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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0년이다. 인류가 질병 치료에 화학 합성물을 사용한 이래 가장 긴 공백이었다. 질환에 따라 차세대 신약이 쏟아졌지만 유독 이 시장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때문에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는 업계의 하소연이 계속됐다. 일명 ‘피떡’이라고 불리는 혈전.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탓에 생명과 직결되는 치명적 요인이다.
이 혈전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살서제(쥐약·와파린)였다. 인류가 혈전 방지에 처음 와파린을 사용한게 지난 1940년대였으므로 무려 60년 동안 차세대 약물이 없었던 셈이다.
이 혈전과 맞서기 위한 와파린은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항응고제 시장에서 독주를 해왔다. 물론 음식과의 상호작용, 출혈 위험 등 부작용도 적잖았다.
하지만 의료진과 환자 모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이 살서제를 놓을 수 없었다. 혈액 농도의 적정성을 살피기 위한 정기적 피검사의 불편함도 감내해야 했다.
특히 와파린이 두부, 청국장, 시금치, 마늘 등과 상극인 탓에 이들 음식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더더욱 고충이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 먹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날은 평생 감내할 몫이었다. 때문에 일부 환자들은 “차라리 맘 편히 살다 죽겠다”고 와파린을 끊었다가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60년 만의 신약…기대감 급증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시키며 페니실린과 함께 ‘신이 내린 선물’로 비유돼 왔던 와파린. 하지만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적잖은 부작용과 불편함으로 그 존재에 회의가 들 때쯤 학수고대하던 차세대 약물들이 세상에 속속 등장했다.
더욱이 이들 약물은 와파린의 최대 단점이었던 부작용과 불편함을 단박에 날리며 혈전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고했다.
현재 출시된 차세대 항응고제는 베링거인겔하임의 프라닥사(성분명 다비가트란)와 바이엘의 자렐토(성분명 리바록사반), BMS-화이자가 공동개발한 엘리퀴스(성분명 아픽사반) 등 3개 제품.
이 중에서도 프라닥사와 자렐토는 60년 와파린의 벽을 허물었다는 점과 동일 국가 제약회사들이 동일한 시점에 출시했다는 사실로도 이목을 끌었다.
실제 이들 제품 모두 와파란의 한계점 대부분을 극복한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하는데 성공하며 차세대 와파린이라는 평가를 받은 상태다. 프라닥사는 RE-LY 임상에서 와파린에 비해 모든 종류의 뇌졸중 및 전신색전증 위험성을 35나 감소시키며 우월함을 입증했다.
특히 150mg의 경우 출혈성 뇌졸중 발생 위험을 74%까지 줄였고, 신규 항응고제 가운데 유일하게 잘 조절된 와파린 대비 허혈성 뇌졸중 위험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자렐토는 ROCKET AF 임상에서 뇌졸중과 비중추신경계 전신 색전증 발생위험이 와파린 대비 12% 감소시키며 차세대 약물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두 개내 출혈도 와파린 보다 낮았다.
이들 두 제품 모두 독일계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과 바이엘이 내놓은 야심작이며 기대작이다. 출시 시점도 2010년을 전후해 앞치락 뒷치락 했다.
때문에 향후 차세대 와파린 시장을 놓고 접전이 예상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 먼저 상륙한 제품은 자렐토. 2009년 4월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승인을 획득하며 첫 한국행을 결정지었고, 2010년 보험에 등재되며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반면 프라닥사는 약 2년 늦은 2011년 2월에야 국내 허가를 취득, 자렐토의 뒤를 이어야 했다. 선점효과 만으로는 자렐토의 우세승으로 비춰지지만 적응증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관절 및 슬관절치환술 환자의 정맥혈전색전 예방’이라는 적응증으로 출시된 자렐토와는 달리 프라닥사는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및 전신색전증 예방’ 적응증으로 첫 선을 보였다.
현재 와파란 복용환자의 70% 이상이 심방세동 환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프라닥사가 차세대 항응고제 시장의 핵심을 공략한 셈이다.
자렐토 역시 1만4000명이 참여한 ROCKET 임상시험을 토대로 심방세동 뇌졸중 예방에 관한 적응증을 얻었지만 선점효과는 프라닥사에 내줘야 했다.
후발주자인 BMS의 엘리퀴스는 지난 11월 유럽에서 부정맥 환자의 뇌졸중 예방 약물로 승인을 받은 후 최근 미국 FDA 승인도 획득, 조만간 국내 출시가 유력한 상황이다.
여기에 내년 다이이찌산쿄의 에독사반까지 가세할 것으로 보여 포스트 와파린 자리를 놓고 혈액응고억제제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지금까지 확인된 효능과 안전성 만으로는 와파린의 시대는 가고 금방이라도 차세대 치료 패러다임이 도래할 듯 하지만 현실은 결코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 새로운 치료제들의 등장에 반색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치며 안타까움에 가슴만 치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기존 와파린의 건강보험급여액은 100원 안팎인 반면 차세대 약물들의 가격은 이 보다 훨씬 높게 형성될 전망이다.
실제 2009년 7월 ‘고관절 및 슬관절치환술 환자의 정맥혈전색전 예방’으로 적응증을 받은 자렐토의 가격은 1정 당 6030원에 책정됐다.
지나치게 높은 약가에 대한 지적이 일자 지난 9월 1일부터 5477원으로 인하했지만 의료진이나 환자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와파린 대체의 핵심인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및 전신색전증 예방’ 적응증으로는 베링거인겔하임의 ‘프라닥사’와 바이엘의 자렐토가 동시에 보험약가를 받았다.
두 제품은 지난 12월 27일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고시를 통해 최종 급여를 알렸다.
프라닥사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적용은 2013년 1월1일부터로, 보험약가는 150mg 1851원, 110mg 1795원이다. 보험약가가 30~70원인데 비해 프라닥사는 1800원대, 1년이면 약 42만원 가량의 차이가 난다.
자렐토의 보험약가는 3750원으로, 1일 2회 복용하는 프라닥사와 달리 1회만 복용하면 되기 때문에 가격 차는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환자가 부담하는 실질적인 금액은 보험약가의 약 30%정도다.
때문에 약값 추가 부담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약물의 와파린을 대체할 수 있을지 제약사는 물론 의료진과 환자들까지도 주목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최기준 교수는 “새로운 약들의 안전성과 유효성 만으로 봐서는 100% 대체할 의향이 있지만 문제는 가격 경쟁력”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하더라도 환자들에게 지나친 경제적 부담이 될 경우 일선 의료현장에서 와파린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우려다.
최기준 교수는 “항응고 신약들의 성공여부는 급여와 약가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며 “급여출시 및 가격에 따라 와파린 대체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군수도병원 순환기내과 김성순 박사는 “와파린 대비 효과를 입증한 만큼 대체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도 “보험급여 결과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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