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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의료원에서 부서별로 팀원을 모아 30명의 재난 국가대표팀을 만들고 싶다. 60년 전 누군가처럼 우리도 받았던 희망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초대형 태풍 '하이옌(Haiyan)'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끔직했다. 시신이 즐비했고 악취가 진동했다. 가족을 잃은 부모와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끊이지 않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한 약탈과 정부와 반군 간 내전이 이어졌다.
김영철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의료지원팀장[사진]은 이런 아비규환 상황에 기꺼이 발을 내디뎠다. 한국 정부가 필리핀에 파견한 총 81명의 긴급 구호대 자격이었다.
김영철 팀장은 “한국에서 의사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외상을 배우러 갔을 때부터 재난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재난지역은 생의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을 낳는 곳이다. 언젠가는 떠나고 싶다”며 재난지역을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소개했다.
그를 필두로 20여 명의 의료진은 필리핀 타클로반 시내에 있는 세인트 폴 병원에서 가져온 수술 기기와 의료물품을 기반으로 진료에 나섰다.
우선, 의료진은 열 두 트럭에 실린 의료 보급품과 기계를 병실에 배치, 한쪽에는 약국을 차리고 가까스로 전기를 끌어와 장비 수리와 제품 조립을 했다.
물도, 전기도, 병실도, 응급실도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의료진의 손길 덕에 열악했던 병원 환경은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갔다.
"임시 진료소 설치하자 환자들 구름처럼 몰렸고 아이들 특히 많아"
병원 정비 소식이 전해지자 파편에 맞아 외상을 입은 환자부터 산모, 만성질환자, 총상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까지 하루 최대 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는 “특히 아이들이 많이 왔다. 바람에 날아가는 각목과 판자 못에 맞거나, 유리를 밟아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정부와 반군이 여전히 내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총에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환자 진료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김 팀장은 현지 의료진, 국제 의료진과 적극적으로 협진에 나섰다.
김 팀장은 “세인트 폴 병원이 3차 병원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지 의료팀과의 협진이 필수적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현지 의료팀과 역할을 분담해서 환자들을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우선, 세인트 폴 병원을 담당하는 수녀원장과 저녁마다 모여서 회의를 했다. 환자들의 상황과 필요한 물품에 대해 논의하고, 다음 날 일정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 받은 현지 간호사는 소아환자, 분만 환자, 수술 환자를 제외한 경증 환자를 모바일 케어팀으로 돌리며 환자 분류를 시작했다.
그는 “하루 30명의 현지인이 청소 업무를 담당했다. 현지 간호사들은 한국 의료진의 교육과 요청에 성실하게 임했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UN을 중심으로 각국의 구호팀 간 호흡도 맞춰봤다. 필리핀 보건복지부 차관이 총 진행을 맡았다. 이들은 회의를 통해 기술과 장비를 교류하며 효율성을 높였다.
김 팀장은 “한국 의료팀은 X-ray와 혈액검사, 외상 수술 등을 할 수 있었다. 다른 팀에서 혈액검사를 요청해오면 분석해서 정보를 제공해줬다. 호주팀에서는 수술텐트를 가져왔다. 응급수술은 그쪽으로 보냈다”며 각국 구호팀 간 성공적 협진 사례를 만들었다.
"60년 전 초토화됐던 상처, 다른 나라 도움으로 아물었듯이 우리도 이젠 도움 줘야"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지난 30여 일의 일정을 돌아보며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국립병원이 갖춰야 할 비전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김 팀장은 “국제적 재난이 발생하면 구호팀은 72시간 내 재난지역에 도착해야 한다. 물론 그들은 숙련된 전문 인력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격에 맞는 의술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재난 구호에 투입될 훈련된 국가대표 의료진의 선봉에 국립병원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팀장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팀원을 모아 30명의 국가대표팀을 만들고 싶다. 60년 전 전쟁으로 초토화됐던 한국도 세계 각국의 도움을 받아 잿더미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받았던 희망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라며 포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