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첩]지난 1월 24일 오후 7시 1분. 서울시의사회 주최로 열린 의약분업 재평가 및 선택분업 촉구 토론회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의사 회원이 남자화장실로 향했다.
그는 화장실 창가에 서서 여러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몇 차례 열어봤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칸막이가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고, 상당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날 담긴 CCTV 영상이다.
토론회에는 꽤 많은 의사 회원들이 자리해 있었다. 하지만 일순간 행사장이 혼란 속에 빠진 그 곳, 의사회 직원이 최초 발견한 남자화장실에는 대량의 피가 이미 문 밖으로 흐른 상태였다.
스스로 목과 손목을 칼로 긋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던 사람은 바로 서울시 서초구 소속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이었다. 그는 지난해 30대 여성 환자를 성치료, 최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허그 치료', '성 치료' 등이 실제 존재하는 치료법이라고 성폭행 혐의를 부인했으나 대한의사협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환자의 성적 접촉은 비윤리적 행위로 엄격히 명시돼 있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그는 '엽기 의사', '비도덕적 의사'의 꼬리표를 달고 삽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그가 느꼈을 압박감과 수치심이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일주일여가 흘렀을까. 이 사건은 금새 잠잠해지는가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 원장에 대한 당시 의협의 '단죄(斷罪)'에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가 아직 도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협이 앞서 윤리위원회에 회부, 징계 절차를 밟는 등 성급한 판단이 아니였냐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행사가 열리던 그 날은 의사협회 윤리위원회 회의가 진행됐다.
서울시의사회 소속 한 개원의는 "명확한 조사 결과가 나와 해당 의사의 잘못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을 때 '단죄'해도 늦지 않았을 것을 왜 의협이 앞서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의사도 "협회는 회원들에게 가족이 아닌가. 아무리 중대한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사실 관계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떠한 가족도 단죄부터 하지 않는다. 가족부터 비난하고 낙인을 찍어버리면 허탈감과 씁쓸함은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사회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의협은 전문가 단체로서 의견을 개진하거나 협회 차원에서 시의에 적절하게 대응해 왔다.
하지만 이번 성 치료 논란 의사에 대한 의협의 대응은 전문가 단체이기 이전에 회원을 '보듬'는 면모는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그 날 참석했던 한 의사가 성토했던 이 '원망'은 유족들은 물론, 다른 회원들에게도 진하게 남겨진 여운이 될 수 있다.
물론, 전문가 단체로서 자정 작용과 위상을 공고히 하려는 의협의 대응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만 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원들의 권익 보호가 가장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고인이 자택이 아닌 동료 의사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과연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가면서까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지 여전히 생각하게 되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