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지난 2015년부터 3대 국회에 걸쳐 추진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2차례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발로 폐기된 해당 법안은 지난해 의료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국민청원에 힘입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 표발의한 이 법안은 최근 잇따라 병원 내 대리수술 등 불법의료 행위가 드러나며 전국민적 관심사로 등극했다. 이에 여·야가 적극적으로 해당 법안 찬성·반대 의사 등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술실 내 CCTV가 설치되면 의료행위가 소극적이어지고 무분별한 의료 소송이 폭 증할 것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반면 환자단체는 현행 의료법 상 과실입증책임이 환자에게 있어 환자가 자신을 보호할 최소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며 적극 찬성 의사를 밝혔다. 각종 의료사고·불법의료행위 사건 소식에 분노한 국민들도 찬성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들끓는 여론에 여당은 칼을 빼들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의 6월 내 처리를 목표로 강경 추진했다. 지난 6월 23일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이 법안이 상정돼 논의가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수술실 내부 혹은 외부 설치 및 설치 자율화와 의무화 등 세부 사안에 대해 여야가 의견을 좁히지 못해 논의는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 메디가 지난 1년여 간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과 이와 관련한 논란 등의 타임라인을 정리해 봤다.[편집자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7년 째 국회를 떠돌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 2015년 1월 18대 국회에서 최동익 더불 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초 발의했다.
2014년 서울 某성형외과 수술실에서 직원들이 생일파티를 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던 시기였지만 의료계 반발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16년에도 역시 성형외과의원 수술실에서 의료진 방치로 인해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19대 국회에서 이 사실이 재조명됐다.
이에 2019년 5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다시 대표 발의했으나 역시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2020년 7월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는 편도수술 의료사고로 6살 아들을 잃은 아버지 사연이 올라왔다.
그의 아들은 2019년 10월 경남의 한 대학어린이병원에서 편도 제거수술을 받은 후 이상 증상이 나타나더니 2020년 3월 뇌사 판정을 받고 사망했다.
청원인은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누가 수술을 했는지 수술실에 CCTV가 없어 알 수 없다”며 “의료진들은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의료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한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및 의료사고 소송 진행 중인 의료인의 의료업 종사 금지 등에 대한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해당 청원은 마감 전(前) 20만명의 청원 동의를 얻 었다.
다음날인 7월 2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찬반 여론 조사에서 찬성은 73.8%, 반대는 10.9%였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15.3%였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관련 법안은 21대 국회서 재소환 됐다. 지난해 7월 24일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수술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CCTV를 설 치해야 하며 의료인·환자 등 정보 주체 동의가 있는 경우 의료행위 장면을 촬영해 보존해야 한다.
인천·광주 척추전문병원 대리수술 파문 확산
해당 법안 발의 후 의료계·환자단체 등 간 의견 공방이 지속 되던 중 올해 법안에 대한 관심을 더 키운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5월 27일 경찰이 인천 소재 척추전문병원을 압수수색했 다. 금년 2월 행정직원이 불법의료행위를 한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6월 8일에는 광주 某척추전문병원에서 간호조무사가 대리수술을 한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현행 의료법 제 27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시켜서도 안된다. 명백한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6월 28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정책참여 플랫폼 국민생 각함을 통해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해 1만3900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7.9%가 찬성하고 2.1%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기간은 지난 5월 31일부터 2 주간이다.
여론 악화로 의료계 “입구 설치” 제안 등 한발 물러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사안인 만큼 정치권에서도 이에 주목해 여·야 간 신경전이 이어졌다. 여당은 송영길 당대표 등이 통 과 추진 필요성을 언급한 데 이어 다수 의원이 설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6월 14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법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송 대표와 김남국 의원이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입법 촉구 1인 시위 중인 이나금 의료정의 실천연대 대표를 만나 통과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반면 야당은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자율화하고 수술실 입 구에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6월 11일 국민의힘 대표에 선출된 이준석 대표는 해당 사안과 관련해서 “아직 논의가 미성숙하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러한 정치권의 움직임에 해당법안 발의 후부터 꾸준히 반대 의사를 표명해온 대한의사협회(의협)를 포함한 의료계는 각종 성명서를 내며 “무작정 법안을 통과시키킬 게 아니라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의료계 측 반대주장 근거는 △논란된 대리수술 건수 확대해석 △실효성 없음 (어린이집 CCTV 설치 후에도 원내 아동 폭행 증가 추세 언급) △해킹 등으로 환자 사생활 노출 △의료진 심리적 위축으로 인한 소극적 진료행위 △사고 위험성이 높은 수술 거부 △의료사고 소송 폭증 △의료사고 위험 높은 진료과의 필수의료 공백 증가 등이다.
김종민 의협 보험이사는 5월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심사소위원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2013년부터 2018년까 지 68개월 동안 112건의 대리수술만 발생했고 발생률은 연간 평균 수술 건수인 200만건 중 0.001% 수준이다”며 “보편적이지 않은 의료 범죄를 두고 법제화를 논의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6월 18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도 성명서를 내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의료행위 왜곡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환자와 근로자 인권을 침해한다”고 일갈했다.
같은 날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성명서를 통해 “전공의와 의대생 들이 분만 과정 참여를 거부당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의학교육 현실이다”며 “수술실 CCTV는 전공의들의 수술 참여 자체 를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추가적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해당 법안의 대안을 놓고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수술실 장비 블랙박스 도입·설치 △수술기록부· 수술실 출입 기록 관리·감독 강화 △수술실 출입 시 의료진 생체정보 인식 등을 통한 비의료인의 출입 통제 등이 대전협이 제시한 대안이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에 각계서 수술실 외부 CCTV 설치가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의료계는 이에 대해서도 회 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의협 측은 최근 이와 관련해 “지금 있는 수술실 출입 규정만 강화시켜도 되는데, 뭐하러 수술실 입구에 CCTV 설치를 몇 천억원 씩 들여서 하냐”고 반문한 바 있다.
환자단체 “CCTV는 감시 아닌 상황 기록 기구”
현행 의료법 체계상 의료사고·분쟁 발생 시 과실 입증책임이 모두 환자에게 있다. 이에 환자들이 진료 과정 등을 녹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의료사고 전문변호사들도 환자에게 진료기록·수술기록 등 증거물을 확보할 것을 권고한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CCTV가 있으면 의무기록 및 진료기록부 등의 조작 여부를 알 수 있어 의료과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료사고·분쟁이 발생했을 때 환자에게 수술 과 정을 담은 영상이 있다면 유효 증거로 제출 가능하다”며 “수술 실 CCTV는 감시기구가 아니라 상황 기록기구”라고 주장했 다.
한편, 의료사고 소송 증가 우려와 관련해 CCTV 설치가 의료계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지난해 7월 31일 김남국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윤명 소 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의료사고 조작증거를 수집하고 대 리수술 의혹도 해명할 수 있으니 CCTV가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의료법 개정안은 금년 6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돼 심사를 이 어갔다. 이날 강도태 복지부 2차관은 “수술실 내부 설치 의무화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하루 만에 뒤바뀌었다. 다음날인 6월 24 일 대정부 질의에서 정부 내 모든 부처를 관장하는 김부겸 총 리가 수술실 CCTV 관련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이필수 의협 회장 등이 지난 18일 김 총리를 면담하고 수 술실 CCTV 설치를 포함한 의료계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전달 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 회장 등의 방문이 최근 김 총리 입장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야도 수술실 내부 혹은 외부 설치 및 설치 자율화와 의무화 등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적 동의에 힘입어 여당이 올해 6월 내 처리를 목표로 하던 수술실 CCTV 설치 관련 논의는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