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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어요? 제가 금방 내려갈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반가움 반, 정중함 반이다. 반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편안함 반, 죄송함 반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진료민원이다.
연면적 19만㎡에 지상 22층 지하 6층, 병상수 1332개 등 단일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학병원장에게 직접 민원을 제기할 정도면 내로라할 인물이 분명하다.
게다가 병원장의 위엄 짙은 모습을 뒤로한채 민원 최일선에 배치된 접수창구 직원에 버금가는 상냥함으로 응대하는 것을 보니 VVIP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 같은 확신은 오래지 않아 당혹으로 바뀌었다. 전혀 예상 밖의 상황에 놀랐고, 나중엔 병원 수장의 뼈있는 고충에 공감도 갔다.
“평상시 자주 들르는 콩나물 국밥집 아주머니입니다. 지난 번 소주 한잔하러 갔는데 허리가 안좋아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하길래 우리 병원으로 오시라고 했어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승기배 병원장은 특유의 소탈하고 온화한 미소로 방금 전 통화내용과 배경을 설명했다.
“국밥집에 가면 제가 고객이지만 오늘은 아주머니가 제 고객이죠. 평소 감칠맛 나는 음식으로 환대해 주셨으니 저는 최고의 의료서비스로 보답해 드려야죠.”
지난 9월 제19대 서울성모병원장으로 취임한 승기배 원장은 요즘 일상이 마케팅이다. 진료에만 전념하던 교수 시절과 확연히 달라진 역할론을 여실히 체감 중이다.
실제 콩나물 국밥집 아주머니는 물론이거니와 양복점 사장님, 헬스클럽 코치, 테니스 동호회 회원 등 병원 밖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환자 넘쳐났던 교수 시절 뒤로하고 직접 발로 뛰며 환자 유치 나서"
물론 주변인들이 아프지 않는게 가장 중요하지만 혹여나 병원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서울성모병원을 찾아주길 당부한다. 병원장이 직접 발로 뛰며 환자 유치전을 펴는 셈이다.
불과 수 개월 전 임상교수 시절만 해도 그에게 이러한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찾아오는 환자도 버거웠다. 그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수 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승기배 병원장은 20년 동안 1만번 이상 관상동맥성형술(스텐트 삽입술)을 시술한 국내 심혈관 질환 치료의 권위자다. SCI 저널에 게재한 논문만 200건이 넘을 정도로 연구에도 탁월했다.
여기에 환자들 사이에 ‘친절한 의사’로 정평이 난 탓에 매년 그의 진료 및 수술 스케쥴은 늘 연초에 마감되기 일쑤였다. 물론 병원 내 진료실적 ‘1위’ 자리도 늘 그의 차지였다.
그랬던 그에게 ‘병원장’이란 직함은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의사 개인, 단일 진료과, 단일 센터를 넘어 전체 조직의 살림을 꾸려야 하는 자리이기에 그는 항상 수치와 전쟁중이다.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각 진료과 컨퍼런스 시간에 양해를 구해 의료진에게 경영상황을 설명하고 선전을 독려하는 일 역시 요즘 그에게 중요한 일상이 돼 버렸다.
내부에서는 ‘야전사령관’, 외부에서는 ‘병원 전도사’를 자청하는 그에게 병원장으로서의 고충 보다는 비장함이 더 강했다.
승기배 병원장은 “결국 이 자리는 성과로 평가받는 것 아니겠냐”며 “환자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찾아나서야 하는 상황이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 당연한 역할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