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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논의 지지부진 '국립트라우마센터' 운명은
“트라우마 치료 총괄하는 콘트롤타워 필요” 요구에 복지부는 “검토만”
[ 2016년 11월 04일 05시 40분 ]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2년 하고도 6개월이 다 돼 간다. 세월호 사고는 보건의료계에도 많은 숙제를 남겼다. 그 중 하나가 국립트라우마센터 설립에 대한 논의에 불씨를 당긴 것이다.

트라우마(Trauma)는 내부나 외부에서 강력한 자극을 받아 정신 기구가 갑자기 붕괴되거나 고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국가적 재난 상황을 겪은 피해자들이 사고 이후에도 정신적 충격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그 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직후 국회는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하는 내용의 법안을 앞 다퉈 발의했다. 총 4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19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3달이 지났지만 국립트라우마센터 설립에 대한 관심은 예전만 못 한 상황이다. 비록 설립 논의가 지지부진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계는 여전히 세월호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가 재난사태를 대비해 트라우마 치료를 총괄하는 국립트라우마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은 자에게 여전한 그 이름 ‘트라우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은 사고 2년여가 지난 현재에도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유가족 14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유가족 중 세월호 참사 후 수면문제가 발생한 사람은 101명이었고, 소화문제 81명, 전신피로는 106명에 달했다.

참사 후에 요통이 악화되거나 지속됐다고 밝힌 사람이 24명이었고, 어깨나 목·팔에 통증이 악화되거나 지속됐다는 사람도 18명이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는 사람이 79명으로 56%, 우울이나 절망 등 기분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도 78명으로 55.3%를 차지했고. 자살시도를 한 사람도 6명으로 4.3%였다. 

연구를 수행한 아주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조선미 교수는 “참사 이후 발생한 심리적 문제에 대해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해질 때까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심리지원의 초점은 병에 대한 치료가 아닌 심리상태 정상화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에서 생존한 학생들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가 안산 단원고 학생 생존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인터뷰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단원고 생존학생은 성급한 치료시도와 힐링 프로그램 등으로 지쳐있었고 학교 복귀 후에도 학업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 ‘단원고 특별전형’ 등으로 낙인이 찍혔다고 느끼는 상태였다.

또한, 생존자 가족도 버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연구자인 김승섭 교수는 “이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재난으로부터 심리사회적으로 회복되는 과정은 장기적 시간이 필요하며, 지원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 및 전문가와 지속적으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승섭 교수는 “생존학생의 가족도 학생들과 비슷한 우울증이나 수면장애와 같은 신체적, 정신적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는 참사에 의한 충격 뿐 아니라 트라우마로 인해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극심한 소진을 겪었기 때문으로 나타났다”며 “단기적이고 압축적인 치료가 아닌 트라우마의 사회적 치유를 위한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고 이후 유가족과 생존자 및 생존자 가족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온 정신건강의학계도 국가 주도의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며, 그 방식이 국가트라우마센터 설립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한정신건강재단 채정호 재난정신건강위원장은 “재난 이후 발생하는 우울증 등 다른 문제들은 기존 의료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진료시간이 짧은 국내 의료기관의 특성상 트라우마 치료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치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 위원장은 “사회적 및 국가적인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며, 재난과 관련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인력이 피해자들에게 전문적 치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인력도 양성하면서, 재난 시 초기에 대응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안산온마음센터의 경우, 세월호 생존자 및 유가족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유지되고 있지만 대부분 계약직인데 이러한 형태로는 재난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심리지원이 이뤄질 수 없고, 결국 고용안정까지 이룰 수 있는 국가운영의 센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채 위원장은 “안산온마음센터 인력들과 세월호 유가족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안산온마음센터의 인력 대부분이 계약직이다. 현재 세월호만 담당하고 있는 것도 어려운 상황으로 국립트라우마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연구까지 담당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며 “결국은 정부가 국비로 진행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하느냐 국민안전처가 하느냐 논란이 되고 있는데, 어디든 국가 차원에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안산트라우마센터(現 안산온마음센터)장과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을 지낸 서울의대 정신과학교실 하규섭 주임교수도 “국립트라우마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봤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치료 제공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인 재난 대비 전문인력 양성과 관련 연구를 위해서라도 국립트라우마센터가 설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규섭 교수는 “미국은 전쟁으로 인해 오랜기간 트라우마 연구를 해왔지만 한국은 최근에 시작됐고, 전문적인 연구자나 치료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치료 외에도 교육, 연구 등 전문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트라우마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전문적이고 확대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새로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하는 것보다 국립서울병원에서 개편된 국립정신건강센터를 트라우마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 교수는 “트라우마센터는 위로만의 목적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한 지역마다 설치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국립센터를 설립하는 것이 의미 있을 수 있다”며 “복지부가 설립한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政 “재난심리지원체계 필요성 공감, 방법은 고민”

20대 국회가 금년 6월 개원했지만 국립트라우마센터에 대한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 국립트라우마센터로 재편 움직임이 있던 안산온마음센터(안산트라우마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도 줄고 있다.

안산시에 따르면, 지난 2014년까지는 온마음센터 운영비 40억원이 전액 국비로 지원됐지만, 이후 정부가 절반만 지원하기로 해 현재는 보건복지부가 20억원, 경기도가 2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재난사고 피해 유가족이나 생존자에 대한 심리지원체계 구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방법론적인 측면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재난심리지원 관련한 조직이 미흡하게나마 있고 안산온마음센터에서도 관련 인력을 교육하고 있다”며 현재도 재난심리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적인 재난심리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은 정부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방법론은 복지부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승원기자 origin@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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