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의료기기를 개발 중이던 A업체는 신제품의 통신 기능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자문을 구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찾았다. 철저한 확인을 위해 담당 직원으로부터 몇 번이나 인허가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얻고 나서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연구에 착수했다. 그러나 제품 개발이 종료되고 나자 해당 직원이 순환 근무로 인해 다른 부서로 이동한 사실을 알게 됐다. 게다가 새로운 담당자는 기기의 통신 기능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결국 A업체는 기존 계획과 전혀 다르게 제품 기능을 수정해서 뒤늦게 시장에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이 그 나라 실정에 맞는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방안을 발전시키고 있는 가운데 국내도 시장 진입을 저해하는 규제를 지속적으로 개선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9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디지털헬스케어 글로벌 전략 포럼에서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연구센터 심우현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사례를 소개하면서 “다양한 규제 이슈로 인해 제품 서비스의 시장화가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빠른 기술 발전에 대응해 규제도 변화돼야 하는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융·복합 기술이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전통적인 규제 체계로는 산업 발전이 더디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의료데이터 보안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 형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심우현 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의료데이터를 분석하지 않는 디지털 의료기기는 규제를 대폭 축소하고, 반면 최근 많이 활용되고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소비자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면 의료기기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는 등 유연성을 높였다.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원격의료 ▲원격건강 ▲모바일 헬스 등 분야별로 정의하고, 특정 디지털 제품이 새로 출시됐을 때 이를 의료기기로 분류하는 방법에 관한 지침을 마련했다.
심 연구원은 “일본에서도 최근 기존 개인정보보호법이 ICT의 급격한 발전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져 개인정보의 비식별화 방법 및 활용에 있어서의 의무를 규정하는 등 규제를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2016년부터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비롯해 전자의무기록 관리 방법이나 의료용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정책적 변화를 도모하는 단계에 있다.
그러나 기존 의료기기와의 규제 형평성이나 과도한 규제로 인한 시장진입 지연, 이분법적인 규제 논리 등은 여전히 해결 과제다.
심 연구원은 “제품을 의료기기·비의료기기 혹은 규제대상·비규제대상 등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보다 관계부처의 자의적인 해석 가능성을 배제함과 동시에 명확한 판단을 제공해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기기임에도 낮은 위해도를 가진 제품은 비규제 대상으로 분류하고, 가정용 건강관리제품이라 하더라도 안전성과 유효성을 충분히 확인하는 등 시장 경쟁력 및 국민 보건 차원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