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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병원들이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해 ‘미래형 병원’으로 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맞춤형 암 치료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됐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병원 서비스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인프라 투자까지 이뤄진다면 국내 병원이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의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ICT 접목 치료 정확도‧환자 만족도 제고
ICT를 빼고 병원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가천대 길병원은 이달 중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 기반 암 치료 서비스의 닻을 올린다. 병원 응급의료센터 옆 舊(구) 삼성화재 건물을 매입하고 ‘인공지능 암병원’을 운영할 채비를 갖췄다.
길병원은 유방암, 폐암, 대장암, 직장암 및 위암 치료에 ‘왓슨 포 온콜로지를 적용할 예정이다. 왓슨 포 온콜로지는 미국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MSKCC)에서 2012년부터 트레이닝을 받았다. 300개 이상의 의학 학술지, 200개 이상의 의학 교과서를 포함한 15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의료정보와 치료 가이드라인, MSKCC 전문가들의 노하우 등을 학습했다.
환자 정보, 검사 결과 등을 입력하면 20초 만에 축적된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 선택 가능한 다양한 치료법을 내 놓는다. 어떤 근거에 따라 각 치료법을 제시했는지도 투명하게 보여주고, 각 치료법의 신뢰도 역시 점수를 매겨 제공된다.
모바일을 활용한 병원 서비스 혁신도 이뤄지고 있다. 한양대병원은 최근 스마트병원 시스템인 ‘엠케어’를 도입해 진료 프로세스를 효율화했다. 환자는 본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병원 전용 엠케어 앱이 제공하는 ‘스마트 에스코트’ 서비스를 받는다. 앱과 연동돼 필요한 정보를 위치 기반으로 자동 제공하는 근거리 무선통신장치 ‘비콘’ 400개가 병원 곳곳에 설치된 덕분이다.
동선에 따라 제공되는 맞춤형 정보에 따라 예약 내역을 확인하고, 창구 앞에서 대기할 필요 없이 모바일 번호표를 발급 받아 진료비를 수납한다. 복잡한 병원에서 길을 잃을 필요도 없다. 길 찾기 기능을 이용해 진료실 위치를 검색해 찾아갈 수 있다. 진료가 끝나면 검사 결과와 처방 내역도 조회 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진료비 결제와 다음 진료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서면 등록된 차량번호로 주차비가 자동 정산된다.
향후 전자처방전을 인근 약국에 전송해 모바일 결제를 한 후 바로 약을 찾아가고,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도 가능해진다. 데이터뱅크시스템즈가 개발한 이 스마트병원 시스템은 부산대학교병원과 경북대학교병원에도 구축됐다. 올해 내 한양대학교구리병원과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칠곡경북대학교병원도 스마트병원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건강관리도 이뤄지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은 최근 디지털헬스케어 스타트업 휴레이포지티브이 개발한 당뇨병 환자관리 앱 ‘S 진료노트’를 도입했다. 주치의가 제시한 관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혈당, 콜레스테롤, 혈압 등 수치를 입력하면 ‘정상’ ‘주의’ 등으로 결과를 알려주고 최근 3년 간 검사결과를 그래프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2010년 국내 최초의 개인건강기록(PHR) 앱 ‘내 손안의 차트’를 개발한 서울아산병원은 올해 초 만성질환관리 기능을 추가한 2.0 버전을 선보였다. 고혈압‧당뇨‧천식‧아토피 등의 관리에 이용된다. 병원 진료기록과 연동해 환자 스스로 건강 지표를 관리할 수 있도록 혈압, 혈당, 체질량지수, 대사증후군 정보와 관리법이 제공된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장기이식 후 면역억제제 복용을 돕는 앱을 개발했다. 복용 시간을 자동으로 알리고, 복용률을 자동으로 계산해 환자가 원하는 기간의 결과를 통계로 보여준다. 병원에서 실시한 혈액검사 추이도 확인 가능하다. 억제제 복용 방법과 식사요법에 관한 교육도 이뤄진다.
“개별 의료기관 데이터 공유 가능 인프라 구축 시급”
병원들의 ICT 기반의 혁신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적잖다. 완벽한 디지털헬스케어 환경 구현을 위한 정보 공유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있지 않은 탓이다.
맞춤형의료가 가능하려면 여러 기관에 흩어진 정보를 하나로 모아 의미 있는 데이터를 창출해야 하는데 각 병원에 구축된 EMR(전자의무기록)부터가 데이터 공유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분당서울대병원 EMR만 유일하게 정보 교류가 가능한 실정이다.
대한의료정보학회 백롱민 회장(분당서울대병원)은 “국내 EMR 도입률은 92.1%지만 이 중 실제 데이터 공유, 호환이 가능한 것은 4%에 불과하다”며 “보험수가 청구용 EMR에서 데이터 공유 가능한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이에 대한 정부 투자가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진료정보 교류가 이뤄지지 않으면 빅데이터 활용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반의 CDSS(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가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데이터가 적어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의료정보학회 조경희 조직위원장(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은 “인공지능은 표준화된 정제된 데이터를 통합해 분석해야 하는데 분리돼 있으니 활용하기 어렵다. EHR(전자건강기록)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데이터가 엮여야 인공지능을 통한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더 이상 투자자 지연되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인프라 구축이 지연되면 세계 최고 ICT 기술을 가지고도 치열해지고 있는 의료‧ICT 패권 경쟁에서 뒤쳐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한의료정보학회 최진욱 이사장(서울대병원)은 “중국은 의료정보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관련 산업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이제는 국가 차원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며 “개별기관이 데이터 공유 인프라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공유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제반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능적인 정보 교류뿐만 아니라 이제는 ‘데이터 거버넌스’ 확립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시스템바이오정보의학 국가핵심연구센터 김주한 소장(서울대병원)은 “각 조직마다 데이터 활용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데이터를 기능적으로 연결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데이터 거버넌스를 정립해 환자, 의료계, 산업, 정부 간 갈등구조를 조율해야 실질적인 정보 교류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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