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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는 환자를 절벽의 끝에 세워놓고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마취과 전문의들은 수술이 끝나 환자를 절벽에서 내려놓고 나서야 한숨을 돌린다고 말한다. 흔히 마취는 한잠 자고 나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과의사가 수술할 동안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위험한 상황을 감시하고 적절하게 처치해 수술이 안전하게 끝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마취과 의사도 꺼리는 위험한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응급처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마취과 의사도 아닌 외과의나 간호사가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마취과 의사 일변…전문의 손꼽아
‘마취 공포’가 개원가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전신마취를 통해 성형수술을 받던 환자 2명이 숨지거나 의식 불명상태가 되는 일이 발생한 이후 전신마취 수술을 취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소식이다. 병원 측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환자들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마취과 의사가 수술할 때만 잠깐 와서 하는 이른바 ‘출장 마취’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 웬만한 환자들은 다 안다는 것이다.
국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3200여 명으로 ‘수술량’에 비해 절대 부족하다. 개원의가 자체 시설로 각개전투 수술을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프리랜서 마취과 의사’ 의존도가 매우 높다. 전국 850여 개의 성형외과 중 전신마취 수술을 하는 곳은 100여 군데인데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의료기관은 손에 꼽을 정도다.
‘출장 마취’는 수술 전 환자 상태에 대한 평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 수술 후 환자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마취과 의사가 기다리지 않고 다음 수술 장소로 이동한다는 점 등에서 안전한 수술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다.
“상주 마취 전문의 없어, 운용시스템 문제 심각”
대한마취과학회가 지난 2011년 3월 복지부 의료자원과에 보고한 ‘수술실 보유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마취전문의 고용 현황’을 확인한 결과 병원급 총 803개(수술실 의료기관) 중 4명 이상의 마취과 전문의를 채용하고 있는 곳은 고작 7곳에 불과했다.
실제 396곳의 병원급 의료기관 중에는 수술실을 6개나 갖추고 있는데도 마취과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는 병원 2곳을 비롯, 5개(2곳), 4개(3곳), 3개(25곳), 2개(115곳), 1개(247곳)로 집계됐다.
종합전문병원이 44개 기관 중 44명, 종합병원이 269개 기관 중 271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취과 전문의 고용을 꺼리는 현상이 훨씬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병원의 경우 803곳(수술실 1315개)중 57.9%(465곳), 의원은 5030곳 중 23.1%(1160곳)만이 마취과 전문의를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의원 10곳 중 8곳에서는 마취과 전문의를 구경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상계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홍기혁 교수는 “소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척추전문병원인데 마취과 전문의를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면서 “수술이 하루에 100건이 넘는데도 이 병원에는 24시간 상주하는 마취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고 꼬집었다.
홍 교수는 “이러한 병원도 있는데 지방이나 동네병원급은 훨씬 더 심각한 실정”이라면서 “일선 성형외과 개원가에서는 덤핑 등 왜곡된 진료도 성행할만큼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마취과 전문의 고용은 먼 얘기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부 은퇴한 사람을 제외해도 3000명 이상이 의료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러면 그 많은 의사가 어디에 숨어 있는 건가. 문제는 마취수가에 있다. 마취료가 너무 싸 중소 병의원은 그 돈으로는 마취과 의사를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진범 교수는 “비교적 규모가 큰 병원이라야 수술이 많아 마취과 의사가 있다”면서 “전국 3300여 병의원에서 한 해 약 180만 건의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중 70% 정도에는 상근 마취과 의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마취실명제·차등수가제” 도입 촉구 한목소리
마취과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취실명제와 차등 수가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홍기혁 교수는 “병원급이나 의원급의 경우 마취했다고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마취를 누가 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저가의 마취 수가는 중소 병의원이 마취과 의사를 고용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의원급 병의원에서 마취료 청구는 병원장 이름으로 청구하게 돼 있어 시행한 의사가 누군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마취실명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취료 청구 시 해당 의사면허와 이름을 넣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차등수가제는 비마취과의사나 마취간호사가 하는 경우보다 마취과 전문의가 하는 경우 차등수가를 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재현 교수도 “수술을 받게 되는 환자는 마취를 누가 하는지 반드시 알도록 해야 환자의 인권과 선택권이 보장되고 무엇보다 안전한 마취 관리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마취실명제를 통해 환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마취간호사는 마취전문의 지휘, 감독 하에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차등수가를 도입해 마취전문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재현 교수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마취 관련 의료사고는 더욱 증가할 것이 뻔하다”며 “의료체계의 법적 제도적 수정보완이나 현실적인 수가차등화 등을 통해 수술환자의 안전성을 최대한 높이는데 정부와 의료계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마취 안전성 확보 총력…타과 형평성 관건
마취과 의사를 통해 안전한 마취를 받으려면 마취료를 올려주면 된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상 어려운 형편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차등수가제다.
지금도 많은 시술이나 검사 진단 등에 차등수가제가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X선 사진 촬영의 경우 다른 과 의사가 찍으면 촬영료만 주고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판독한 경우 추가로 판독료까지 청구할 수 있다.
마취과학회 박종민 이사장은 “마취료의 경우 외과의가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도 마취료와 함께 수술료도 전액 청구할 수 있다”면서 “이를 조정해 마취과 의사가 마취한 경우만 마취료를 주거나 차등 지급한다면 남는 재정으로 마취료를 올려 환자가 안전하고 전문적인 마취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복지부가 대한마취과학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과 최근 TF를 구성해 마취 안전성 확보 방안을 논의 중에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진료실명제 등 여러 과제들을 건의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중장기나 단기로 추진하고 형평성에 안맞는다고 판단되면 제외시키는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진료실명제 같은 경우 급여과에서 추진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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