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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장기기증 의사 '故 음태인' 20주기
의료진 인식 변화 계기, 'SAVE 5·9' 캠페인 용어로 사용
[ 2013년 06월 23일 20시 00분 ]

1993년 6월 20일 새벽 5시. 고속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5톤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용차 운전자는 앞날이 창창한 20대 젊은의사로, 사고와 함께 뇌사했다.

 

사고 당일은 일요일이었다. 소아과 의사였던 아버지 음두은 박사는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등산 가려고 도시락을 싸다가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행락객으로 붐비는 고속도로를 뚫고 아들이 누워 있다는 강원도 원주의 한 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의료진이 아들의 뇌를 찍은 CT 사진을 내밀었고,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한 뇌사였다. 아버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애써 억누르고 의료진에게 말했다. “우리 부자(父子)의 모교인 가톨릭의대로 옮겨 장기를 기증하겠다.”

 

의술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채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주인공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음태인씨였다.

 

그는 학창 시절 공부는 물론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담당했고, 스키 매니아일 정도로 스포츠에도 재능을 갖춘 일명 ‘엄친아’였다. 특히 평소 입버릇 처럼 “아버지 같은 의사가 되겠다”던 기특하고 똑똑한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을 한 순간에 잃은 충격과 슬픔은 형용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 음두은 박사는 마지막 가는 길에 의사의 소임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고인은 장기를 기증했다. 국내에서는 첫 의사 장기기증이었다. 그의 숭고한 희생으로 총 5명이 새생명을 얻었다.

 

간경화로 사경을 헤매던 30세 남자는 간, 만성신부전으로 고생하던 21세 여대생과 56세 아저씨는 콩팥, 시력을 잃어 어둠 속에 살던 25세 청년과 66세 할아버지는 각막을 이식 받았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캠페인 구호로 사용하고 있는 ‘SAVE 5’는 故 음태인 의사의 숭고한 실천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래는 한 사람의 뇌사자가 장기기증을 하면 9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의 ‘SAVE 9'이 정식 구호이지만 첫 장기기증 의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함께 사용 중이다.

 

故 음태인 의사의 숭고한 희생은 훗날 선후배 의사들에게 귀감으로 작용했다. 사후 장기기증 서약이 이어졌고, 기증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실제 고인이 떠나고 얼마 후 한 의과대학 재학생 34명이 단체로 장기기증 서약식을 갖고 ‘죽어서도 의사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뿐만 아니라 전국 의대생 75%가 향후 인체조직 기증 의향이 있다는 설문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일반인 56%보다 많은 수치다.

 

지난해에는 고인의 후배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차효정 학생이 뇌사상태에서 장기를 기증, 총 6명에게 새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일 서울성모병원 로비에서 의미있는 음악회가 열렸다. 장기를 이식받아 새삶을 살고 있는 환자들이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특히 올해는 故 음태인 의사의 추모 20주년을 맞는 해로, 당시 장기를 기증 받았던 환자들도 이 자리에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고인과 동기인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김양수 교수는 “의사국시를 준비하느라 함께 밤샘 공부하던 태인이가 장기기증을 위해 수술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동기들 모두 오열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교수의 옛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청중의 눈을 적셨고, 그 친구로부터 장기를 기증 받아 새 삶을 살고 있는 사회자의 짧고 간결한 멘트는 청중의 가슴을 울렸다. “내 안에는 늘 감사한 당신이 있어요…”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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