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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공의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석·박사 학위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25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법인 설립 10주년을 맞아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개최한 ‘임상의학 학위제도 개선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K대학병원 전공의 A씨가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 의학교육 ‘학위제도’에 관한 낯뜨거운 현실을 설명했다. A씨는 “전공의들 가운데는 교수를 목표로 하는 일부도 있으나, 대다수가 하루라도 빨리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싶어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이 학위과정을 밟는 이유는 뭘까.
A씨는 “전문의 자격 평가 기준에는 ‘제1저자 논문’이 있어야 하는데, 이 문제로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면 도리어 ‘석사’를 권유하신다. 이어 석사 마칠 때 쯤이면 다시 ‘박사’ 과정을 권한다”며 “많은 전공의가 원치 않는 학위를 취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의과대학 교수 및 의학교육 관계자들은 그의 발언에 공감을 표하며 “이제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사 박사 학위제도 회의론 제기…"폐지" 주장도 나와
학위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나왔다. 심지어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양은배 연세의대 교수는 “학위를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문제는 이들이 정말 필요해서 받는 것인지, 또 학위 제도가 유능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적합한 제도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학분야 대학원교육과 전공의 수련교육을 연계하는 방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물론, ‘박사학위’가 개업의들에게 자신을 홍보하는 주요자산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수련 전공의들도 자신이 앞으로 계속 관계를 지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전공임상과 의국 일원으로 가입한다는 취지로 ‘학위과정’을 중요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달라졌다. 고려의대 내과학교실 김병수 교수는 “최근 개업환경이 열악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학문적 개념인 ‘박사학위’보다는 기능적 측면에서 ‘전문의’를 중시하면서 개업의들의 박사학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주의대 임기영 교수는 “임상의학 학위제도 ‘개선’에 관한 심포지엄이 아니라 임상의학 학위제도 ‘폐지’에 관한 심포지엄으로 했어야했다”며 “전공의들이 교수들 뒷바라지 하는 제도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한국의학교육학회 서덕준 회장은 “대학원 의학과의 문제는 1990년대부터 논의가 돼왔으나,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공의가 전일제 업무를 하면서, 또 풀타임으로 학위 과정을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며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왔다“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이처럼 임상의학 석·박사제도의 문제가 오랫동안 개선되지 못한 원인으로는 ‘여러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중립적인 위치에서 제도 개선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려의대 내과학교실 김병수 교수는 “개업의 및 전공의들의 대학원에 대한 수요가 날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을 뿐 아니라 현 체제로는 대학원 본연의 업무 수행이 힘든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교육 목표와 과정에 대한 엄격한 질 보증(QA)을 받는 의과대학과 달리, ‘임상의학 학위제도’ 하의 대학원은 교육목표와 과정이 QA로 관리되지 않으면서, 개업의·전공의와 학위지도 교수와의 계약 혹은 도제 관계 속에서 수준을 가늠하기 힘든 학위 논문을 다수 생산해왔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전용성 교수는 “의학교육평가원 등이 폐지로 가는 쪽으로 분위기를 잡아줘야한다”고 말했다.
“의과대학 ‘졸업 후 교육’의 양대 축인 ‘전공의 수련교육’과 ‘임상의학 대학원 교육’이 방치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학병원들을 헬스 테크놀러지 연구 및 개발(R&D)중심으로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청사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고려대 의료원 교육수련실장을 맡고 있는 김병수 교수(고대의대 내과학교실)[사진]는 고려대 대학원 의무계열 부원장과 보건산업진흥원 R&D 진흥본부 중개연구단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소회를 이 자리에서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의 의대졸업 후 연구교육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개업의와 전공의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수 있는 현 제도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은 엄격히 분리된 임상진료와 대학원 혹은 연구 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일과의 모두를 연구에 투입하는 전일제 연구를 하지 않는 한 박사학위과정을 진입할 수 없도록 돼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영국, 미국 등은 중개연구 교육과정에서 적극적인 교육을 하고 현대적 개념의 기본적 연구방법론과 설계, 연구결과 사업화 등 체계적 교육을 대학원 학부생뿐 아니라 전공의에게도 가르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의학교육 질 관리’와 ‘인재양성’ 및 ‘적극적인 지원’도 강조됐다.
김 교수는 “정부가 21세기 성장동력으로 제시한 의료산업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연구수행이나 시설, 장비 등 하드웨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HT R&D’를 창조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산업화’와 연계시킬 역랑을 갖춘 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러한 인력을 양성할 ‘임상의학 학위과정’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선진국은 연구 교육에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은 NIH중심으로 연간 45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중개연구 전문가양성 혹은 학위과정 등의 연구 교육에 투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임상의학 학위과정에 대한 면밀한 기획과 적극적인 지원, 엄격한 질관리가 시급하다” 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