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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김광호 이대목동병원장의 임기 종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011년 8월 김광호 병원장이 임명될 때만 해도 1960년생이라는 젊은 나이, 이대나 서울대가 아닌 고대 출신이란 점 때문에 ‘파격 인사’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부담도 컸을 터. 김광호 병원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를 들었다.[편집자 주]
“나름 열심히 했다. 마무리가 중요”
김광호 병원장은 지난 2년을 반추하며 “2년이 참 짧다. 못한 것 같지도 않고 잘한 것 같지도 않다. 그간 주말·휴가 없이 병원 일에 집중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다소 젊은 나이에 병원장 자리에 올라 사다리를 내려가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김 병원장은 “연임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로서는 마무리 잘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며 담담하게 답했다.
후임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안정화’를 강조했다. 김 병원장은 그간 2017년 완공 예정인 마곡지구 새 병원에 대비해 이대목동병원만의 경쟁력 강화 계획을 세워 실행해 왔다.
김 원장은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안정화 시켜 내실을 보다 공고히 유지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는 2017년 지척에 세워지는 마곡지구 새 병원과의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대목동병원과 가까운 거리에 세워져 과거 동대문병원처럼 환자에게 외면당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답이기도 했다.
김 원장은 “동대문병원과 목동병원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기우다. 이대목동병원은 충성스러운 고객이 많다. 새 병원에 대한 아직 세부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목동병원과 마곡지구 병원이 진료 분야를 나눠서 크게 보면 한 병원처럼 만들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결실맺는 해외환자 유치-러시아 적극 공략"
그는 취임하며 ▲해외환자 유치 적극 전개 ▲중증질환 분야 집중 육성 ▲협력 병의원 유대 관계 강화 및 응급의료시스템 개선 ▲임상연구 강화 ▲소통 활성화 등 제 2의 도약을 실현하기 위한 5대 경영 방침을 세운 바 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것들을 얼마나 현실에 담아냈을까.
김광호 원장은 해외환자 유치에 대한 그간의 노력과 성과를 짚었다. 그는 “해외환자 유치는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 두바이 환자 등이 병원을 찾는 등 연간 외국인 환자 인원은 교포와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해 약 1만 5000명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병원의 향후 타깃 국가로 러시아를 꼽았다. “그는 러시아 사람들이 의외로 한국을 선호한다. 한국은 직항이 있어 오가기 편하다. 러시아 공략이 다른 병원에 비해 늦은 감이 있지만 개척 하려고 노력 중이다"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센터화 통한 중증질환 진료 수준 업그레이드 보람"
그가 꼽은 2년 간 이대목동병원의 가장 달라진 점은 센터화를 통한 중증질환 분야 집중 육성이다. 그는 취임 당시 이대목동병원의 미래 성장 기반을 중증질환 분야 집중 육성으로 꼽은 바 있다. 마곡지구에 세워지는 새 병원에 대비한 경쟁력 강화 차원인 것은 물론이다.
최근 이대목동병원에는 간센터와 췌장/담도센터, 어깨질환센터, 수면센터 등 많은 센터가 자리 잡았다. 여성암에 이어 위암·대장암협진센터를 육성, 지금은 모두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상태다.
김 병원장은 “중증질환은 이미 매년 30% 이상 성장률이 유지되고 있다. 암은 여성암병원과 위암·대장암협진센터를 육성했고, 심혈관 등은 새 병원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이대목동에서는 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연구중심병원 선정에서 마신 고배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지만 향후 선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김 병원장은 “1, 2차까지 올라가고 면접에서 떨어졌다. 교수진, 논문 등 연구 역량은 충분하다. 공간을 확보하고 노하우를 쌓아 계속 도전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쳤다.
김 원장은 소통 활성화 부분에 가장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지난해 9월 노조가 10여년 만에 벌인 28일간의 파업이 큰 영향을 끼친듯 했다.
그는 “소통과 융합을 강조했었는데 파업 때문에 아쉽다. 환자, 병원, 조합원·비조합원 모두 피해를 봤다. 이제는 좀 상처가 가라앉아 간다. 하지만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파업 전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배웠다”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