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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이 만취자 술 깨게 해주는 곳이냐
[ 2009년 06월 18일 22시 00분 ]
공권력 낭비를 막는다는 목적으로 발의돼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경찰직무집행법 4조 '주취자 처리에 대한 구호조치' 일부개정안을 두고 의료계가 깊은 우려의 시각을 표시하고 있다.

경찰서에서도 통제가 불가능한 주취자를 긴급구호라는 명목으로 의료기관에 강제 이송 조치한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권경석, 신지호 의원 등 12명이 지난해 8월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술에 취해 경찰관이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나 재산에 위해를 가하려는 행위를 계속하는 자’ 및 정신착란자 등에 대해 공공보건의료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할 수 있다. 이때 해당 의료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절할 수 없다.

보건의료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해당 기관에 대한 정의 규정(의료법 3조에서 규정하는 의료기관 전체)을 추가함으로써 법적 강제성을 강화한 점이 특징이다.

권경석 의원은 “그간 해당 조항에서 기관의 범위가 특정돼 있지 않아 원활한 업무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의료기관에서 요청을 거부해도 제재수단이 미비해 법 개정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경찰관이 지구대의 소파 등에 주취자를 임시 대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한다면 신속한 대응이 곤란하다는 까닭에서다.

지구대(파출소)에서 단순 주취자를 처리하는 비중이 전체 업무의 26.6%를 차지, 경찰력 낭비와 공권력 무시 풍조가 확산될 우려가 적지 않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이에 대해 순천향대병원 응급의학과 임훈 교수는 “지금도 술 취한 사람을 케어할 때 가장 고생하는 게 병원 응급실이고, 그 다음이 119 구조단”이라며 “주취자를 진단해줘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병원이 이를 일방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만취한 사람이 다른 환자나 의료진에게 위해를 가하는 등 소란을 피울 개연성이 충분한 만큼 진료를 위해 이송됐더라도 경찰의 보호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정모 교수 또한 이번 개정안을 두고 “경찰 측에서 남용할 소지가 농후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평소에도 지구대에서의 주취자 후송이 잦은 시립공공병원의 경우 비판은 더했다.

서울의료원 박상현 응급의학과센터장은 “경찰이 통제가 안되는 주취자를 병원에 던져놓고 가버리는 행태가 가장 큰 문제”라며 “시립병원이다보니 요즘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경찰은 만취한 사람에게 “의사 말씀 잘 들으라”고 건성으로 얘기한 후 가버리고, 이후 주취자가 주변 사람에게 욕이나 삿대질을 하면서 원활한 환자 진료를 방해하는 사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권경석 의원실 관계자는 “경찰직무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은 4월 15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논의된 후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간 상태”라며 “현재 국회에 대기 중인 법이 많이 밀려 있지만 발의 시기가 이른 만큼 먼저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은빈기자 cucic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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