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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120명 정도밖에 없는 유전 희귀질환 파브리병(Fabry disease). 이 질환은 우리 몸속 세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 중 하나인 당지질의 선천성 대사이상으로 여러 증세를 일으키는 유전병이다.
당지질은 우리 몸의 대사 과정에 관여하는 ‘알파-갈락토시다제(alpha-galactosidase) A’라는 효소에 의해 분해·배출된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이 효소가 부족하면 분해돼야 할 당지질이 그대로 세포 안에 축적돼 대사이상이 일어난다.
파브리병은 치료제와 검사법이 있지만 조기 진단 사례가 많지 않아 어려운 질환으로 꼽힌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파브리병의 권위자 스위스 제네바대학교병원 심장내과 및 전기생리학과 메디 남다르(Mehdi Namdar, MD, PhD) 교수[사진]에게 파브리병에 대해 들어봤다.
Q. 이번 방한 목적은
한국에서 열리는 학술대회 및 강연 참석차 오게 됐다. 한국에 있으면서 여러 전문의들과 만날 예정이며 주로 파브리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법, 파브리병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심장질환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Q. 희귀질환인 파브리병 연구 시작 계기는
파브리병이 희귀질환이다 보니 질환을 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보통 희귀질환이라고 하면 유전질환인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유전질환은 지역에 따라 발병률에 차이가 있고,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환자가 많이 몰려있는 경우가 많다.
스위스는 작은 나라지만 몇몇 지역에서 파브리병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나는 스위스 취리히 의과대학에서 심장내과를 전공했다. 취리히에는 파브리병 등 휘귀질환을 치료하는 센터가 있는데, Fellowship을 하면서 처음으로 파브리병 환자를 접했다. 파브리병 환자들은 치료를 받고 난 뒤 심전도 검사를 했을 때 상태가 상당히 호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부터 심전도나 전기생리학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파브리병 환자들이 치료 후 심장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보고 이 질환에 관심을 갖게 됐다.
Q. 파브리병 발현을 야기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나
현재 ‘특정한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핵산들이 어디에 있다, 즉 영향을 주는 유전자의 DNA가 어디에 있다’는 정도까지 파악하고 있다. 신체가 필요로 하는 효소의 결핍을 초래하는 돌연변이가 어떤 부분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 등을 알고 있고, 이에 관련된 GLA유전자를 파악한 상태다.
파브리병과 같은 표현형의 문제를 발생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만 벌써 900~1000개 가까이 파악되고 있지만 이러한 유전변이들이 100% 파브리병을 일으킨다는 공식 같은 것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
Q. 파브리병은 유전질환인데 자녀에게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나
파브리병은 유전적 요인과 관련된 질환이다 보니 가족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가족력을 기반으로 자녀가 파브리병의 원인 유전변이를 갖고 태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추정해볼 수 있다. 파브리병은 X염색체와 관련된 질환이다. 여성은 XX염색체 중 하나에 원인 유전변이가 있을 수 있다. 엄마가 파브리병 원인 유전변이를 갖고 있을 경우, 자녀는 성별과 관계없이 유전변이를 물려받을 확률은 50%다.
아빠가 원인 유전변이를 가지고 있을 경우, XY염색체 중 X염색체 쪽에 문제가 있어 딸만 100%의 확률로 유전변이를 물려받게 된다. 이 경우, 아들은 물려받지 않는다. 이처럼, 파브리병은 가족력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Q. 요즘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유전질환 혹은 선천성 질환에 대한 검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스위스의 경우는 어떠한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스위스는 신생아에 대한 선별검사나 스크리닝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여기에는 여러 보건의료 정책 및 시스템에 관한 문제가 얽혀있다.
아시아 국가 중 대만이 신생아 스크리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다른 국가에서도 이러한 신생아 스크리닝이 활발히 이뤄졌으면 한다. 신생아 스크리닝과 더불어 파브리병 환자의 가족들에 대한 조기 진단과 치료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어릴 때 치료 시작하는 경우와 성인이 된 후 시작하는 경우 예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진단 및 치료 시작 시기는 파브리병 치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파브리병은 진행성 질환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장기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신장, 심장, 뇌 등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데, 남성과 여성의 진행 양상에 다소 차이가 있다.
Q. 남성환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남성 환자의 경우, 심장을 예로 들면 보통 20~25세에 증상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병을 앓으면서 두 번 정도 진행 양상에 정점을 찍게 된다. 첫 번째 정점은 40세 전후로, 이 때부터 질환의 진행 속도가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두 번째 정점은 50세 전후로 심장에 변화가 생기는데, 특히 심근이 섬유화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파브리병 남성 환자는 40대 즈음이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치료를 전혀 받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치료 효과를 제고시키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40대 이전인 25~30세에 치료를 시작한다면 심장 비대증을 미리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Q. 여성환자는
여성 파브리병 환자의 경우, 과거에 여성은 두 개의 X염색채를 가지고 있고 원인 유전변이가 하나의 X염색체에 있기 때문에, 나머지 염색체가 이를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돼 왔다. 그러나, X염색체 하나가 원인 유전변이라면 다른 염색체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여성 환자는 남성 환자와 마찬가지로 심근이 섬유화되는 증상이 나타나지만 남성보다 증상이 발현되는 시기가 조금 늦을 뿐이다. 여성환자도 마찬가지로 치료가 빠를수록 치료 효과 및 예후가 좋다.
