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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간 절개수술 중인 서울 미래병원 수술실. 그런데 갑자기 수술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수술실과 중환자실 등 원내 곳곳에서 전기 불이 깜빡거리고, 연료탱크와 발전기 등 병원 시설과 밀접한 기계설비가 자리하고 있는 지하실 천장에는 균열이 생겨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수술을 집도하고 있던 의사 이해성은 팔에 부상을 입었고,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의 흉부에는 수술용 가위가 꽂혀있다.
이는 지난해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방영한 의학드라마 ‘디데이’ 속 한 장면으로, 지진으로 인한 공포와 의료기관의 피해를 극대화했다.
<#장면2> 기상청 지진 관측 이래 최대인 5.8 규모의 지진이 경상북도 경주에서 발생했다. 경주뿐만 아니라 대구, 순천에서도 부상자가 생겼고, 경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병원 응급실은 다치거나 놀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허구가 아닌 실제 사건이다. 지난 9월 12일 발생한 지진으로 경상북도와 경주시는 피해액이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다행히 사망자나 중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어지러움과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등 지진에 대한 불안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지역 거점병원으로 기능하고 있는 국립대병원 절반 가까이가 내진 설계 기준 미달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정 규모의 건축물은 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 설계를 하도록 돼 있다. 내진설계를 적용할 때는 한반도에서 2400년동안 한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큰 지진을 건축물이 견딜 수 있도록 지진 하중을 산출해야 한다.
국립대병원 건물 절반 지진나면 ‘위험’
보통 한반도에서 2400년 만에 한번 발생하는 지진을 리히터 규모로 환산하면 대략 6.0~7.0 사이로 판단된다.
하지만 실제 의료기관을 비롯한 국내 건축물의 내진 설계 적용이 미흡한 실정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받은 ‘전국 국립대학병원 내진보강 대상건물 등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전국 13개 국립대병원 가운데 내진 설계 적용 대상이 아닌 치과병원 3개소를 제외한 10개소 72개 건물 중 33개 건물의 내진설계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건물 중 절반에 가까운 45.2%가 내진설계 기준 미달인 셈이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총 13개 건물 중 9곳이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는 등 내진 설계율이 30.8%에 그쳐 국립대병원 중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전남대병원도 11개 건물 중 7개가 내진설계 적용이 안 돼있어 지진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대병원은 21개 건물 중 10곳이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아 국립대병원 중 내진보강이 필요한 건물 수가 가장 많았다.
앞서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는 종합병원·병원·요양병원 등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3170개소 중 866개소(27.3%)의 내진설계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의 내진실태 정기점검을 통해 보강이 필요하다고 판정받은 곳은 883개소였으나, 그 중 2015년 현재 내진보강을 시행한 건물은 17개소에 불과해 1.9%의 보강률을 보였다.
지진·화산재해대책법 제14조에 따르면 의료법에 따른 종합병원·병원 및 요양병원은 내진설계를 의무화해야 한다. 하지만 노후한 건물들의 경우 내진설계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지진 관측 이래 최대 규모였던 경주 지진을 통해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모든 국민이 체감하고 불안감에 휩싸였다”며 “정부는 병원 등 주요 다중이용 시설에 대한 내진설계를 강화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의료기관, 내진설계 보강 등 개선안 마련 분주
이처럼 문제가 지적된 일부 병원들은 대안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A 국립대병원은 “내년도 예산을 마련해 오래된 건물에 한해 내진 성능평가를 하는 계획”이라고 답했다.
B국립대병원은 내진설계 보강을 위한 TF팀을 구성해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A병원 관계자는 “병원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1988년 내진 설계 적용 기준이 마련되기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비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가 지적된 만큼 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선 대책으로 내년도 예산을 마련해 내진 성능 평가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B병원 관계자는 “병원 역사가 50년을 넘다보니 문제가 지적된 건물이 많았던 것이고, 최근 건물들은 모두 규정에 맞게 지었다. 이와 관련 TFT를 구성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개선책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의료기관에 대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지진공학회 김태진 부회장은 “1년 반 전(前) 미국 현장 견학을 갔다가 스탠포드대학 부속병원 병동 확장 건설도 참관했는데, 그 건물의 내진 목표가 ‘강진이 왔을 때도 수술이 진행될 수 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병원의 중요성 때문에 의료기관, 특히 거점 병원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다.
병원 설계의 경우 일반 관청이 아닌 의료기관 설계를 담당하는 병원 조달청에서 성능 목표를 설정하고 병원 기능 유지 여부를 꼼꼼히 평가하며 일정 등급을 받지 못하면 건물을 폐쇄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국내는 1988년 내진 설계 의무화 적용 이전 건축물에 대한 대책이 미비한 실정이다. 게다가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역 거점 의료기관으로의 기능을 계속 할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간과된 채 주요 종합병원의 내진 설계 목표 등에 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이라면, ‘지진 발생 시 건물이 붕괴돼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정도’의 일반적인 설계 기준이 아니라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등의 기능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김태진 부회장은 “내진설계가 돼있는 일반 건물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사람이 탁자 밑에 잠깐 들어가 몸을 대피하면 되지만, 종합병원은 얘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내진설계가 돼있는 병원이라면 일반 건물보다 하중을 1.5배 키워 구조를 더 튼튼하게 설계하고 있으나 이는 단순히 구조체 손상, 즉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정도의 접근일 뿐 ‘의료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할지’에 대한 검토가 반영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주 큰 강진이 발생했을 경우 벽 일부가 손상되거나, 전기, 물이 제대로 공급이 안되는 기능적임 문제가 겹칠 수 있다. 강한 진동으로 수술장비나 시설에 문제가 생기는 등 병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지역 거점병원으로서의 종합병원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구조체가 튼튼한 것 뿐 만 아니라 실제 기능 유지와 세밀한 안전 확보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당장 보강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선 지역 거점 병원 역할을 하는 의료기관 건물의 내진 설계 능력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내진 설계가 안 돼있다고 해서 내진 성능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내 몸이 어떤지 알려면 진단 및 평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 최대 지진이 발생했을 때 병원 시설이 어떤 상태가 될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며 “그동안 병원 시설에 대한 진단이 육안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CT와 MRI를 통해 보다 정밀진단을 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불어 ‘내진능력표시제’를 통해 실제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인하는 안(案)도 제시됐다. 이는 현재 국토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김태진 부회장은 “동기부여 없이는 실제 개선이 이뤄지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병원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할 정도로 내진 설계가 잘 돼있는 병원에 대해서는 최고 등급을 주고, 이로써 안전에 대해 제대로 대비하는 병원에 환자들이 더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양내원 회장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협업하는 게 건축의 진행과정이다. 건축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여러 의견을 반영해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내진 설계 보강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지질 전문가들 의견에 따르는 것이 맞다. 지질 전문가들 의견에 따라 건축물 구조 전문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한편, 현재 미흡한 내진 설계 실태는 의료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1988년부터 내진 설계가 적용돼왔는데, 작년 12월 기준 현재 건축법상 내진 설계를 해야 하는 건축물 143만9549동 가운데 47만5335동만 이뤄져 내진율이 33%에 불과하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지난 6월 건축구조와 내진설계 분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이 제한됐고 △내진설계가 의무화된 1988년 이전에 건축물에 대한 대책이 없고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이 내진설계를 검토하는 측면 △내진설계·보강 시 별다른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다는 것 등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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