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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서울의대 40회 졸업생이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의사 출신 첫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서울의대 80학번(40회), 금년 졸업 30주년 기념 수필집 발간
안철수 의원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의사이지만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컴퓨터를 치료하는, 아니 예방하는 컴도사가 됐다.
그는 우연히 플로피디스크에 감염된 최초의 컴퓨터바이러스 ‘Brain’을 발견하게 된다.
의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컴퓨터 바이러스도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고 ‘Brain’을 냉철하면서도 끈기있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안 의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프로그램 ‘vaccine’을 만들어 네트워크에 전파시키면서 의사가 아닌 컴퓨터공학도이자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군(軍) 입대하는 날 아침까지도 백신을 개발하는데 열중했다는 안 의원은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복귀, 단국대학교 의예과에서 강단에 섰고 학과장까지 지냈다.
하지만 그는 돌연 의사의 길을 접고 19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에도 안 의원은 LBC, 예루살렘 바이러스를 또 다시 분석하고 ‘vaccine’을 업데이트, 전 국민이 사용한 ‘V2’ ‘V2 plus’를 내놓았다.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는 7명으로 시작한 작은 벤처회사였다. 2012년 글로벌 진출을 위해 안철수연구소로 사명을 변경했다. 2016년 현재 직원이 1000명 넘는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꼽힌다.
그런데 안 의원은 세상의 상식 하나를 또 무너뜨렸다. 자신이 설립한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직을 사임하고 2008년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거쳐 지난 2011년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박원순 시장에 양보했다. 이후 2012년 9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는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은 11월23일 또 다시 대권을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했다. 이후 18대 대통령선거 날 돌연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80여 일만에 귀국, “국민 위에 군림하고 편을 갈라 대립하는 높은 정치 대신, 국민의 삶과 국민의 마음을 중하게 여기는 낮은 정치를 하고 싶다”는 소신을 피력하며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
2013년 4.24 노원병 무소속 출마로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 국회에 들어왔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지만 친노 세력과의 갈등이 악화되면서 탈당했다.
문재인 의원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홀로서기를 강행한 안철수 의원은 금년 2월2일 ‘국민의 당’을 창당, 4.13 총선에서 38석을 획득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원내 교섭단체에 진입했다.
하지만 안 의원은 최근 불거진 당 홍보 관련 리베이트 의혹 사안이 사무총장 구속 등 일파만파 확산되자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며 지난 6월29일 사퇴하고 평의원으로 돌아갔다.
그 간의 이력에서 보듯 안 의원은 다양한 곳에서 매순간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그런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그의 아내 김미경 교수(서울의대)를 서울의대생 시절 연건동에서 만난 때가 아닌가 싶다.
청춘의 시간, 뜨거운 피가 끓었던 대학생시절, 안 의원도 36년 전(前) 서울의 봄인 1980년 3월 5일 서울의대 80학번으로 입학해 청춘을 불살랐던 때가 있었다.
추무진 의협회장 포함 안철수 의원 서울의대 동기들
30여년 전 안 의원은 다른 의대생들과 똑같이 수없이 반복되는 의과시험을 치르며 유급 당하지 않기 위해 1점에 울고 웃는 격동의 세월을 보낸 80년대 의대생이었다.
그런데 안 의원의 서울의대 40회 동기들은 졸업 후 서로 헤어져 있는 30년 동안에도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비롯해 국립정신병원장, 국립재활원 원장, 서울대학교 암병원 원장, 서울아산병원 암병원 원장, 원자력병원장, 충북의대 학장 등 각종 병원의 주임교수와 여러 의학단체의 학회장으로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몇몇 동기들은 미국 유수 대학에서 최고 의사로 명성을 날리고 또 다른 동기는 WHO에서 명예롭게 활동하고 있다.
소위 ‘잘나가는’, ‘한자리’ 하는 서울의대 40회 동기들은 누가 있을까.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과 서울대병원 김태유 암병원장,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김종재 원장, 서울아산병원 유창식 암병원장, 국립서울병원 하규섭 원장이 안 의원의 동기다.
또 국립재활원장과 서울대병원 홍보실장을 지낸 서울대병원 방문석 교수, 원자력병원 노우철 병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이재서 대외협력실장, 대한신경과의사회 이태규 회장, 충북의대 김동운 학장, 한림대 보건과학대학원 김동현 원장, 동아대병원 강명구 前기획조정실장, 서울보라매병원 강승백 前진료부원장, 세계보건기구 WHO 예방접종 전략전문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영미 박사 등이 있다.
고인이 된 서울아산병원 파킨슨병센터 임주혁 초대회장과 세계폐암학회와 유럽흉부외과학회 한국대표를 지낸 원자력병원 박종호 과장 역시 안 의원과 연건동 28번지에서 추억을 쌓은 인물들이다.
40회 동기회 회장인 김해 서울이비인후과 정태기 원장은 (사)지구촌교육나눔 이사장과 독립바이오팜, 서울의료개발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서울의대 40회 졸업생 최고의 순간들
격동의 세월을 함께 보낸 서울의대 40회 졸업생들이 2016년 졸업 30주년을 기념해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들 그때 연건동 28번지’ 수필집을 발간했다.
