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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의과대학 1기 졸업생이었던 한 청년은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하루에도 수 십 번씩 환자들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고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됐다. “제가 왜 대장항문외과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궁금하시죠?”라고 질문을 던진 인하대병원 최선근 교수는 매일 이 물음을 상기시키며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제2의 '뇌'라고 칭할 만큼 섬세한 장기가 바로 ‘장(腸)’이라고 하는 그의 눈빛에 ‘의사의 환자가 아닌 환자의 의사로서 그들을 보고 싶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기자는 최근 최선근 교수 수술 참관과 함께 대장과 평생을 동반해온 그의 인생(人生) 스토리를 들어봤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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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근 교수(가운데) |
오전 9시 수술실에서 한창 집도 중이던 최선근 교수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그의 눈은 환자의 ‘장’ 절개 부위 내부와 연결된 모니터에서 떠나지 않았다. 외관상 풍겨지는 카리스마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꽤나 부드러웠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수술은 복강경하 전방절제술이에요. 이 부분이 절제 부위입니다.” 최 교수는 베테랑답게 안정적인 모습으로 수술을 진행했다.[上 사진] 65세 S결장암 환자로 이 날 최 교수의 첫 번째 수술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최 교수는 “수술이 잘 돼서 다행”이라며 가쁘게 숨을 몰아셨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수술이 때론 정신을 흐트러뜨릴 때가 있지만 늘 긴장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1985년 인하대학교 의학과 첫 입학생으로 의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인하대병원에서 인턴과 일반외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외과 전임강사, 조교수를 거쳐 부교수, 교수로서 점차 묵직한 ‘메스’를 쥐게 됐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암기 기계’였던 추억이 있지만 이후 만난 은사들의 가르침 속에 꾸준히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는 ‘겸손’이 그에게 내재돼 있었다.
학창시절과 인생의 등대였던 은사
최 교수는 한 예를 들며 “윌름 대장이 내 칼 뺏었어”라는 문장이 암기의 비법이었다고 본과 시절을 떠올렸다. 이는 암의 간전이가 진행됐을 경우라도 수술이 가능한 ‘4가지 질환’을 쉽게 암기 위한 일종의 요령이다. 바로 ‘윌름종양’, ‘대장암’, ‘내분비종양’, ‘칼시노이드 종양’의 앞 글자만을 따서 조합한 문장이 그것이다.
학창 시절과 관련, 그는 “국민교육헌장이라는 말을 들어 봤습니까. 당시 이를 의대생과 공대생, 문리대생에게 나눠주고 30분 동안 암기하게 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의대상은 거의 완벽하게 암기했다. 웃어넘기기엔 서글픈 시절이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의대생들의 폭발적인 암기 량에 대한 고충을 잘 알기에 최 교수는 학생들을 배려하고자 한다. 그는 “억지 문장들이 매 시험마다 수백 개씩 되니 막상 시험을 치면 앞 글자만 생각나고 온전한 답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교수가 된 지금 의대생들의 안타까움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지나친 강요는 삼가려고 한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공부가 힘들었던 것은 모든 의대생들의 공통 분모였을 터지만, 수련의가 본격적인 의사 삶의 초입인 만큼 그 시절부터 최 교수에겐 잊지 못할 은사 두 명이 있다. 여기서 그가 ‘외과의’가 되려고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그는 “대장암 전문의 김경래 교수님이 첫 의사 인생의 지팡이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인턴시절, 외과로 인도해 주신 분이다. 김 교수님을 모시고 지내온 지난 21년 동안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항상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셨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이어 “이순(耳順)이 넘은 연세에도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시며 젊은 외과의들도 어려워하는 복강경 대장절제술을 습득해 손수 하시는 모습을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 외과의로서 책임을 소홀히 하는 제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끔 했다”고 멘토로서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또 대장항문외과의사의 삶을 이끈 우제홍 교수도 그의 삶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우제홍 교수는 지난 2004년 3월부터 4년 동안 인하대병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우제홍 교수님은 우리나라 대장항문외과 분야를 개척하신 분이다. 제가 군의관으로 3년을 보내고 외과의로 정체성의 혼란이 왔을 무렵, 우 교수님은 국립의료원에 봉직하시다 우리학교 외과학교실 주임교수로 부임하셨다. 일면식도 없던 저에게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우 교수님의 ‘네가 외과의로 살아가면서 앞으로 남길 모든 발자취는 후배들에게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이정표가 될 것이니 절대로 경솔히 행동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직도 제 마음속의 채찍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두 은사를 만나면서 그는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됐다. 이제는 하루 4~5 차례 수술실에 들어가 메스를 드는 그에게 있어 몇 년 전 읽었던 책 글귀도 소중한 자산이다. 그와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대장암 환자들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늘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의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희망이다”
바로 폴린 첸이라는 대만계 미국인 외과의가 쓴 ‘죽음에 대한 어느 외과의의 아름다운 고백’이라는 책으로 부제는 ‘나도 이별이 서툴다’는 내용이다.
간이식 전문의인 저자는 외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손가락으로 감염된 부위를 파헤치고, 손가락을 둥글게 오므려 혈액을 떠내며, 손톱으로 들러붙은 장들을 떼어내기도 한다. 수술은 외과의사 삶이지만 점점 삶이 곧 수술임을 절감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점점 기계적으로 수술에 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의미로, 최 교수는 이 구절을 통해서 외과의에 대해 되새기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에게 어떤 환자는 수 많은 환자들 중 한 명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환자에게 의사란 존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과연 내가 그런 평가를 받을 만큼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는가. 매순간 이 수술이 내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 본다”며 수술에 임하는 굳은 마음을 전했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에 대한 ‘답’도 오로지 ‘외과의’가 전부였다. 최 교수는 “아직 젊지 않은가.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환자만을 위한 대장암 전문 외과의로서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하대 의대 1회 졸업생으로서 당시 신설의대였던 모교는 전용 강의실도, 제대로 된 인체해부학 실습실도, 의학도서관도 없었다. 예과 2년 내내 제가 의대생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증거는 학생증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외과의가 됐다. 그 열정을 되새기며 죽어가는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손길의 외과의사가 되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