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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상위 0~1% 학생들 의대 선택은 필수?
[ 2009년 04월 03일 22시 46분 ]
마취과 전문의인 K씨는 4월 15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근심이 커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수 개월만에 만날 수 있는 자리지만 비용부담에 걱정이 앞선다.
유학에서 귀국한 친구들이 합세, 졸업 후 20여 년만에 만난 1년 전 모임에서 친구들은 한 명씩 순서대로 비용을 전담, 3개월마다 한번씩 자리를 갖도록 결정했다. 어떤 친구는 삼겹살에 소주를, 또 어떤 친구는 근사한 일식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모임에서 국내항공사 기장으로 있는 친구가 근사한 저녁 자리를 마련했던 터라 더욱 부담이다.
친구들은 유명대학병원 의사로 있는 K씨에게 은근히 기대를 하는 눈치다. K씨 역시 변호사, 지방일간지 기자, 항공사 기장 친구들에게 얕보이긴 싫지만 미국에 있는 두 아이와 부인에게 보낼 생활비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최근 환율상승으로 더 많은 돈을 보내고 있지만 부인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남한테 지기를 싫어해 고등학교 시절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이기에 더욱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친구들이 말은 않지만 ‘학교 공부는 못했지만 사회에서는 내가 더 잘 나간다’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아 가끔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잘나가는 변호사 얘기를 들을때마다 의사가 아니라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했으면 더 나은 생활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입시철마다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 또 있다. 수능 고득점자들이 특정 대학ㆍ특정 학과에 몰리는 현상이다. 문과쪽 고득점자들은 법대나 경영대, 이과 고득점자들은 각 의과대학에 원서를 낸다.
수능 성적순으로 어김없이 지켜지는 이 '질서정연한 지원'은 이제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이과의 경우 전국 의과대학이 평준화 현상까지 보일 정도로 수능성적 고득점자들이 대거 의대로 몰린다.
다른 친구들보다 우수한 성적 때문에 들어간 의과대학이지만 20여 년이 지난 현재 K씨는 후회 들 때도 있다. 그 시기의 나에겐 의대 외에도 하고 싶은 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다양한 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4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선배 눈치에 외래, 논문준비까지 하루도 편히 쉴 틈이 없다. 거액(?)을 준다던 다국적 제약사의 스카웃 제의도 이제는 사라졌다.
의사가 되고 싶다던 친구는 사관학교 졸업 후 10여 년의 공군 조종사 생활에 싫증이 났는지 항공사에 입사, 어느새 기장이 됐다.
서울지역 의대에 합격할 성적이 안된다는 이유로 간 사관학교지만 항공사에서 제시한 거액(?)의 스카웃비용으로 집까지 장만한 그 친구가 부러워보이기까지 한다. 그곳에서 받는 보수 역시 1억원이 넘는다고 귀띔, 왠만한 의사들보다 낫다.
서울 상위권 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3년여 준비 끝에 고시에 합격한 친구 A씨. 사법연수원을 졸업하자마자 로펌에 들어간 그가 받는 수입은 그 시기에 벌써 수천만원에 달했다.
그 곳에서 7년차가 됐을 때 외국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이제 파트너 변호사로서 연말에 수익까지 배분받고 있다고 자랑한다. 친구들 말로는 1년이면 10억원을 훨씬 넘게 번다는 얘기도 간혹 들린다.
서울 S여고에서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한 교사는 "만일 독도에 의과대학이 있다면 서울대 의대부터 독도 의대까지 수능성적순으로 모두 채우고 난 다음 그 아래 점수대가 서울 공대 최고 인기학과에 지원할 것”이라고 최근 입시풍속도를 설명했다.
장차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적성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점수만이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기준이다.
한 입시지도 교사는 "평소 의과대학을 생각하지 않던 학생이 성적이 잘 나오자 점수가 아까워서라도 의대에 원서를 내겠다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한다. 그만 큼 우리 사회에 '의대 선호현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의사사회 내부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명문 의과대학의 한 교수는 "의사 노릇을 30년 넘게 해보니 의료 분야가 최고 인재들이 몰려들 만큼 두뇌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창조적이고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인재들이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발명하는 데 기여해야 개인이나 국가를 위해 바람직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의사가 안정된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월급쟁이를 하더라도 보통 샐러리맨들보다는 봉급을 더 받고, 개원을 하면 다른 전문직에 비해 수입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반 직장인들은 '사오정'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정년 보장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의사는 정년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종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로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을까.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국 41개 의과대학에서 매년 3000명 이상이 새로 의사 면허를 따서 배출되고 있다. 의사들은 "해마다 3000명의 젊은 의사들이 쏟아져 나오면 국내 의료시장은 곧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더라도 20년만 지나면 의사 수는 지금보다 2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요즘 많은 병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법 규모가 큰 중형 병원들 가운데 도산한 병원이 많다. 개업의사들도 고전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강남 요지에 성형외과를 차리기만 하면 떼돈을 벌기도 했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파리 날리는 곳이 많고 아예 문닫은 곳도 부지기수다.
40대 중반의 한 성형외과 의사는 며칠 전 필자에게 “요즘 머리 좋은 친구들이 의대에 오는 것은 '주식에서 상투를 잡는 것'과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백성주기자 paeksj@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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