 증거다. 개원하는 병원마다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이다. 이미 각 병원의 레지던트들은 외과 전문의라면 손사래를 친다.

부산의 B대학병원 사례도 대한민국 외과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방 병원에서는 외과 환자를 찾기도 힘들 뿐더러 수술 수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낮다는 게 1차적인 문제다. 하나의 수술에 대한 원가 보상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방에서는 외과의사들이 ‘천연기념물’이 되고 그런 의료진을 영입하기 위해 연봉이나 복지 등 복합적인 요소를 무시할 수 없어 병원 경영 자체가 정상적일 수가 없다”고 병원 관계자는 긔띔했다.

외과의사 수입시대, 멀지 않았다

그 동안 수렁에 빠진 외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이 오고갔다. 그러나 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실제로 일선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을 살펴봤을 때 이 상황에서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건국대병원 김지수 교수는 “단순히 힘들다, 위기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외과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고, 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현실로,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한 이명덕 교수는 “전공의 기피 현상이 일어나는 부서들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필요한 분야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라면서 “의사 인력의 공급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수가의 현실화 등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만약 이대로 대한민국의 외과가 침몰한다면 머지않아 외과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예견했다. “우리 생명의 근간인 외과가 이 상태로 간다면 10년 후 심장수술 환자는 국내 외과의사의 손에 수술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암환자에 대한 적절한 수술 자체가 어려워지는 사태가 빚어질 것 자명하다. 이런 문제가 장기화되면 외국인 의사를 모셔다가 진료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 기사는 오프라인 계간지 데일리메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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