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진료 이어 약 복용 패러다임 바꾼 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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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이어 약 복용 패러다임 바꾼 서울대병원
'식후 30분→식사 직후’ 변경 실시, 응급실 시스템도 전면 개선

[ 2017년 12월 29일 12시 30분 ]

서울대병원이 심층진료에 이어 관행으로 자리 잡은 ‘식후 30분’ 복약지침을 개편했다. 진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 같은 변화는 환자중심의 의술을 펼치고자 하는 의료진들의 노력에서 비롯됐다.

“식사 직후 약 드세요”

서울대병원은 그동안 ‘식후 30분’으로 안내해온 복약 기준을 ‘식사 직후’로 변경했다. ‘식사 후 30분’이라는 처방은 약물에 의한 속 쓰림을 예방하고, 몸속에서 약이 일정한 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러 약을 복용하는 경우 시간에 맞춰 약을 복용하기가 불편하다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환자들이 약을 거르는 경우가 빈번하자,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복약 방식을 변화하는 방안을 검토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의약계가 관행적으로 적용해온 이 복약 기준은 어떠한 역사적, 의학적 근거도 없다”며 “그런데 환자를 치료하다보니 환자들이 자꾸 약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꼭 식후 30분에 먹어야 하느냐고 물어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식전, 식후, 취침 전 등 세 가지로 복용 기준을 분류하지 식후 30분은 없다.

하지만 뿌리 깊게 박힌 식후 30분 복약기준을 바꾸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내과 의사들이 약제부에 관련 내용의 검토를 요청하자, 약제부가 ‘식후 30분’으로 설정돼 있는 모든 약품의 허가사항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윤숙 서울대병원 약제부장은 “의학적 근거가 없는 지침을 지키는 것보다 환자들이 약을 빼먹지 않고 먹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했다”며 “전자의무기록(EMR) 기본용법에 ‘식후 30분’으로 분류된 약 1000개 품목을 하나하나 약사들이 검토했다”고 말했다.

이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약물과 ‘식사’의 상호작용이다. 음식물이 약효를 반감시키거나, 흡수율을 떨어뜨릴 경우엔 복약 방식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복에 먹는 약은 위장에 음식이 없는 상태에서 흡수가 잘 되는 약이기에 기존 방식대로 복용해야 한다. 일부 골다공증 약과 갑상선 약이 해당된다.

식전에 먹는 약은 음식이 들어가기 전에 미리 위장관으로 들어가서 작용을 시작해야 하는 약이다. 탄수화물 분해를 억제하는 당뇨약이 해당한다. 잠자기 전에 먹는 약은 졸리게 하는 성분이 든 것이 많다. 낮에 먹으면 몽롱할 수 있어서 자기 전에 먹는 것이좋다.

즉, 식후 약 복용 기준은 바뀌었으나 식전·취침 전 약의 복약 기준은 종전과 같다.

조윤숙 약제부장은 “식사와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해외 논문이나 약 허가사항을 모두 검토한 결과, 948품목의 약은 ‘식사 직후’ 복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전자의무 기록(EMR) 기본 용법을 ‘식후 30분’에서 ‘식사 직후’로 변경했다” 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에선 이미 2013년부터 일부 당뇨약에 한해 이 같은 복약기준을 시범적으로 적용해왔다.

조영민 교수는 “당뇨를 앓고 있는 노인환자의 경우 약을 잘 먹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먼저 도입해봤다”며 “그 결과 환자들의 복약 순응도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약 섭취가 제때 이뤄지면 치료효과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의료진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 처방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병원 인근의 약국들에 복약 기준 변경 사실을 통보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처방을 내려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중증·난치희귀질환 치료하는 심층진료”

서울대병원은 ‘식후 30분’ 복약 기준 못지않게 환자들의 불만사항이었던 ‘3분 진료’ 문화도 개선 중이다. 의료진도 중증환자를 진료하는데 3분이란 시간은 턱없이 짧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였다. 이에 일부 과에서 3분 진료를 ‘15분 진료’로 늘리는 실험을 시작했다.