Q. 파브리병 치료법은 있나
가장 중요하면서도 일차적으로 행해지는 치료법은 바로 ERT(Enzyme Replacement Therapy)라고 불리는 ‘효소대체요법’이다. 효소대체요법(ERT)은 장기간의 다양한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효과와 안전성이 확립된 치료법이다. 물론 효소대체요법(ERT)과 더불어 심장질환과 관련된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관상동맥질환 등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 하지만 효소대체요법(ERT)이 적절한 시기에 시작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이러한 위험요소에 대처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파브리병 환자는 기본적으로 효소대체요법(ERT) 치료를 받아야 하며, 효소대체요법(ERT)은 파브리병 환자의 사망률 감소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Q. 파브리병 합병증을 치료할 때 쓰는 약물 중 효소대체요법과 병용투여가 어려운 경우는
합병증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간혹 효소대체요법(ERT)과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약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파브리병 환자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두통이나 신경병증성 통증의 경우, 관련 치료제들은 효소대체요법(ERT)과 약물 상호작용을 우려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부정맥과 같은 심장질환의 경우, 다양한 약물 포트폴리오 중 효소대체요법(ERT)과 상호작용이 우려되는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효소대체요법(ERT) 원리는 구체적인 하나의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체내에 결핍된 효소를 투여해 세포 관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진료 경험상 효소대체요법(ERT)이 특정 합병증을 치료하는 데 쓰는 약물과 심각한 상호작용을 일으켜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는 없었다.
Q. 최근 생물학적 지표(biomarker)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파브리병에서도 활용되는 지표가 있는지
심장내과 전문의이다 보니 심장과 관련된 생물학적 지표를 3~4개 가량 떠올릴 수 있다. 그 중 중요한 지표가 GL-3(globotriaosylceramide)라고 불리는 효소 결핍으로 세포 안에 쌓이는 당지질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지표는 Lyso GL-3(globotriaosylsphingosine)라 불리는 물질이다. 최근 수년간 ‘혈장과 소변에 Lyso GL-3가 얼마나 축적이 되며, 치료를 했을 때 양이 얼마나 줄어드는가’ 하는 사안이 매우 중요한 지표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Lyso GL-3은 파브리병의 예후 및 중증도와 연관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심장 관련 생물학적 지표로 BNP (Brain Natriuretic Peptide)가 있다. BNP는 심부전과 같은 심장 이상 증상을 파악하기 위해 기존에 쓰이던 생물학적 지표다. 트로포닌(Troponin)은 심근세포 안에 들어있는 물질로, 심근세포가 파괴되거나 죽으면 심근세포 밖으로 흘러 나오기 때문에 심장 관련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파브리병에서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지표는 Lyso GL-3, GL-3라고 할 수 있다.
Q. 효소대체요법과 대증요법 외에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치료법은
의료기기를 활용한 치료가 있을 수 있다. 파브리병을 앓고 있으면서 심장 관련 문제가 발생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제세동기, 심박동 조절기 등의 기기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치료법은 기존 심장질환 환자에게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새로운 치료법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파브리병 환자들도 이러한 치료를 필요로 하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파브리병 환자들 중 신장 문제가 있는 경우, 신장 이식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고 심장 문제도 심장 이식이 하나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새로운 치료법으로 샤프론(chaperone)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치료법은 유전자 조절(Genetic Modulation)을 기전으로 삼고 있는데, 치료 효과도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 확인이 되려면 적어도 5~7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샤프론 치료법이 도입돼도, 효소대체요법(ERT)를 진행하면서 병행할 수 있는 보조요법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한다.
Q.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현재 부정맥에 관한 주제로 스위스 국립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는 파브리병 환자들에게 심전도 측면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목숨을 위협하는 부정맥이 왜 발생하는지 그 기전을 알고자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부정맥과 뇌졸중은 파브리병 환자의 사망위험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합병증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심혈관계, 즉 심장 관련 문제는 생명과 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GL-3가 축적되는 기전을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분야에서 사용했던 방법과 유사한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파브리병은 대사체가 쌓이면서 2차적인 합병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샤프론 치료와 같은 유전자 단위의 접근보다는 대사체를 처리함으로써 다음 단계 증상의 발현을 막아주는 치료법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분야에서도 그랬듯이 관련 접근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유망한 치료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