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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 입맛 경쟁이 뜨겁다. 과거에는 암 환자 식단 위주로 메뉴 개발을 해 왔지만 최근에는 해외환자 유치가 활성화되면서 외국인 입맛 사로잡기에 고심 중이다. 환자식과 영양서비스가 진단 및 치료 결과와 더불어 환자들의 발길을 붙잡는 중요 요소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맛과 영양뿐만 아니라 식생활과 종교 등 문화 전반을 고스란히 접시에 담아내야 하기에 식단 개발이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바빠진 병원 주방의 모습을 데일리메디가 담아봤다.
이제 병원에서 문화센터처럼 쿠킹 수업이 열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호텔처럼 새벽에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주문하는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의료기관이 진단과 치료를 넘어 암ㆍ외국인 환자들을 위한 서비스, 입원 기간과 퇴원 후 삶의 질까지 함께 고민하는 곳으로 점차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퇴원 후 영양 섭취도 병원이 케어
의료기관들의 식단 개발 고민은 대부분 암 환자에서 출발했다. 특히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는 체력 유지 및 근력 소모, 조직 재생, 상처 회복 등을 위해 평상시보다 더 많은 열량과 단백질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치료가 진행되면서 식욕 저하, 오심, 구토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식사량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체중 감소와 영양 불량이 올 수 있다.
대학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한 환자는 “수술을 마치고 나니 이제 평소 식생활에 신경이 쓰인다”면서 “수술 받은 병원에서 환우회 활동을 비롯 영양식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암환자를 위한 식단이긴 하지만 일반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환자들이 높은 호응을 보이자 의료기관에서는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식사 섭취를 늘리기 위해 기호도가 높은 음식과 간식 등의 건강영양 식단을 앞 다퉈 선보이고 있다. 암환자를 위한 특별 식단과 조리법 등을 안내하고 무료시식을 제공, 영양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세브란스병원 영양팀 김정남 파트장은 “2009년 암환자 식단 가이드 책이 한 차례 나온 바 있다”며 “암환자들의 식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식단과 조리법 등을 담은 식사 가이드 책 출판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다방면의 암환자 식단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병원 내 암센터, 암병원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환자가 암센터로 집중되면서 이들의 니즈(Needs)를 파악하고 진단과 치료, 수술 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케어 개념이 적극 도입됨에 따라 환자서비스 수준 역시 달라지게 된 것이다.
삼성암센터 심영목 센터장은 “다학제 진료와 환자를 대상으로 한 포괄적 암 치료가 중요해졌다”며 “영양섭취나 통증 관리 등 환자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 역시 암센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병원 밥 맛 없어!” → “원더풀 푸드!”
최근 몇 년 사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외국인 환자 유입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다방면의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먹는 것’.
2008년 2만7000여명이었던 외국인 환자 유치 수가 2010년 8만명을 넘었으며 2015년 30만명을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류 열풍의 파급효과로 성형이나 미용 수술을 받고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증환자 비율도 계속 증가 추세다.
이들이 점차 장기입원으로 이어짐에 따라 환자와 더불어 동반 보호자들에 대한 용도별 식단 요구가 급증했다. 하지만 국내 병원계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한 2010년 식단 연구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환자의 경우 식사만족도 중 맛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이중 중동지역 환자들은 위생에 대한 만족도가 대체적으로 저조했다.
또 보호자 역시 외부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외국인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식단 개발이 시급한 개선 사항으로 꼽혔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외국인 환자가 유입되기 시작한 초창기를 떠올리며 “애로사항이 많았다. 식단 문제 역시 그 중 하나”라면서 “지금은 병원들도 노하우가 생겨 달라졌으나 입맛에 맞지 않는 식단 때문에 민원이 들어왔다. 에이전시들도 의료기관 선택을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가 식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외국인 환자 식단 문제로 낭패 아닌 낭패를 봤던 의료기관들은 그 중요성을 깨닫고 입맛과 문화를 고려한 레시피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료기관에서 현지 입맛을 고스란히 구현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해당 나라 식당에 가 먹어보고, 분석한 뒤 조리해 봐도 그 맛이 안나더라구요. 식당 조리장에게 부탁해 물어보기도 하고 아예 조리장을 병원으로 초빙해 배우기도 했어요. 하지만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스 비법을 절대 공개하지 않아 애먹은 적이 있었죠.”
