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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 초고속 성장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지구촌 유일의 나라 대한민국.
1조클럽 가입 등 경제적 성과에 따른 가슴 뭉클함이 이젠 별 감흥없이 느껴질 정도로 부국강병의 기반을 다졌다. 여기에 근래 들어서는 한류(韓流) 열풍으로 전세계적인 문화강국 이미지까지 가미됐다.
반만년 역사에 이 같은 영화(榮華)가 다시금 재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우리는 덩치가 커졌다. 다른 나라들에 대한 발언권도 이전보다 훨씬 무게감이 든다. ‘팔로우(Follow) 한국’을 표방하는 나라들 역시 많아졌다.
그러나 이런 우쭐스러운 전면의 뒤에는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어두움과 아픔, 슬픔의 잔상이 너무도 많은 게 현실이다.
갈등, 반목, 대립, 충돌, 무질서, 무례, 안전불감증, 분노 등 사회 곳곳에 지뢰밭이 널려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는 말할 것도 없이 우울한 개인과 조직, 국가의 병리현상이 총체적으로 목도되는 상황이다. ‘갈등 공화국’에 ‘참사 대국’이라는 외국 언론의 비아냥을 외면할 수 없는 서글픈 현실이다.
지표상으로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세계 1등을 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그런 우리의 저력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불편한 1위도 많다. 단지 불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런 발전史를 중단시킬 수 있는 예고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실례로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에 낙태율도 최고다. 노동자 삶의 질의 척도인 산재사망률도 1등이고 주5일 근무가 정착됐지만 근로시간도 2위다. 비정규직 비율도 인구대비 최고 수준이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걸려있는 최저출산율 역시 전세계 톱이다.
지난해 미국 여론조사기관이 ‘삶의 질(웰빙) 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조사 대상 135개국 중 75위를 기록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역설적 모습이다. 필리핀은 물론 전쟁의 참화가 아직도 진행 중인 이라크보다 낮게 나왔다. 한국인들은 이 조사에서 10명 중 8.6명이 “삶의 목표 실현이 어렵고 이로 인한 고통이 크다”고 답했다.
특히 젊은층과 노령층이 사안이 다르고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분노감이 커지고 무기력감이 깊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요즘 20대는 취업 고통이 너무도 크다.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이 비하돼서 ‘한국적 인구론(인문계 전공자의 90%가 논다)’이 회자될 정도다. 20대에 취업이 안되니 30대 결혼도 못하고 출산은 더더욱 먼 꿈나라 이야기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출현이 어찌보면 당연한 셈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젊은 사람들을 소위 ‘앵그리세대’로 변모시키고 있다. 앵그리세대 증가는 그 부모와 지인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필연적으로 사회 전반적인 우울증 환자와 분노조절 장애자 확산을 동반한다.
최근 우울증 등으로 인한 자살률이 높고 ‘욱’해서 사고 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데서 연유한다. 이미 우울증은 국민적 질병이 됐다. 특히 자살 원인의 60%~80%가 우울증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10년 새 우울증 환자가 77%정도 늘었다. 이중 절반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율은 한국인이 서양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우울증이 비교적 개인적 사안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면 ‘욱’하는 분노조절 장애는 본인 자신도 문제지만 타인에 상해나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위험하다. 우발적 폭력, 폭행, 방화 등 범죄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런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분노조절 장애(2010~2014년) 자료를 보면 한해 환자 수가 1만3000~1만4000여명에 달한다. 또 경찰이 지난해 전국 폭력범 36만6000명을 조사한 결과, 그 중 15만2000명(42%)이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저지른 범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워낙 갈등 자체가 많은데 이를 적절히 걸러주거나 자제시킬 시민의식 및 제도적 장치가 미흡해 분노조절 등이 잘 안돼 결국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개인적 손실은 물론 사회, 국가적으로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대한민국이 대표적인 갈등 공화국에 참사 대국처럼 위험사회 국가로 인식되는 것은 가슴 아프다. 하지만 이제라도 위험해진 상황이 더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시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 등을 지키면서 가족은 물론 타인을 좀더 배려하는 풍토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나와 남의 다름,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금 더 관용을 베풀면 여유감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봄 날 화사하게 만개한 개나리와 진달래의 향연을 잠시만이라도 느껴보면 어떨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