1980년 서울대학교 의예과 80학번으로 160명이 입학했고, 1986년 2월, 입학연도가 다른 사람을 포함해 152명이 졸업했다.
졸업 30주년을 맞은 40회 동기들은 자신의 삶과 경험, 앞으로의 꿈을 후학과 후배들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남겨주고 싶어 수필집을 냈다고 한다.
서울대 의과대학 40회 동기회 정태기 회장(김해 서울이비인후과의원 대표원장)은 “졸업 30주년 기념행사를 좀더 의미있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수필집 편찬을 진행했다”면서 “2년 반 전 시작한 준비였지만 마지막 30일이 이 책을 탄생하게 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원고를 모집한 후 동기들로부터 한 편씩 글이 들어올 때마다 함께 했던 옛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앞만 보면서 달려온 30년이었기에, 잊고 있었던 동기들의 현재를 그들의 글 속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책은 크게 1부 뼛속까지 의사인 우리들, 2부 그 빛나던 청춘, 3부 새로운 삶, 또다른 꿈, 4부 역시 가족으로 구성됐다.
정 회장은 ‘한골 촌놈, 네팔에 학교 짓다’라는 글에서 우연히 네팔과 인연을 맺어 학교를 짓게 된 이야기를 풀어냈다.
동국의대 김익중 학장(미생물학)은 반핵운동가가 된 사연을 소개했고 서울의대 방문석 교수(재활의학) 교수는 ‘나의 운명, 재활의학’, 서울아산병원 정철현 교수(흉부외과)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체험한 아주 놀라운 경험’ 등을 실었다.
또 안양서울안과의원 오재윤 원장의 아들 오윤호 군은 ‘30 Years After’제목의 영문 편지를 통해 “아버지의 서울의대 졸업 30주년을 축하하고 본인을 위한 체크 포인트가 되기를 바란다”며 존경과 사랑을 전했다.
고(故) 이원용 선생의 딸 지윤 양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성실함과 감사하는 태도를 실제 당신의 삶을 통해 배웠다. 아빠가 늘 보고싶다”면서 ‘아빠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고인을 대신해서 동기들에게 인사했다.
“찬란했던 30년을 추억하기 위해 책 냈다”
“동기들이 30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글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원고가 들어올 때마다 전율이 흘렸다.”
정태기 회장은 “원고 모집과 관련된 글이 공지된 후 동기들로부터 한편씩 글이 들어올 때마다 함께했던 옛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우여곡절 끝에 50편의 글이 모였고 단체톡방에 글이 올라올 때마다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전체 동기들의 면면이 집단 기억에 의해 복원됐다고”말했다.
정 회장은 “책이 출판된다는 사실보다 전체 동기들이 모여 음울했던 시대 속에서도 나름 찬란했던 청춘의 시간을 복원하면서 함께 행복할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진료 시간을 쪼개 틈틈이 그림을 그린 김응선이 이제 전문화가를 능가하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룩했다”면서 “책 표지도 그 친구의 작품이다. 기꺼이 사용하라고 허락해준 친구야 고맙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정태기 회장은 “단체톡방으로 원고가 올라올 때마다 우리는 30년 전으로 돌아갔다”면서 “어떤 장면이나 상황보다는 연건동 28번지의 공간적인 공감이 더 컸기 때문에 '그때 연건동 28번지'를 책 제목으로 정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의대 40회 동기회는 동기들의 경조사가 있을 때면 함께 한다. 정태기 회장은 “요즘 우리 연배에는 조문이 많다. 서울, 대구, 청주 등 발인 전날 저녁에 동기들이 단체 조문을 한다”면서 “서로 위로해주고 격려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돼 주는 그런 모임”이라고 끈끈함을 소개했다.
40회 동기들이 바라본 친구 안철수
“사실 철수는 학교 다닐 때 조용했던 친구다. 처음에는 저런 친구가 정치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만나 이야기를 해 보니 소신은 여전한데 강단이 생기고 대통령 후보의 자질이 충분했다.”
이번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안철수 의원은 40회 동기들과 함께 30년 전으로 돌아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함께 했다는 전언이다.
정태기 회장은 “안 의원이 문재인 의원에게 후보를 양보할 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동기들은 그때 술을 가장 많이 마신 것 같다”며 예전 일을 회상했다.
정 회장은 “안 의원이 바쁜 일정에도 동기 모임은 거의 참석하는 편이다. 정치적으로 큰 일이 터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친구들과 함께 30년 전을 같이 추억해 줘서 고맙다”며 “안 의원이 출마한다면 우리 동기들은 적극 앞장서 돕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원자력병원 흉부외과 박종호 과장은 얼마 전 고인이 됐다. 너무 어렵고 조심스러웠지만 그의 아내에게 종호의 글과 편집을 함께 해 줄 것을 제안했다. 덕분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들을 책으로 펴낼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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