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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의료기기는 남는 게 없으니 검사필증을 받을 생각도 못한다. 검사필증 없이 거저 주거나 원가에 넘기는 것이 현실이다. 제도가 불법유통을 강요하는 꼴이다.”
“검사필증제가 이용자이자 소비자인 의사나 의료기관은 물론이고 중고의료기기 판매업체도 다 죽이고 있다. 의사는 새 것 같은 의료기기를 똥값에 팔 수 밖에 없다. 판매업체도 유통이 안되니 매입조차 쉽게 못하고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중고의료기기 판매업체가 밀집해 성업을 이뤘던 서울 영등포구 일대는 이제 적막이 흐르고 있다. 150개가 넘는 판매업체는 줄고 줄어 30개만 남았다. 시도때도 없이 울리던 전화벨도 멈춘지 오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단 하나의 제도, 바로 중고 의료기기 검사필증 제도 도입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중고 의료기기 검사필증제는 지난 2012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중고 의료기기의 유통 및 판매를 양성화하고 품질을 검증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중고 의료기기의 병·의원 유통시 수입·제조업자에게 검사를 의뢰해 검사필증을 부착하도록 의무화했다.
2014년 1월부터는 중고 의료기기 검사필증을 발행할 수 있는 기관이 해당 의료기기 제조·수입업자 뿐 아니라 식약처장이 정한 14개 시험검사기관까지 확대됐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문제로 지적됐던 과도한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제도 도입 후 4년 반이 지났지만 지금도 수수료 문제는 여전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당사자인 의사, 의료기관, 중고의료기기 판매업체는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게 됐다.
제도 도입 후 중고 의료기기 가격 경쟁력 잃어
구체적인 예를 통해 문제를 들여다보자. 한 의사가 150만원의 국산 심전도 측정기를 1년 사용 후 중고시장에 내놨다. 해당 제품은 중고시장에서 100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이에 의사는 적어도 70~80만원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중고의료기기 판매업체가 제시한 금액은 50만원에 불과했다.
판매업체가 폭리를 취하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 판매업체는 50만원에 제품을 매입한 후 검사필증을 발급받기 위해 30만원의 수수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만약 중고의료기기 판매업체가 제품을 100만원에 중고시장에 내놓는다면 이익은 20만원이 된다.
하지만 이때의 20만원도 온전한 마진이 아니다. 검사를 받기 위해 드는 비용을 빼야 한다. 검사필증 발행기관을 직접 찾아가는 하는 비용 또는 출장 검사를 받기 위한 비용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제품을 되팔 때 보증기간 1년을 제공하는 미래 비용까지 빼야 ‘진짜’ 이익이 나온다.
A 판매업체 관계자는 “업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100~200만원대의 저가 중고 제품은 정말 남는게 없다. 그러다보니 매입 자체를 꺼릴 수 밖에 없다”며 “의사 역시 헐값에 제품을 팔 수 밖에 없는데다 파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문제는 신제품 가격은 150만원인데 중고가격이 100만원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거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신제품에 할인이 적용될 경우 중고가격보다 더 쌀 수도 있어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B 판매업체 관계자는 “새 제품과 중고 제품의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면 누구라도 새 제품을 사는게 당연하지 않나”라며 “결국 저가 중고 제품의 경우 검사필증을 받지 않아야만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이들 제품은 서비스 개념으로 얹어주거나 마진 없이 주는게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수입업체, 수수료 요구과다···중고시장 축소 초래
특히 판매업계는 수수료 문제의 중심에 수입업체가 자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수입업체가 과도한 품질검사 비용 및 수리비용을 요구하면서 중고시장을 축소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고 의료기기의 품질검사를 위한 공통기준이나 방법은 없다. 식약처가 2015년 1월 ‘중고의료기기 품질검사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었지만 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일 뿐 수입업체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품질검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수입업체는 품질검사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입업체가 중고 제품에 대해 새 제품에 준하는 수준의 품질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 이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식약처 지정 시험검사기관이 생기면서 수입업체의 품질검사 비용이 조금이나마 낮아졌다는 것이 판매업계의 전언이다.
C 판매업체 관계자는 “수입업체가 중고 제품을 새 제품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면서 품질검사 비용이 최대 80% 수준에 이르고 있다. 가령 새 제품의 품질검사비가 1000만원이라면 중고 제품의 품질검사비는 800만원까지 나온다는 말이다”며 “중고 제품은 성능이나 기능 검사, 나아가 안전성 검사 정도만 실시해도 충분하다. 지금 수입업체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불필요한 검사를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리 역시 수입업체 판단에 100% 의존하고 있다.
한 수입업체의 경우 피복 일부가 벗겨진 경우 피복 뿐 아니라 그 외 부수적인 것까지 갈면서 3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를 정품이 아닌 비품을 통해 갈 경우 6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의료기기의 핵심 부품이 아닌 피복 하나 가는데도 5배의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C 판매업체 관계자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수입업체가 임의판단해 수리를 하고 있다. 그것도 말도 안되는 수리비를 때리면서 말이다. 더욱이 수입업체 제품의 경우 이들이 아니면 부품을 구할 수도 없어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당 수입업체 관계자는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의료기기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품질검사나 수리에 있어 높은 수준이 요구될 수 밖에 없다”며 “사회가 선진화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수수료 문제 알면서도 개선 미뤄
이처럼 중고 의료기기 시장이 수수료 문제 및 수입업체의 폭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작 규제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식약처 의료기기관리과 관계자는 “업계 자율에 맡기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사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식약처 지정 시험검사기관은 폭리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식약처와 제조·수입업체, 대한의료기기판매협회 등은 검사필증제 개선을 위해 다각적인 논의를 거쳐왔다. 하지만 검사필증 제도 개선의 핵심인 수수료 문제 해결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 당사자들의 고충만 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의료기기판매협회 조행환 장비유통위원장은 “검사필증제의 취지를 존중하지만 현행 제도는 너무도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며 “조금만, 아주 조금만 변한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제조사 및 제품별로 차이가 있는 X-ray의 경우 중고 의료기기를 검사하는 공통기준이 있다”며 “오작동을 하거나 고장이 난 제품을 제외한 일반적인 중고 의료기기는 공통된 검사기준과 방법, 수수료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비별 또는 장비군별로 민간 시험검사기관을 만들고 이들 기관에 시험검사에 대한 책임 의무를 짓는 방안도 검토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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