“이슬람 국가는 가장 신경 쓰이는 나라입니다. 할랄 재료만을 써야하고 기존 조리도구 사용도 어려워 지금까지 매번 새 도구를 꺼내 쓰는 형편이에요. 하지만 식단에 만족하고 인사를 건넬 때는 굉장히 뿌듯합니다.”
의료기관들이 외국인 환자를 위한 메뉴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자료수집과 문헌조사는 기본이며 이름이 알려진 식당에 찾아가는 일도 빈번해졌다.
세브란스병원 김정남 파트장은 “메뉴를 확보한다 해도 사실 그 맛을 구현해 내기가 어려운 것이 외국 음식”이라면서 “특히 중동식의 경우 할랄 식재료를 따로 구입하고 별도의 조리장과 식기, 조리 구역 등을 내부적으로 갖췄다. 식사가 올라갈 때도 할랄 고기 인증 마크 등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할랄(halal)이란 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을 총칭하는 것으로,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종교를 비롯 나라별로 각기 다른 식문화를 고려한 메뉴들을 확보하고자 병원들의 고군분투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완성된 메뉴를 현지인들에게 확인받는 작업 역시 빠질 수 없는 과정이다. 대사관 품평회나 시식회를 통해 완성작을 점검받는다. 삼성서울병원 조영연 임상영양팀장은 “외국인 식사 개발은 전통적인 맛의 정확한 재현이 중요하기에 해당 국가 인사들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현지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으나 사실 개인차가 있어 쉽지 않다. 병원에서는 일대일 영양 상담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에서 손에 꼽히는 청심국제병원도 지난 해 의료진과 환자, 코디네이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식단 시식회를 열고 외국인들의 불만 민원 해결에 나섰다.
청심국제병원 측은 “러시아 환자로부터 식단문제로 인해 가장 많은 컴플레인을 받았다. 시식회 행사 등으로 상당부분 해결될 것”이라며 “식단 메뉴얼 구축이 환자 유치의 큰 핵심으로 작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병상 당 정해진 영양사들이 환자식을 직접 점검하고 요구도를 파악해 접목시킴으로써 만족도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식단에 없는 메뉴를 선보이기도 하고, 온콜(on-call) 서비스 제도를 도입하는 등 병원계 변화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조영연 팀장은 “러시아, 몽골, 아랍, 태국 등 나라별 특성에 따라 40여 종의 식단을 담은 메뉴판이 있다”면서 “여기에 더해 환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식사할 수 있도록 온콜 서비스 역시 도입했다. 40분 전에만 음식을 주문하면 새벽 2시까지 음식이 제공된다”고 소개했다.
맛 표준화ㆍ전문인력 양성 등 과제
이와 같이 병원 주방에서의 노력이 숨 가쁜 가운데 개발된 식단의 표준화 작업과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 등이 남겨진 과제로 꼽히고 있다. 입맛을 일일이 맞추기 어렵고 매번 다른 방식으로 조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보니 이를 표준화해 공유하는 것이 급선무다.
향후 외국인 환자 유입이 더욱 증가될 것을 고려,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에 따라 진흥원에서는 연구를 통해 마련된 외국인 환자 전용 식단 및 영양 지침을 의료기관에 배포하거나, 지자체에서는 영양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 경기도의 경우 금년 초 해외환자를 위한 맞춤식단 전문영양 교육을 실시했으며 이 자리에는 분당서울대병원, 세종병원, 명지병원, 부천성모병원 등 도내 외국인 환자 유치 병원 영양팀들이 대거 참석, 실무능력 확충을 도모했다.
경기도 측은 “국가별 환자식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커지고 종교, 식문화, 식습관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한 환자식 제공, 영양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며 “다양한 전문 인력 인프라 확충을 위한 정책 추진의 일환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