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소아외과 대모 박귀원 교수. 박 교수는 지난 2월 서울대병원 정년퇴임 이후 3월부터 중앙대병원에서 '소아진료 탑(Top)팀'을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 그를 중앙대병원에 영입하는 데는 김성덕 원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김 원장은 박 교수와는 서울대 의대 1년 선배이자 서울대병원 전임의 동기로 수술실에서 동거동락하며 지낸 사이다.
박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정년퇴임을 하면 미국에 있는 동생 집에 가서 쉴까 생각했지만 선배인 김성덕 원장 권유에 한걸음에 중앙대병원에 달려왔다”고 웃음졌다.
그는 “매년 어린이 숫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아이들을 치료해줄 의사는 필요하다”며 “중앙대병원은 규모도 큰데 소아외과 전문 인력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고 전했다.
유독 산부인과에서 그의 영입을 환영했다는 후문이 나오는 이유도 박 교수가 오면서 더 이상 외과수술이 필요한 신생아들을 다른 병원으로 보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박 교수는 정년퇴임으로 임상에서 물러나기에는 아까운 인재로 손꼽힌다.
서울대병원이 처음 소아외과 문을 열 당시 전임의로 합류해 국내 소아외과 기틀을 마련했고, 당시 흔치 않았던 ‘여자 외과의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무엇보다 선천성 기형 등 고난도의 소아 수술을 3만 건 이상 집도한 그의 임상경력을 단절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그는 “서울대에서 국가 돈으로 공부한 사람이 그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떠나면 안 된다는 조언도 있었다”며 “언젠가 병원을 떠나더라도 소아환자의 외과수술을 담당할 수 있는 후배를 양성하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중앙대, 대형병원서 볼 수 없는 협진체계 구축 놀라"
특히 박 교수는 중앙대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소감으로 “대형병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협진체계에 놀랐다”고 전했다.
그는 “사실 서울대병원은 너무 크다보니 환자가 여러 곳에 질환이 있어도 각 진료과에 따로 보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며 “반면 중앙대병원은 환자가 오면 여러 진료과 선생들이 모여 환자 진료를 어떻게 할지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가 이끌고 있는 소아진료탑(Top)팀에는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해 소아비뇨기과, 소아안과, 소아신경외과, 소아마취과, 소아재활의학과 등 8개 소아전담 진료과의 18명 전문의가 협진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박 교수는 “얼굴에 혹이 있는 환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입원해서 보니 소아외과 병이라 해당과에 연락을 했다”며 “아이 진료가 어떻게 진행되나 궁금해서 가봤더니 이비인후과, 소아과, 방사선과, 성형외과 의료진들이 환자를 두고 치료방법을 논의하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중앙대병원의 장점인 협진체계와 그의 임상경력을 바탕으로 소아진료 최고의 팀을 구축하겠다는 박 교수는 밤샘 수술에도 피곤함을 못 느끼는 타고난 외과 의사이자, 아픈 아이 이야기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소아과 의사다.
박 교수는 “레지던트 때는 낮엔 예정된 수술 스케줄을 소화하고 밤에는 응급수술에 투입되면서 밤새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3일을 꼬박 샜던 적도 있는데 2일째 주치의가 쓰러지고, 3일째는 어시스턴트가 나가떨어졌는데도 나는 피곤한지 모르겠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도 눈이 좋아 시력교정 기구 없이도 맨눈으로 수술을 한다”며 “하루 4건 정도 하는데 여전히 힘든 줄 모르겠다. 체력이 좋은 것도 의사로서 타고난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소아진료팀이 목표로 하는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애들 고생 안 시켜야지"라는 소아외과의사다운 박 교수의 대답이 돌아왔다.
박 교수는 "소아외과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과"라며 "첨단기계가 필요한 과는 아니지만 아이를 돌보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소아외과 의사로서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