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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전 국민, 아니 국가적인 혼란을 유발했던 중동 발 호흡기 증후군(MERS :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이 한 고비를 넘기고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많은 것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힘들었던 것만큼 많은 것을 배웠고 이 새로운 경험은 아주 귀중한 사회적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
"최일선 현장에서 위험 무릎쓴 의료진 사투 감사"
MERS라는 생면부지의 질환을 겪으면서 무엇을 반성하고, 향후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를 반드시 숙고해야 한다. 아울러 진료의 최일선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치료해 온 의료진의 사투에 가까운 노력에 눈물겨운 감사를 드린다.
그동안 언론 매체에서는 연일 초동단계 대처가 미흡했다고 질타를 해왔다.
사전적 의미로 “대처가 미흡했다”는 말은 “알고 있는데 게을러서 또는 무관심해서 제대로 일 처리를 못한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
전술했듯이 메르스라는 이 질병은 우리가 겪어 본 일이 없는 초유의 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른 시간 내 진단을 내렸다는 것은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의료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초동단계에 대처가 미흡한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독하게 심했던 폐렴 환자가 폐렴이 아니고 메르스 였다는 것을 알고 난 지금의 생각 일 뿐이다. 물론 후속단계의 미흡한 측면은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감염성 질병의 극복은 전문가들로부터는 자문을 받고, 국가는 행정력을 동원해서 적극 지원해 주는 형식으로 통제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했는지 묻고 싶다.
전파성 감염병의 유행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정치 문제화하려는 의도는 참 어리석은 일이었고, 한참 정신없이 대책을 세워야할 때 “주무 장관 물러나라”, “책임져라”하는 식으로 책임 공방을 벌였던 국회의 모습은 너무도 저급한 처사였다.
최초 질병에 걸린 환자 및 아파서 병원 갔다가 이환된 분들, 문병 갔다 환자가 된 분들, 환자 진료하다 병에 걸린 의료진, 그리고 사망한 고인 등 이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인데 누구를 탓할 것이며, 어떻게 책임을 추궁할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감염질환의 예기치 않은 유행은 앞으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바다 건너 질병은 곧 우리의 질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바로 내일 에볼라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알 수 없는 질병이 우리를 급습할 수 있다.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지면 관계상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할 일들의 각론적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향후 우리가 반드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되는 필자의 생각을 주제 별로 큰 틀 안에서 언급해 보겠다.
첫째, 대한민국 보건의료 행정체계는 제대로 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다.
행정력이라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강제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국민들을 위한 강제력이 집행돼야 한다.
따라서 보건 의료분야 행정은 의료 전문가에 의해 수행돼야 하는 것이 초보적인 상식이자 정석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지 행정의 권부에 앉아 있는 분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문(自問)해 보기 바란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보건소는 지역사회 보건 행정의 초병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지배 구조는 효율적으로 갖춰졌는지 반드시 재평가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법적 뒷받침이 필요한 경우 국회는 서둘러 입법화 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장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내 놓으려 할지 의문이다.
국민 건강을 수호하기 위한 보건 행정적 통제의 근간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출발, 지역 보건소에 이르는 강력하고 일원화된 지휘 감독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과연 어떤지 되돌아 봐야 한다. 수년 전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싸스나 신종푸르를 겪고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전 세계적인 감염성 질병 발생 현황과 이에 대한 대비책을 항상 연구하고 준비하는 전문가 참여 기구가 상존해야 한다.
둘째, 국공립 병원(국립대학 병원을 제외)의 운영 행태는 과연 효율적이며, 방향성은 올바르게 설정돼 있는지 등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질병 종류에 따라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치료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의 85% 이상을 민간 의료기관이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설립한 의료기관의 업무 행태가 민간의료기관과 경쟁하는 방식이라면 이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재난구조 의료 관련 대응팀의 상시 운영 체계도 별도로 운영되는 것 보다는 공공병원 운영체계 속에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공공 의료기관의 운영은 그 만큼 탄력성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예측 가능성 있는 재난에 대한 대책 점검이다.
재난의 종류와 원인은 다양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정말 대비해야 하는 대형 재난 중 하나는 북한의 생화학 무기에 의한 공격이나 테러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집단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 생화학 무기 공격이나 테러는 아무런 증후도 없이 공격이 가능한 전쟁이다.
이러한 사태가 발발하면 사회적 대 혼란의 엄청난 파장은 국가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우리는 국토 면적이 좁으면서 인구 거주 지역 대비 일차 의료기관의 분포가 밀집되어 있는 보기 드문 나라다. 이는 일차 의료기관과 행정 당국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전염성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 또는 생화학 테러와 같은 재난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넷째, 의료기관에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설치돼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사례 등에 대해 많은 언론이 어이없다는 논조의 보도를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흥분하기에 앞서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된 이유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보험 급여 체계가 큰 원인임을 인식해야야 한다.
다섯째, 언론의 보도 태도는 정말 유감이 많다.
국민들의 알 권리라는 근본적 권한에 대해 재론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 국민이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을 때는 신속한 보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확성이다.
또한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자극적, 선동적 보도는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만 낳는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의 뒤늦은 병원 정보 공개가 질책을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질병과 사투를 벌리고 있는 일선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언론 보도에 대해 사안별로 너무도 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은 의사로서의 사명감뿐만 아니라 본인이 소속된 의료기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위험을 무릅쓰고 피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 부정확하고 억울한 보도는 자칫 이들을 허탈과 좌절에 빠지게 하고, 나아가 이번 사태가 종식된 다음 해당 기관에 대한 책임 추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종편 방송을 필두로 한 엄청나게 많은 메르스 관련 출연진의 태도와 양태는 향후 이러한 일이 재발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해 많은 교훈을 남겼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방송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이번 메르스 사태가 끝나고 나면 반면교사의 교훈을 근거로 미래지향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원망과 책임 추궁의 사회적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의 악순환을 겪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메르스 사태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이고 정확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국제적인 전파성 감염 질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한 판을 다시 짜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