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수법'은 10년 전에도 비슷했다고 표현했다. 자신들의 목표 달성을 위해 '이이제이(以夷制夷)' 방법을 고수한다는 얘기였다. 칼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12월10일, 의사들의 민심은 영하로 떨어진 날씨만큼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서울시청 광장에는 경상북도의사회, 경상남도의사회, 전라남도의사회, 전라북도의사회 등 전국의 의사들이 치켜든 깃발로 펄럭였다. 전국의사총궐기대회에 참석한 3만여(주최측 추산) 의사들은 구호를 외치며 잘못된 보건의료정책을 바로잡아 달라며 호소했다.
광주광역시에서 내과 의원을 운영 중인 A원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건강보험 재정에만 혈안이 돼 불법적인 것도 눈감고 있다”며 “오죽했으면 영하의 날씨에 전국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겠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A원장은 “X-ray기 등을 갖추지 않은 한의원을 찾기가 이제는 힘들 정도”라면서 “정부가 아무런 제재 없이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애꿎은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수년 전에 발생한 메르스 사태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과거의 일에서도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 성북구에서 내과를 운영 중인 B원장은 “메르스 사태가 발생해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무언가 바뀌지 않겠냐는 한가닥 희망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어떠한가. B원장은 “결국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의료계를, 아니 의사를 더욱 옥죄는 정책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의사 의료기기기 허용에 대한 반감은 그 어느 때보다 극대화된 상황이다.
서울 도봉구에서 소아청소년의원을 운영 중인 C원장은 “정부의 한의사 의료기기 허용 움직임은 언어도단(言語道斷)과 같다”며 “현대의학에서 정의되는 기기 사용을 두고 왜 논란이 돼야 하는 지,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예컨대, 명함 1장을 찍는데 2만원 가량의 비용을 지불한다. 과연 X-ray 1장을 찍는데 우리는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까.
현행 건강보험수가 체계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던진 C원장은 “찍는 행위가 아닌 질병을 ‘읽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 전문가를 이렇게 홀대해서는 안 된다. 정당한 판독료를 산정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순히 배우기만 한다면 모두 사용해도 되는 것이냐"며 “차라리 현대의학의 범주에 있는 약사나 간호사라면 몰라도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은 의사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풀이했다.
만약 한의학의 발전을 위한다면 현행 건강보험체제 하에서 분리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C원장은 “한약을 포함한 한방 행위의 과학적 검증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것이 맞다”며 “정부 역시 한의학을 육성시키겠다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줘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경희대병원 D교수도 “국민 건강은 아랑곳 하지 않는 정부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이 곳에 참석했다”며 “대학병원, 개원가 할 것 없이 의사들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봐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10만 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자녀의 손을 잡고 가족들과 함께 궐기대회를 찾은 의사들도 적지 않았다.
한 의사는 “개업을 한 지 사실 얼마 안 됐다”며 “개업을 하면서 녹록치 않은 환경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지만 의료 정책은 점점 현실과 괴리되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찌된 것인지 의사들의 지적재산권은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냐”며 “결국 근간이 붕괴되다 보니 젊은의사들은 미래를 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상황은 더 악화될 것 같아 불안하기 그지없다”고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