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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최전선인 병원에는 수 많은 의료장비와 의약품이 사용된다. 각종 검사장비는 물론 치료를 위해 동원되는 주사제와 약물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와 수는 실로 방대하다. 진단과 술기는 오롯이 의료진의 몫이지만 이 과정에 필요한 장비와 재료 역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MRI나 CT 등 일반인들도 인지하는 의료장비와는 달리 입원부터 퇴원까지 환자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의료소모품에 대한 인지도는 희박한 수준이다. 심지어 의료진조차 의료소모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임상현장에서 두드러진 존재감은 없지만 ‘품질’이라는 뚝심으로 묵묵히 의료진 의술을 조력하는 그의 노력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러한 배경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세월 그래왔듯 앞으로도 ‘최고’의 제품에 대한 고집을 내려 놓을 생각이 없다. 강원도 원주 현지 생산공장에서 만난 모우메디칼 이상순 대표의 첫인상은 의심의 여지없는 ‘자부심’이었다.
이상순 대표는 무려 45년이 넘는 세월을 의료 분야에 종사했다. 6‧25전쟁 직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인근 미군부대에서 각종 의료장비들을 구입해 팔던 게 평생직업이 됐다.
당시만 해도 열악하기 그지없던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수술용 메스 하나 구하기도 어려웠다. 수요 대비 의료용품 조달이 힘들었던 만큼 제품만 구하면 판로는 걱정이 없었다.
시장 상황을 간파한 그는 서울 종로3가에 의료소모품 도소매업을 시작했다. 물론 국내에서는 제품을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만큼 전량 수입품에 의존했다.
그의 혜안을 적중했다. 국내 임상현장에서는 의료소모품 수요가 폭발적이었고, 주요 품목들의 수입권을 갖고 있던 그에게 주문이 집중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였을까. 잘 나가던 그에게 크나 큰 시련이 닥쳤다. 제품을 공급하던 미국회사로부터 갑작스레 계약불가 통보를 받았다.
부랴부랴 상황을 파악해 보니 국내 경쟁업체가 미국 본사를 회유해 더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길로 미국 샌디에이고로 날아갔다.
본사를 찾아 울분을 토했다. 미안했던지 미국 본사에서는 경쟁업체와 수입물량의 절반씩을 나눠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상순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약소국의 서러움을 절감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의료소모품 국산화’라는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당시 국산 제품을 생산하던 몇몇 업체들이 있었지만 ‘Made in USA’의 시장 장악력 앞에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그는 스스로 험로(險路)를 선택한 셈이었다. 특히 ‘유통’에서 ‘생산’으로의 완전한 사업 궤도 전환은 위험한 모험에 가까웠다.
“서러움과 억울함에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결국 우리 제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용솟음치더라구요. 어려움을 각오하고 국산화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최고’ 고집하는 신념의 소유자
예상대로 국산화의 길은 험난했다. 제품을 만들어 병원을 찾았지만 문전박대가 일쑤였다. 의료소모품 사대주의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상순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냉대 앞에서 더욱 이를 악물었다. ‘그냥 수입해서 사용하면 될 제품들을 굳이 생산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아냥은 그의 승부욕을 부채질했다.
시련이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는 ‘품질에 대한 신념은 버리지 말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국산 제품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은 열망이었다.
수입품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품질’은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적어도 ‘국산이 외제를 이길 수 있나’ ‘싼게 비지떡이지’라는 평가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명 ‘모우(MOW)’ 역시 ‘세계적인 기술력’을 지향하는 의미의 ‘Master Of World’다. 이 대표의 신념이 고스란히 투영된 사명이다.
그의 뚝심이 서서히 통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아름아름 입소문이 나면서 제품을 찾는 병원들이 늘기 시작했다. 의료소모품 시장의 국산화가 시작된 셈이다.
의외로 결정적인 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상품’의 개념보다 ‘소모품’이란 인식이 강했던 만큼 당시 대부분의 제품에 포장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한 제품을 지향했던 이상순 대표는 기존에 없었던 완제품 포장을 시작했다. 소모품에도 ‘상품’의 가치를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었다.
병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깔끔한 포장에 사용해 보니 품질까지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현재 모우메디칼이 생산하는 제품만 총 40여 개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응급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수동식인공호흡기’와 ‘네블라이저키트’ 등은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한다.
“그동안 국내 의료기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의료용품들을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해 국산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의료 발전 숨은 조력자
이상순 대표를 만난 날은 증축 중인 공장의 상량식(上樑式)이었다. 기존 시설로는 주문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증축을 결정했다.
실제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의원에 이르기까지 모우메디칼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의료일선에서 절대적인 점유율을 확보 중이다.
이 대표에게 이번 공장 증축은 단순한 생산량 증대 외에 최첨단 시스템 구축이라는 변화의 계기이기도 하다.
‘최고의 품질’을 지향했기에 수작업 중심의 공정을 고집했지만 시대 변화에 순응하기로 어렵사리 마음을 먹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필터주사기’였다. 앰플 파편을 걸러내는 필터주사기 생산공정에 자동화 설비를 처음 도입했던 그는 가능성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변화를 택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품질 염려증’은 여전하다. 이상순 대표가 최근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바로 자동화 설비업체 담당자다. 설비의 완전성 보다 ‘품질유지’를 누차 강조한다.
오는 5월 준공 예정인 공장에는 수동식인공호흡기를 비롯해 △코산소주입관 △산소마스크 △네블라이저키트 등 모우메디칼의 주력 제품 대부분이 자동화 설비를 통해 생산될 예정이다.
이상순 대표는 “첨단시설을 바탕으로 최상의 제품을 생산할 것”이라며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최고 제품으로 고객의 생명을 지켜내는 게 목표이자 사명”이라고 힘줘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