지난 8월부터 파일럿 스터디를 진행한 결과, 환자 만족도 상승, 검사비 절감, 회송률 증가 등의 결론이 도출됐다. 이 같은 긍정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울대병원은 12월 4일부터 심층진료 시범사업을 처음 시행한다.

심층진료는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신환이 서울대 병원 진료협력센터를 통해 전화 예약을 하면, 상담 간호사가 심층진료 대상 여부를 판단한다. 병력, 건강 상태 등을 파악한 뒤 대상자로 판단되면 해당 교수를
선택해 예약을 잡는다.

조정숙 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은 “진료를 15분 정도 본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자원이 투여되는 일이기에 적합한 환자를 가려내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환자가 내원하면 대면진료를 진행한 후 검사 및 치료, 처방 약 설명 등의 단계가 이어진다. 물론 진료 과나 교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다. 암 센터의 경우 대면진료 전(前) 예진을 진행하며, 소아과는 진료 시간이 타과보다 길다. 진료 내용도 A교수의 경우 환자의 말을 듣는 데 대다수 시간을 할애하고, B교수는 전공의, 간호사 등 진료팀 5~7명을 모두 환자 진찰에 참여시켰다.

이에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장은 “암 진료는 예진이 필요하고, 소아과 희귀질환의 경우 초진 외에 재진도 심층진료가 필요하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됐다”며 “진료모델이 다양하지만 수가를 정하려면 표준화된 프로토콜이 필요해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심층진료비는 ‘기본수가+가산수가’ 형태로 만들어질 예정이며, 우리와 수가모델이 비슷한 일본 제도를 참고할 계획이다. 권용진 단장은 “현재 15분 진찰은 초진환자에 한해 연 1회 9만4000원을 받고 있으며, 시범사업을 통해 다듬어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심층진료가 정착되면 궁극적으로 ‘의료전달체계 확립’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네의원에서 진료하기 어렵거나, 복합질환을 앓거나, 진단이 안 되는 환자를 보내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한 뒤 다시 회송하기 때문이다.

권 단장은 “일각에선 서울대 병원에서 15분 진료를 하면 환자쏠림현상이 가속화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며 “그래서 환자가 원할 때 심층진료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의료인이 판단, 의뢰할 때만 진행하도록 디자인했다”고 강조했다.

“응급실 대기시간 짧아져”

긴 대기시간으로 악명 높았던 서울대병원 응급실도 확 바뀌 었다. 응급실 복도와 입구를 가득 메우던 간이침대와 휠체어에 앉아 링거를 맞던 환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런 변화가 가능한 데는 지난 9월부터 도입한 ‘응급실 전담 교수 시스템’이 큰 몫을 했다.

‘응급실 전담 교수 시스템’은 응급환자를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가 직접 진료하는 것을 말한다. 종전에는 전공의가 먼저 진료한 뒤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의뢰하고, 타과 협진이 필요한 환자에 대해선 같은 방식으로 협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전문의가 응급실 초진을 맡게 됨에 따라 환자의 진단과 회송의뢰 등과 같은 의사결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신상도 응급의학과장은 “전문의들이 환자를 병동에 입원시킬지 다시 동네의원으로 보낼지 판단하며 교통정리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니 사람으로 가득했던 응급실이 한산해졌다”며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60~70%는 단독 진료가 가능하지만, 나머지는 협진이 필요해 내과·신경과·신경외과·외과 교수 등을 충원해 10월부터 시스템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 도입 두 달 만에 대기시간과 응급실 혼잡도가 눈에 띄게 개선했다. 신상도 과장은 “작년 이맘때 환자 체류시간이 8시간 정도였다면, 지금은 4.5시간 정도 줄었다”며 “12시간 체류 환자는 3% 정도에 불과하며, 24시간 체류 환자도 1%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응급 전담 교수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우여곡절도 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거부하는 것’이다. 중증이 아닌 경증 환자의 경우 응급실에서 동네의원을 갈 것을 지시하지만, 환자들이 입원을 하겠다며 떼를 쓰는 사례가 많다.

신상도 과장은 “처음에는 환자들이 불편을 호소하며 거부하지만, 차분하게 응급실 기준을 설명하면 되돌아간
다”며 “불필요한 검사 비용을 줄이고, 제대로 된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환자 만족도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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