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알파고와 테이, 이성과 직관 그리고 주체와 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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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테이, 이성과 직관 그리고 주체와 객체”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

[ 2016년 04월 18일 07시 14분 ]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수많은 이슈를 양산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인공지능이라는 이슈로 뜨거웠던 몇 주를 보내고 있다.

정부는 물론, 기업, 대학 등 여러 주체들이 인공지능이 향후 대체하게 될 여러 가지 산업적 파급효과와 이러한 시대의 대세에 뒤떨어지면 안되겠다는 조바심으로 많은 얘기가 오가고 있다.

개념적으로 새로울 것 없는 인공지능 이슈들이 뒤늦게나마 표면화 됐다는 점에서 아직은 이것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과학의 한 영역에 전 사회가 동참해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인간의 판단이라는 것이 수많은 경험치의 축적과 이를 통한 자신의 판단 결과를 보며 배우는 많은 교훈과 반성, 또는 격려의 결과라는 점을 생각할 때, 기계가 학습한다는 소위 ‘머신 러닝’의 경우 특히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결정이 주를 이루는 분야에서 인간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수를 쥐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이 글로벌 기업들이 체스나 바둑과 같은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먼저 탐지하고자 하는 당연한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다음 분야로 실제 생활에서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과학적, 철학적 고민의 총체인 의료를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언론이 인간이 기계를 이겼다는 제목으로 대결의 4국에 초점을 갖고, 이를 통해 아직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벽하게 넘어서지 못했다는 식으로 안심 내지는 방어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과연 무엇을 마음속에서 가장 인상 깊고, 아름다운 대국(이세돌 본인이 대국 시작 전 아름다운 바둑을 두겠다고 한 점에 비춰)으로 생각할까?

물론 짜릿한 4국의 기쁨도 크지만 인공지능의 위엄을 경험하고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국을 펼친 2국이나, 본인 스스로 자청해 흑을 쥐고 임한 5국이 주는 기보의 아름다움 경지는 감히 데이터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영역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아름다운 대국의 여파가 아직 가라앉지도 않은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지능 기능을 탑재한 자기학습형 채팅 로봇인 테이의 시범서비스를 시작하고 만 하루가 되지 않아 서비스 중단을 발표했다.

서비스 시작 후 일부 의도적인 비도덕적, 극단적 사용자의 정보입력에 반응해 자기학습형 인공지능인 테이가 인종차별적, 정치 편향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면서 “잘 가르치겠다”고 했다.

인공지능의 데이터에 대한 분석 능력은 기본적으로 컴퓨터 능력을 생각할 때 사람과 경쟁이 의미 없는 것일 수 있으나, 데이터에 대한 분석 후 판단이라는 영역에서 아직은 갈 길이 멀고 험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데이터 분석 능력이 의도적 혹은 우연한 기회든 인간에 의해 잘못 사용되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알려준 작지만 큰 소동이라 할 수 있다.

"의료IT 미래는 사람이 기술 발전 주체를 어떻게 행사하느냐가 관건"

의료 행위는 과학과 철학, 이성과 직관, 기술과 인간애(愛) 이 모든 것들이 단 수초에서 수분 사이에 인간의 머릿속에서 이뤄져야 하는 고도의 지능적 행위이다.

이것이 수천 페이지의 교과서를 달달 외운다 한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지금과 같이 정보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교육받은 젊은 세대의 의사가, 필요한 정보들을 어렵게 습득하며 환자를 완전한 인격체로 이해하면서 진료해 온 경험 많은 의사보다 훌륭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이며, 의학에서 근거라는 것이 가장 보수적으로 채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 IT는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까지 중립적인 데이터의 판단을 쉽고 빠른 시간에 할 수 있도록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데이터의 2차사용이 가능토록 전자의무기록을 제공하고, 한발 더 나아가 일부 시스템은 표준화된 진료가 대다수의 환자에게 제공되도록 임상 길라잡이를 한다. 복잡한 환자의 데이터를 취합해 가장 옳은 치료를 제시하거나, 혹은 환자 위해 요소를 미리 예측해서 의사가 판단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하는 임상 의사결정지원 시스템이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적용되고 있다.

또 이를 통한 진료의 질을 평가하는 ‘임상질지표 시스템’까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앞서 보다 고도화된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다.

이러한 기반 없이 잘못된 인공지능 기능이 도입될 경우의 폐해는 스포츠나 게임에 적용됐을 때의 경우와는 다르게 불가역적인 강을 건너게 된다는 점에서 철학적, 도덕적 논의가 전제된 차원에서 실행돼야 한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인공지능형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향후 의료IT 방향은 이러한 기술적 발전의 주체를 사람이 어떻게 행사할 것이냐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자칫 잘못해 의료서비스 주체가 인공지능이 되는 것은 아직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문제는 사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