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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의사의 술기와 명성은 늘 함께였다. 모름지기 세간에 회자되는 명의(名醫)는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최근 조금은 다른 의미의 명의들이 늘고 있다. ‘유명세’는 동일하나 ‘모양새’는 다르다. 사회적으로 굵직한 사건과 현안에 거론되는 의사들 얘기다. 의학적 소견과 판단이 사건의 핵심인 경우 의사에 대한 관심도는 폭증 수준이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을 받은 의사들의 명암은 엇갈렸다. 남다른 의협심과 숭고한 희생으로 칭송을 받은 인물도 있었던 반면 비양심적 행보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의사들도 있었다. 그만큼 사회현상과 의료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얘기다. 의사들에게는 ‘판단’과 ‘책임’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진료실 밖에 전해진 묵직한 울림]
‘세계인의 주치의’ 이종욱 :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우리가 바로 그 누군가입니다”
故 이종욱 박사가 남긴 이 어록에는 건강한 인류를 향한 그의 의지와 집념이 농축돼 있다. 실제 그는 생전 지구촌 보건 문제 해결에 혼신을 다하며 ‘이 시대의 슈바이처’로 추앙받았다.
이종욱 前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이 된 인물로,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질병관리국장, 백신면역국장을 거쳐 2003년 제6대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소아마비 발생률을 낮추고, AIDS 환자 300만 명에게 2005년까지 항AIDS 바이러스를 공급하는 ‘3by5’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감염성 질병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밤새워 준비했던 2006년 세계보건총회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보편적 접근법이 다뤄질 예정이었으나 세계보건총회를 하루 앞두고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바보의사’ 장기려 : “의사를 못보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故 장기려 박사는 서울의대 전신인 경성의전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부와 명예가 보장된 길을 마다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좁고 낮은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빈민촌을 돌며 무료로 진료했고, 6.25 전쟁 당시에는 피난민과 질병으로 죽어가던 환자들을 위해 부산에 천막을 치고 진료소를 운영했다.
국내 최초로 간 대량절제술에 성공한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였지만 평생 병원 옥탑방에서 지내며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바보의사’라 불렀고, 그런 질타에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라도 되받았다.
‘울지마 톤즈’ 이태석 :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사 대신 성직자의 길을 택했던 故 이태석 신부. 그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9년 동안 헌신의 삶을 살았다.
이태석 신부는 그곳에서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멀리 사는 주민들을 위해서는 오지마을을 직접 찾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내전의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는 톤즈를 위해 바쳤고, 숭고한 사랑과 나눔을 몸소 실천했지만 2010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고귀한 희생은 ‘울지 마 톤즈’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그 사랑으로 인한 치유와 감동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골든타임’ 이국종 : “죽는 날 관 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동안 치료한 환자의 명부다”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 쥬얼리호. 석해균 선장은 선원 구출작전 과정에서 여러 군데 총상을 입어 생명이 위태로웠다.
당시 석 선장을 살리기 위해 한국으로의 신속한 이송이 절실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를 원망했다.
모두가 비관만 하고 있던 그 때 에어 앰뷸런스(Air Ambulance)가 현지로 급파됐다. 이 비행기에는 대한민국 외상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아주대학교병원)가 타고 있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건 바로 이국종 교수였다.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사비를 털어서라도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갔다.
이후 중증외상의 중요성에 인식이 확산됐고, 전국에 권역외상센터가 잇따라 설립되는 등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냈다.
[달갑잖은 유명세로 곤욕]
‘사망진단서’ 백선하 : “주치에게 부여된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병원 진료과장. 관련 분야에서 명의(名醫)로도 알려진 그의 인생은 ‘병사(病死)’라는 두 글자로 휘청거렸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는 시위 도중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후 1년 간의 투병 끝에 사망한 故 백남기 씨의 사망원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록해 논란을 일으켰다.
여론이 악화되자 서울대병원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을 조사했지만 “주치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놔 거센 반발을 받았다.
결국 병원은 “백선하 교수가 사망진단서를 잘못 발급해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켰다”며 진료과장에서 보직해임했다. 다만 평교수 신분으로 진료는 계속 이어가고 있다.
‘신해철 주치의’ 강세훈 : “수술 필요성 판단은 의사의 재량이다”
연예인들이 찾을 만큼 잘 나가는 의사였다. 하지만 순간의 판단은 엄청난 후폭풍을 동반했다. 그를 향한 주변의 부러움은 순식간에 비난으로 변해 있었다.
강세훈 원장은 지난 2014년 10월 신해철 씨의 위장관유착박리술과 위 축소 수술을 집도했다가 심낭 천공을 유발해 신 씨를 사망하게 만든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감정결과를 토대로 수술과 치료과정에서 강 원장의 업무상 과실치사가 인정된다며 징역 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은 과실책임과 사망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실형은 지나치게 무겁다고 판단,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강 원장 모두 즉각 항소했다.
‘대리처방’ 김상만 : “최순실 자매는 주사제에 중독된 사람들이었다”
김상만 前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은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 의료게이트’의 중심 인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리처방’의 진원지도 그였다.
차움의원 근무 시절 최순실-순득 자매의 진료를 전담했던 김상만 원장은 청와대 공식 의료체계를 무력화한 비선진료의 당사자로 지목됐다.
정맥주사를 이용한 만성피로 치료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정해진 절차를 어기고 박 대통령을 진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세상이 그의 입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태반주사, 감초주사 등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영양주사를 외부에서 반입해 박 대통령에게 투여했고, 이 과정에서 불법 대리처방을 한 정황이 드러 나고 있다.
‘최순실 성형외과’ 김영재 : “세월호 참사 당일 골프쳤습니다”
김상만 원장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의료게이트’로 세상에 알려진 의사가 바로 김영재 원장이다. 비선실세 최순실이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순실 성형외과’라는 별칭도 생겼다.
문제는 단순한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넘어 각종 특혜 의혹에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재 원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36회에 걸쳐 최순실을 진료했다. 거의 일주일에 한 차례씩은 만난 셈이다.
이 기간 동안 김영재 원장의 가족기업인 존제이콥스와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은 박 대통령 해외순방 경제사절단에 3번이나 선정됐다.
특히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외래교수 위촉을 놓고 대통령 주치의 출신인 서창석 병원장과의 연루설이 제기되는 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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