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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20여 분을 이동해 도착한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의 한 건물. ‘국내 유일’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게 외관은 너무나 평범해 보였다.
과연 이곳에서 제대로 된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설은 열악했다. 그러나 내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는 첫 인사를 건넬 때부터 왠지 모를 인간미와 포근함이 느껴졌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이름조차 생소한 이곳은 구로공단 뿐만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몸이 불편하거나 다치면 앞 다퉈 찾는 의료기관이다.
올해로 설립 10년을 맞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하루 평균 150여 명이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고 있다. 설립 2년 만에 무려 3만6000명에 가까운 환자를 돌봤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의료혜택 사각지대 방치된 외국인노동자들
2004년 6월 처음 문을 연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지구촌사랑나눔 대표를 맡고 있는 김해성 이사장의 철학과 신념이 담긴 시설이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외국인노동자를 상담하면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무수한 고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조그마한 질병을 앓게 되더라도 금전적인 이유로 인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빈번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김해성 이사장은 “약 1500건의 장례를 치르다 보니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화장을 하거나 방부제 처리 후 본국으로 송환하는 절차를 돕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주로 속칭 ‘노가다’라고 일컫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위험하고, 몸이 축나는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의료혜택 사각지대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꾹 참고 나서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어떤 외국인노동자는 건설현장에서 못에 질려 파상풍에 걸려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또 다른 외국인노동자는 단순 감기에 걸렸지만,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급성폐렴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외 급성맹장이 복막염으로 악화된 사례, 임금체불 문제로 인한 자살시도 등 우리나라 진료시스템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당시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김해성 이사장은 “병원 한 번 못 가본 사람에게 말 그대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 봉사활동은 의미가 없었다”라며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가난하고, 차별대우를 받고, 홀로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실질적인 의료혜택을 주고자 탄생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개원 1년 만에 3억 빚더미…아직도 경영 힘들어
여기서 2가지 의문이 들었다. 김해성 이사장은 목사다. 의료인 면허증이 없기 때문에 의원 개소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지구촌사랑나눔은 비영리단체이다. 초창기 의원 설립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김해성 이사장은 “뜻이 있는데 길이 있다는 말이 정말로 맞았다”라며 “남원에서 개원하다 은퇴하신 이완주 선생님께서 흔쾌히 사업에 동참해주셨고, 초대원장까지 맡아주셨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설립 자금의 경우 한신교회를 주축으로 후원금이 마련됐다”며 “다행히 지구촌사랑나눔 사옥 덕분에 공간은 무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모여진 후원금은 기자재 및 중고 의료기기 등을 구입하는데 사용됐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입원실 29병상, 수술실, 물리치료실, 방사선실 등을 갖추고 출범했다. 초창기 진료과목은 정형외과, 소아과, 내과였다. 의료진은 파트타임(1주일 3번) 형식으로 초빙했다.
기대와 부푼 꿈을 안고 첫 발을 내딛었건만 현실은 냉혹했다. 무상진료이기 때문에 초기 자본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환자는 늘어났지만, 오히려 적자가 나는 기형적인 구조가 문제일 수 밖에 없었다.
김해성 이사장은 “딱 1년이 지나니 정확히 3억원 빚이 생겨났다. 겁이 덜컥 났다. 설립을 반대했던 직원들의 목소리가 뇌리를 강타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지구촌사랑나눔은 내부회의를 거쳐 의원 폐쇄를 결정하게 된다. 당초 목적대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반응도 뜨거웠지만 ‘자본’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결국 사업 자체가 주저앉게 될 판국이었다.
이 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개원 1주년을 맞자 각 언론사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해당 사업이 민간외교단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규모 후원금이 들어왔다.
김해성 이사장은 “빚 3억원을 탕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라며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처럼 의미 있는 사업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됨에 따라 지금까지 운영을 계속 이어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사정이 어려워졌다. 뜨거웠던 관심도 잠시, 후원금은 다시 줄었다. 결국 2012년까지 운영되던 입원실과 수술실은 지난해부터 문을 닫았다. 애초부터 정부지원금은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올해 역시 상황은 낙관하기 힘들다.
김해성 이사장은 “입원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력 뿐만 아니라 경비, 청소, 식당 등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라며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 3명 월급도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지원하고 있다. 정부지원금을 요청해봤지만,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도서지역 근무 공보의에게는 행정안전부가, 군의관에게는 국방부가 월급을 지급하는 것처럼 보건복지부가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올해 꼭 다시 입원실을 운영할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코리아드림’ 실현 돕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우리나라 이미지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사업주에게 임금체불은 물론이고, 폭언 · 폭행 및 강압적 노동 행위를 강요받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법체류자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협박을 하는 경우도 많다.
김해성 이사장은 “처음 의원을 찾는 환자 대부분은 분통을 삭히지 못하고 ‘한국 사람 나쁘다’, ‘한국 너무 싫다’와 같은 발언을 일삼는다”라며 “그러나 치료를 마친 후에는 ‘한국 사람 중 일부만 나쁘다’라며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대구로병원, 안양샘병원, 서울시립병원 등과 연계해 ‘진료 교통정리’에 나서고 있는 김해성 이사장은 개발도상국 정부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감사를 받고 있다.
실제로 현재 서울대공원에는 그가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선물 받은 코끼리 1쌍이 지내고 있다. 개인이 외국으로부터 코끼리와 같은 국가적인 상징물을 수여받는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김해성 이사장은 “어떤 겨울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스리랑카 노동자를 도운 적이 있다”라며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길래 아는 업체를 소개시켜 주고, 숙식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줬다”라고 전했다.
이어 “시간이 지난 뒤 그 친구가 갑자기 스리랑카 명절 행사 개최 도움을 요청했다”라며 “평소 신념대로 행사 운영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리랑카 노동부 장관까지 다녀갔다”라고 덧붙였다.
김해성 이사장은 “그 때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던 마힌다 라자팍세 씨가 바로 현 스리랑카 대통령”이라며 “대통령 당선 후 스리랑카로 초청해 그동안의 공로를 치하하며, 앞으로도 한국과 스리랑카 민간외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당부했다”며 웃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의 중장기적인 목표는 ‘응급실’과 ‘야간진료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1차 의료기관급에서 벗어나 준종합병원으로 성장해 급증하는 외국인노동자에게 보다 큰 힘이 되길 고대하고 있다.
김해성 이사장은 “중국, 파키스탄, 미얀마, 러시아 등 15개 통역센터가 있기 때문에 의료진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그 어느 병원보다 뛰어날 것”이라며 “정부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의원의 성장과 발전에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 드린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누구나 평등한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다. 외국인노동자를 차별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따뜻한 마음으로 환대할 때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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