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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대표적 권한은 입법이다. 이 때문에 연말, 혹은 회기 말미에는 국회의원의 활동 평가항목으로 발의 법안 수치가 포함된다. 발의된 법안의 양이 아닌 질을 기반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지적에도 이 같은 경향은 변하지 않고 있다.
법안 발의를 원하는 국회의원의 필요성과 함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소망하는 기대치가 부합된 법안이 상정되면 국회는 말 그대로 ‘전쟁터’가 된다. 이 때문에 국회 입법 과정은 항상 조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엄청 치열하다.
최근 90% 이상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비슷한 시기에 발의됐다. 발의한 두 의원 모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다. A의원실이 이 법안을 먼저 발의 했을 때 많은 이들은 놀라워했다.
관련 내용은 뒤늦게 발의한 B의원실이 여러 차례에 걸친 비공개 간담회와 두 번의 공개 공청회를 여는 등 매우 열심히 준비 중인 내용의 것과 거의 같았디 때문이다.
특히 법안 내용은 상이한 분야에 속해있는 최소 3개 이상의 이해관계자가 얽혀있어 법안 발의 전(前) 협의가 필수적 사안이었다. 비밀스러운 추진이 어려운 내용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법안과 관련된 한 이해관계자가 법안이 규정하고 있는 제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B의원실에서 ‘거의 다 완성한 법안'을 A의원실에 전한 것이다.
실제 두 법의 유일한 차이점은 제도 운영에 있어 권한 분배다.
법안을 성실히 준비한 B의원실 법안은 권한을 두루 분산시켜 놨다. 그렇게 해야 제도 내 각 분야의 전문성이 높아진다는 공청회 때 제기된 의견을 수용한 결과다. 예상 가능하듯 A의원실의 것은 상대적으로 권한이 집중돼 있다.
졸지에 법안을 도둑맞은 B의원실 관계자는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국회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어차피 법안 심사 때 병합돼 논의될 것이다.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며 이에 대한 발언 자체를 조심스러워 했다.
또 또 또…
의료계 관련 법안 중에는 최근에 발의됐지만 유독 낯익은 내용들이 많다. 지난 회기 발의됐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해 다시금 발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법은 의료계 내 직능단체와 관련 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의사의 지도가 아닌 처방만으로 의료기사 활동을 가능케 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의료기사법은 지난 18대 국회 때 발의됐었다. 내용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발의 목적은 같다.
또 일명 ‘의료인 폭행방지법’이라 불리는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 역시 17, 18대에 이어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법안 적용 대상은 각 법에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같다.
물론 직능단체와 관련 없이 다시 발의되는 법안도 많다. 심재철 의원이 18, 19대 국회 때 발의한 일명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 처벌법'인 의료법 개정안이 그 예다.
이 법은 18대 국회 논의 시 일회용 의료기기 정의·처벌 대상 등에 대한 논란이 일어 처리되지 못해 다시 발의됐다.
국회를 담당하는 직능단체 관계인은 “비슷한 내용의 법안 발의는 자칫 게을러 보일 수 있지만,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관련 직능단체의 활동은 결코 게으르지 않다. 또한 발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원의 의지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국회 관계자는 애초 심의‧통과되는 법안 수가 많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생긴 ‘폐기된 법안 줍기’ 관행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한 회기에서 상임위를 통과하는 법안이 많지 않다. 본회의 통과는 더욱 그렇다. 법안 심의 정체가 회기만료 폐기를 낳고, 대부분 이 때문에 재발의되는 것이다. 회기 초기 쓸 만한 법안을 다시 살려내려는 작업이 이뤄지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짚었다.
정부가 의원에 로비 때론 의원이 정부에 부탁
때때로 정부와 의원은 법안을 마련한 후 발의 주체를 서로 바꾸기도 한다. 물론, 정부와 가까운 여당 의원이 야당 의원보다 이 같은 교류가 활발하다.
정부가 의원실에 법안 발의를 부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빠른 처리 속도 때문이다. 정부안으로 발의할 경우 정부 내에서의 복잡한 심의 후 또 다시 국회에서 심의를 거쳐야 한다. 2라운드인 셈이다. 그만큼 발의 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정부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안을 추진하면 그 부담을 정부 전체가 진다.
하지만 의원이 관련 내용을 발의하면 당론이 아닌 이상 그 부담은 의원에만 집중된다. 의원이 발의 목적에 동의해 부담을 감수할 의향이 있다면 부담을 줄이고 싶은 정부와 보다 활발한 법안 발의를 원하는 의원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새누리당 의원에 의해 발의된 의료 공공성 강화 법안이 이 같은 경로를 탄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정부가 추진했다면 "국가의 권한 강화"라며 시장으로부터 비판 받을 수 있었던 사안이 의원 발의 덕에 조용히 진행될 수 있었다.
반대로 간혹 의원이 정부에 입법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대부분 사안이 커 의원이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렵거나, 국회 내에서 뜻을 모으기 어려운 경우, 현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 지향점이 같은 경우, 혹은 법 개정만으로는 개선할 수 없고 여러 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다.
올해 초 한 의원은 청와대와 관련 부처를 찾아 현 정부가 추진하는 해외 환자 유치, 의료관광 활성화에 대한 여러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최근 이 의원이 제안한 내용이 제도화 된 바 있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제안이 직접적으로 반영됐는지는 사실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영향은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