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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약이 현행 분류체계를 유지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6월 일반약인 사전피임약은 전문약으로, 전문약인 응급피임약은 일반약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피임약 재분류가 사회적 논쟁으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부담을 느꼈다. 이 점은 보건복지부도 인정하고 있다.
김원종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사회적 상황을 고려했고, 3년간 모니터링을 통해 재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지난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중앙약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피임약 재분류 결정에 대해 "한마디로 정부가 마련한 계획대로 흘러갔다"고 총평했다.
이날 중앙약심에는 의료계 4명과 약계 4명,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 1명, 법무법인 변호사 1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 1명 등 총 12명이 참석했다.
중앙약심 위원들은 사전피임약의 경우 부작용에 따른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 만장일치로 전문약 전환을 결정했다. 그런데 복지부 관계자가 회의 시작 전에 일반약 유지를 강력히 제안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복지부 관계자가 회의 시작 전에 자료를 가져와 사전피임약에 대해 정책적으로 보완할 테니 일반약으로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강력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 제안에 위원들은 과학적인 알고리즘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논의 대상에 포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문가인 위원들이 전문약 전환이라는 합의를 했음에도 복지부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논란의 핵심인 응급피임약은 의료계와 약계가 충돌한 가운데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의료계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나, 약계는 해외사례 등을 언급하며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의·약계의 의견 충돌이 이어지자 공익 위원들은 별도 회의를 열었고, 전문약 유지로 결론을 냈다.
공익 위원들은 이 회의에서 사후피임약의 부작용과 오남용에 관한 데이터를 만들고, 향후 일반약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약사회, 응급실 원내조제 속앓이
피임약 재분류 결정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의 희비가 갈렸다. 의협은 현행 유지가 그다지 나쁠 게 없다.
이재호 의협 의무이사는 재분류 결정에 대해 "식약청이 재분류 초기 단계에서 전문가 참여에 미온적이었다"는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가 정치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으나, 완곡한 표현이었다.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에 많은 우려와 반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반면 약사회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이 이뤄지지 않자 성명에서 '대실망'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약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응급피임약의 원내조제가 허용됐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응급피임약은 야간진료 의료기관과 응급실에서 심야(22시~익일 06시)나 휴일에 당일분에 한해 원내조제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제한적인 형태지만, 병원의 원내조제가 열린 셈이다. 응급피임약의 특수성을 인정한 조치다. 약사회는 이를 심각히 받아들인다. 향후 다른 의약품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약사회는 정부의 재분류 최종안 발표 이후 내부 회의를 진행하면서 여러 대책을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