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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ERS・중동호흡기중후군) 사태가 사실상 일단락됐다. 더 이상 추가적인 환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닫혔던 병원 문들도 다시금 열렸고, 메르스란 낙인이 찍혔던 이들도 가족과 사회로 돌아갔다.
이처럼 일상으로의 복귀가 이뤄짐에 따라 정부와 의료계는 메르스 여파가 남긴 의미를 되새기고 복구와 개선을 위한 논의에 한창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기된 많은 화두와 대책에도 불구하고 이대로는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질책이 뒤따른다.
지난 4월 '소통'을 설립 취지로 내세우며 개소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좋은의사연구소'가 최근 문숙의학관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연구소 책임자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정지태 교수[사진]는 "수많은 개선책이 쏟아지지만 공무원 숫자나 세금만 늘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문제가 터지고 생각하면 이미 늦다. 실제와 같은 훈련과 같은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해야한다"며 "메르스 사태를 되짚어보고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재난이 몰려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현재 논의되고 있는 담론들의 대부분이 메르스라는 질병 자체이거나 의료전달체계 문제에 국한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간 국민들이 느꼈을 심리적 공황이나 의사들의 적합한 역할에 대한 이해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와 메르스, 그리고 소통
첫 발제자로 나선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는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사태에서 피해자들과 대면하며 느낀 점을 바탕으로 메르스를 해석했다.
메르스로 고통받고 불안해 하며 공포에 떤 일련의 행동들은 세월호 사태에서 보인 피해자들의 '외상 후 울분장애'와 유사했으며 인간이라면 보일 수 있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지속적인 실망과 실의, 박해와 구박에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이 지속적으로 작용해 '화' 혹은 '한'이 쌓여 울분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울분의 만성화로 사회를 향한 폭력과 충동성의 폭발, 자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외상 후 성장을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지속적인 관심과 울분을 풀 수 있는 상담 ▲잘할 수 있다는 지지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이 창궐할 때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 ▲원활한 정보제공 등 '소통'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또한 '메르스 포비아', '메르스 왕따'와 같은 강력한 낙인과 배척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언급하며 '소통'을 강조했다.
아울러 "인류 역사는 재난사이자 전염병의 역사"라며 "사회가 집단화 고도화됨에 따라 주기적인 신종감염병 대유행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몸과 마음사이: 메르스 사태의 사회학적 조명'이란 제목으로 강단에 선 고대 사회학과 김문조 명예교수는 세월호와 메르스의 차이점으로 '내면화'를 들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의 경우 타인에게 일어난 1회성인데 반해 메르스는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지속적인 위협"이라며 "공포와 불안이 가중되며 확대 재생산됐다"고 풀이했다.
이어 일련의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의료체계 개혁과 함께 위협에 대한 정확한 인지, 대처할 수 있는 사고, 그 근간이 되는 정보 소통을 위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의료인들도 권위 내려놓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심포지엄에서는 사회와 정부, 국민을 향한 변화와 함께 의료인들의 자기반성과 인식 혁신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당장 전문가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상호 지식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강원대학교 철학과 이진남 교수는 '의심과 공포의 철학적 정당성과 전염병'이란 발표를 통해 "감염병에 대한 무지가 공포와 의심을 초래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거나 권위에 문제 해결을 맡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메르스 확산 결과 사회전체의 불안과 경기침체 등 국가적 문제가 초래된 것으로 볼 때 한 분야 전문가가 권위를 가지고 전적으로 결정할 기술적 영역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정보화된 대중을 인정하며 권위를 내려놓고 조언자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김문조 교수 또한 현 시대를 "독점적 지위는 줄어들고 권위는 합리적이어야 하는 사회"라며 "국민들이 의료인에게 바라는 모습은 대통령이나 권력 앞에 쩔쩔매며 사과하는 모습이 아니라 전문가로써 당당한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메르스는 의료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상쇄할 기회이기도 하다"며 "사익이 아닌 생명과 공익을 위해 소명의식을 갖고 애썼던 모습들을 사회 전체에 각인시키고 의료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강조한다면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 외에도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들은 의료인들의 윤리교육과 소명의식, 의료와 사회의 상호관계, 적극적인 소통과 정보 및 지식전달 방법 등이 미흡했음을 반성하며 의료체계 등 외적 변화와 함께 의료계의 내적 변화 필요성에 대해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